기업의 이종산업 진출은 대부분 기존 사업의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으로 여겨지지만, 간혹 상상력의 경계를 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격의 영역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영역'에 뛰어드는 이들은 누구일까?

1. 웹툰과 사랑에 빠진 배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019년 느닷없이 웹툰 플랫폼 서비스인 만화경을 공개했다. 배달앱을 넘어 푸드테크 전반으로 나아가던 중 웹툰 콘텐츠에 손을 뻗은 셈이다. 서비스 초기 작품 12개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계약 작가 약 300여명, 누적 작품 수 200여 개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만화경 성공의 비결은 '소통'이다. 지난해 초 만화경 2.0 버전을 업데이트하면서 국내 웹툰 플랫폼 최초로 장면 별 피드백 기능인 '구름톡'을 도입한 것을 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존 웹툰 콘텐츠에서는 한 회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하단에 남길 수 있는 댓글 기능이 작품(작가)과 독자 사이에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그러나 구름톡이 도입된 이후에는 에피소드 내 각 장면마다 독자들이 감상평이나 생각 등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사용자의 장면 별 반응은 작품에 대한 독자 생각이 궁금한 작가들에게도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에피소드 감상 독자 10명 가운데 1명이 구름톡을 실제 작성할 정도로 웹툰 콘텐츠에 대한 독자들의 참여율도 높아졌다. '구름톡' 기능 개발 및 기획에 참여한 우아한형제들 만화경서비스파트 구지민 매니저는 "일반 댓글이나 답글에 비해 구름톡 게시량이 10배 정도 많고 게시량 증가 속도도 압도적으로 빠른 편"이라며, “만화를 보면서 다른 독자와 이야기하고 싶은 사용자들의 니즈가 많았던 것 같다. 실제 구름톡 기능 도입 이후 일 평균 회원 가입자 수도 2배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여세를 몰아 태그톡도 가동됐다. 특정 작품이나 장면에 대한 소통을 넘어, 만화경 사용자들이 직접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 올릴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이며 사용자들은 태그톡에 자신의 일상부터 웹툰 이야기, 자신이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주제의 텍스트나 사진 등을 올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웹툰 콘텐츠에 기반한 소통의 사용자 경험은 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배달의민족은 왜 만화경을 출시했을까? 먼저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만화경을 키워냈으며, 이는 다양한 브랜딩을 통해 배달앱 인프라를 키운 우아한형제들의 강력한 '주특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 네이버와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과 전면전을 벌일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의 성과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는 뜻이다.
넓게는 푸드테크 전반에 대한 콘텐츠 전략, 특히 배달음식과의 '묘한' 연결성도 거론된다. 배달음식을 주문한 후 기다리는 시간마저 알뜰하게 배달의민족 생태계에 담아내겠다는 전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은 배달의민족 앱에서도 만화경을 바로 만날 수 있다. 별도앱이 존재하지만 배달앱에 만화경을 바로 이식했다는 것은,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시간마저 '배민의 시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우아한형제들 만화경셀 김명철 셀장은 “만화경은 차별화된 콘텐츠와 이용자 소통 및 참여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왔다”면서 “이번 배달의민족 앱 추가를 통해 좀 더 많은 이용자,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가 배민의 웹툰 플랫폼 만화경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 실내화 만든 포커스미디어코리아
포커스미디어코리아는 국내 1위 엘리베이터TV 기업이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을 때 잘 모르는 이웃과 어색한 눈웃음을 나눈 후 시선을 둘 곳 없는 난감한 상황일 때, 당신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는 엘리베이터에 붙은 TV를 만드는 곳이다.
물론 포커스미디어코리아를 단순한 엘리베이터TV 기업으로만 정의하기에는 2% 부족하다. 입주민들과 다양한 캠페인을 공동으로 기획하는 한편 공유오피스도 망라하며,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면서 엘리베이터TV 시청 인사이트 등 데이터 전략을 가동하는 입체적인 기업이다. '사람과 기업을 이롭게 하고, 입주민의 더 나은 생활에 기여하는 스타트업'이라는 명제 아래서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설마 실내화까지 만들 줄 몰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포커스미디어코리아는 지난 5월 가정의 달 기념으로 실내화 거치대, 양말 등을 포함한 층간소음방지 '뭄뭄실내화'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포커스미디어코리아는 2021년 안정적인 두께감으로 착화감이 좋은 '뭄뭄실내화 베이직'을 선보인 후, 2022년 여름에는 통풍성을 강화한 '뭄뭄실내화 에어' 등 매년 신제품을 출시하며 뭄뭄실내화 라인업을 구축한 바 있다.
'무음무음' 줄임말인 뭄뭄실내화는 포커스미디어코리아가 '사람과 기업을 이롭게 하고, 입주민의 더 나은 생활에 기여한다'는 창업 이념과 기업 미션에 따라 아파트 생활에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층간소음 문제 해결에 도움 되기 위해 직접 제작한 PB(Private Brand) 상품이다.
뭄뭄실내화는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충격·진동 흡수 신소재 '엘라스탄'과 '고탄성EVA'를 쿠션재로 두텁게 적용해 층간소음 절감에 특화되었다. 이번에 출시한 가정의 달 선물세트는 실내화를 깔끔하게 보관하는 거치대와 무압박 공법으로 발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양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엽서 등을 추가로 구성했다.
올해 초 포커스미디어코리아가 촬영한 엘리베이터TV 전용 광고 '뭄뭄실내화: 발망치 편'이 국내 최대 광고 포털 'TV CF'에서 크리에이티브 TOP 10에 오르기도 했다.
포커스미디어코리아의 뭄뭄실내화는 단순히 매출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다. 포커스미디어코리아가 추구하는 '더 나은 입주민의 삶'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브랜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3. 유모차 회사 인수한 게임사
넥슨은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로 활동하고 있으나, 다양한 이종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넥슨의 지주회사 NXC의 투자자회사인 'NXMH'이 2014년 고급 유아용품기업 스토케(Stokke)AS를 인수한 대목이다.
스토케AS는 1932년 노르웨이에서 설립된 육아용품 전문회사며 2006년부터 주로 유모차에 집중되어 있던 포트폴리오를 적극 확대, 보육 전반의 용품을 판매하는 토털 육아용품 전문회사로 변신한 바 있다. NXC에 인수된 후로도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 리마스, 베이비젠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시장 최강자로 활동하는 중이다.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는 왜 스토케를 품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NXC 전반을 관통하는 다양한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실제로 NXC는 블록체인부터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며 게임의 본질인 엔터테인먼트, 즉 즐거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로드맵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글로벌 거시경제가 가라앉으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지만 NXC 전체에서 광범위한 영역의 확장과 이종산업과의 결합을 포기한 적은 없다.
스토케를 품은 NXC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다. NXC는 스토케를 단순한 육아용품 회사로 정의하지 않고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회사로 봤다. 게임과 스토케의 교집합에 '아이'가 있으며, 그 중심에서 '아이를 먼저 생각한다'는 철학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주가 한때 매각전을 벌이며 '디즈니 드림'을 고려했을 당시, 그는 게임의 영역을 즐거움의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관통하는 것이 당장은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큰 틀에서는 내밀한 교집합이 되어주는 철학이며,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포기하지 않은 NXC의 꿈이다.
4. 웹2.0과 손잡은 웹3.0
디지털 자산 플랫폼 빗썸 부리또 월렛은 말 그대로 웹3.0의 최전선을 달리는 곳이다.
실제로 신민철 빗썸 부리또 월렛 대표는 올해 초 위스에서 열린 ‘블록체인허브 다보스 2023’ 행사에서 “한국은 전세계 일평균 가상자산 거래량의 10%를 차지할 만큼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지역이지만 대부분 중앙화된 거래소 위주이고, 디파이 시장 규모는 일본, 중국 등 타 국가 대비 현저히 낮은 상태”며 “가상자산이 단순한 투자 목적을 넘어 명확한 ‘쓰임’의 용도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과 연동 가능한 웹 3.0 개인형 지갑 서비스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웹3.0의 최전방에 있는 빗썸 부리또가 갑자기 전통의 웹2.0과 손을 잡는 순간이다. 공유 킥보드 플랫폼인 씽씽과 손을 잡았다.
시작은 프로모션이다. 씽씽 앱 내 이벤트 배너를 통해 빗썸 부리또 월렛을 설치하고 지갑 개설을 완료한 신규 회원 선착순 4800명에게는 ‘WEBI’ 토큰 10개를 에어드랍 방식으로 지급하는 이벤트가 열렸으며 이 중 10명에게는 1만8900원 상당의 씽씽 월 구독 상품 미니(mini)가 NFT 형태로 추가 제공됐다.
‘WEBI’ 토큰은 블록체인 기반 웹3.0 공유 경제 서비스인 위빌리티(WEBILITY)에서 최초 발행한 생태계 토큰이다.
나아가 씽씽 월 구독 상품 결제 후 빗썸 부리또 월렛 앱을 설치한 이용자 200명을 별도 추첨해 WEBI 토큰 100개와 씨앗 포인트 100개를 리워드로 증정하기도 했다.
물론 씽씽과의 연대를 두고 빗썸 부리또가 이종영역으로 완전히 진출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웹3.0의 기업이 갑자기 웹2.0 기업과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자체는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이 파격의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인 웹3.0을 알리기 위해, 웹2.0의 세상을 살아가는 잠재 고객들에게 웹2.0과의 협력을 어필하기 위함이다. 미래 가능성을 극적으로 알려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현재의 기술을 주도하는 기업과 만나는 셈이다.
실제로 빗썸 부리또 월렛 관계자는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씽씽과의 협업을 통해 차별화된 웹3.0 서비스를 많은 유저들이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며, “실용성 높은 가상자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지속적으로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5. 모빌리티+핀테크+바이오?
헥토그룹은 변화무쌍 그 자체인 기업이다. 헥토그룹의 시작은 2009년 설립된 ‘민앤지’다. 이후 ‘세틀뱅크’, ‘바이오일레븐’ 등이 계열사로 합류하면서 인증 및 보안, 금융,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고객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재의 사업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6월에는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모든 계열사가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헥토이노베이션’, ‘헥토파이낸셜’, ‘헥토헬스케어’ 등으로 주요 계열사 이름을 변경했다.
헥토그룹의 포트폴리오가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유다.
먼저 모기업인 헥토이노베이션의 마이데이터 기반 금융 플랫폼 ‘더쎈카드’는 카드 실적을 자동 계산 및 관리해 할인, 적립 등 혜택을 극대화하는 개인 맞춤형 소비 가이드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무장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 마이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카드 최적화 추천, 카드발급 중개 서비스 등으로 서비스를 확장해 이용자 확대와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각오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헥토이노베이션이 지난해 말 선보인 ‘발로소득’은 걷기를 비롯 긍정적인 일상 활동에 보상을 지급하는 앱으로 거듭났다. 현재 발로소득은 AI 접목,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 등으로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나아가 헥토이노베이션은 천만 명 이상의 고객을 관리하고 서비스를 제공한 기존 역량을 바탕으로 발로소득을 국민 앱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헥토파이낸셜은 어떨까? 데이터 API 플랫폼 ‘데이브’와 생활 금융 플랫폼 ‘010PAY’를 신 성장 동력으로 삼고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핀테크 업계의 강자로 활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고함량 유산균 ‘드시모네’로 유명한 헥토헬스케어는 지난해 7월 맞춤형 건강관리 앱 ‘또박케어’를 출시해 디지털 헬스케어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AI를 이용한 개인맞춤형 영양제 추천 서비스 개발 등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여기에 모빌리티의 영역인 주정차 단속앱 휘슬, 통합 시승 플랫폼 티오르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헥토그룹처럼 다양한 이종 서비스를 입체적으로 묶어간 사례는 거의 없다. 헥토이노베이션이 혁신에 방점을 찍는다면 헥토파이낸셜이 핀테크, 헥토헬스케어는 바이오로 나아간다. 굳이 찾는다면 혁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겠지만 모빌리티와 핀테크 및 바이오 등의 교집합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종산업 선물세트다.
다만 헥토그룹 전체가 IT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지원한다는 개념을 덧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 다른 이종산업이 뒤섞인 것이 아니라 IT 기술을 중심에 두고 헥토이노베이션의 혁신 DNA가 '가장 인간에게 필요한 영역'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각 계열사에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종산업 진출이 아닌, 다소 추상적이지만 넓은 명제를 정해두고 차분히 빈 곳을 메워가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