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룹이 해외법인으로부터 59억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전동화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출처=연합뉴스
현대차 그룹이 해외법인으로부터 59억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전동화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출처=연합뉴스

정부가 불합리한 법인세제를 개편하자 현대차 삼성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수조원대의 해외 자회사 소득을 국내에 투자하는 ‘자본 리쇼어링’(reshoring)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 법인들의 투자 여력이 커지면서 이 자금을 현대차는 전기차 등 미래차 투자에,삼성전자는 반도체 휴대폰 등 각종 첨단 제품의 연구 개발 투자에 적극 활용하거나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그룹은 12일 해외법인의 본사 배당액을 59억달러(약 7조8000억원)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별로는 현대차 21억달러, 기아 33억달러, 현대모비스 2억달러 등이다. 전체 배당금의 79%를 상반기 안에 본사로 송금한다. 나머지 21%는 연내 국내로 들여올 예정이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지난해 순이익이 2조5494억원에 달했다. 2021년(1조285억원)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기아 미국법인 순이익도 2021년 8554억원에서 지난해 2조5255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 4~5월 울산 공장과 기아 화성 공장에 전기차 전용 생산설비 등 미래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수조원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투자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12일 발표로 투자재원의 상당 부분이 해외법인의 배당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재원으로 해외법인의 배당금을 쓰면 그만큼 차입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재무 건전성 개선 효과는 물론 최근 적자를 나타내고 있는 경상수지 개선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현대차그룹이 이같은 결정을 한 것은 정부가 지난해 불합리한 법인세법을 개정한 덕분이다. 이전에는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법인세를 먼저 내고 남은 이익의 일부를 국내 모회사로 배당해 들여올 때 이 배당금에 대해 배당소득세를 또 매겼다.

해외에서 낸 세금 일부를 세액공제 해주기는 했지만 워낙 그 규모가 작아 기업으로서는 엄청난 세금을 양쪽에서 내면서 국내로 배당금을 들여올 이유가 없었다. 사실상의 이중과세가 해외 법인 소득의 국내 유입을 막아온 것이다.

마침 지난해 법인세법이 개정돼 국내로 들여온 배당금의 95%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이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자본 리쇼어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올 1분기에만 베트남 중국 등 해외법인 유보금 중 8조원 이상을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금은 각종 시설투자와 연구 개발 등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SK, LG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본 리쇼어링에 동참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해외 소득의 국내 재투자를 통한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유보금 규모는 1077억달러(약 138조82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유보금이 국내로 지속적으로 유입될 경우 기업들은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고 경상수지 개선 효과도 있어 일거양득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유럽 등이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경쟁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그동안 한국은 반(反)기업 정서에 기반한 각종 법과 제도로 사실상 기업들을 해외로 내쫒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인세법 개정과 이에 화답하고 있는 기업들의 자본 리쇼어링을 계기로 국내 기업 환경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