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포지티브> 폴 폴먼·앤드루 윈스턴 지음, 이경식 옮김, 현대지성 펴냄.

저자 폴 폴먼(Paul Polman)은 2009년, 유니레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였다. 그는 2019년 퇴임때까지 ‘넷 포지티브’ 경영을 펼쳤다.

넷 포지티브(net positive)는 지구와 사회에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는데 그치는 제로 수준의 대응을 넘어, 기업이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하며 매출 증대 등 성과까지 내겠다는 공세적인 경영 전략이다. 한 마디로, 세상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얘기다.

폴먼은 10년의 재직기간 동안 일관성 있게 넷 포지티브 경영을 관철하면서 ESG경영, 착한 경영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업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탄소배출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매출은 두 배로 키우는 성과를 냈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스>는 폴먼을 지난 10년간 가장 걸출했던 CEO로 꼽았으며, 국제여론조사기관 글로브스캔은 파타고니아와 이케아를 제치고 유니레버를 10년 연속 세계 최고의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선정했다.

◇  “창업자 레버 형제 정신에서 해법 찾다”

유니레버는 구직자가 꼽은 가장 들어가고 싶은 직장, 링크드인이 조사한 가장 선호하는 직장 순위에서 애플, 구글과 함께 선두를 다투고 있다. 유니레버는 매년 1만 5,000명을 새로 뽑는데, 지원자는 늘 2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2010년대 초 유니레버는 핵심 시장인 영국과 인도에서조차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세계 최대 소비재기업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채 경쟁사인 네슬레와 P&G에 비해 수익과 시가총액에서 훨씬 뒤처져 업계 3위로 추락한 상태였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폴먼이 선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창업자 레버(Lever) 형제의 사명을 되살리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대영제국 시기, 빅토리아 여왕이 여왕으로 즉위한 1837년부터 사망한 1901년까지 64년간의 치세를 빅토리아 시대라 한다. 이 시기에 제임스 레버와 윌리엄 레버(레버 형제)는 영국인들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겠다는 목적으로 비누를 만들었다.

팜유와 목화씨 오일에 글리세린을 사용한 선라이트 비누는 당시 냄새가 심하고 피부 자극도 높던 일반 비누와 달리 향긋하고 세탁력도 뛰어나 '꿀 비누(Honey Soap)'라고 불렸다.

레버 형제는 직원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회사도 건강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리버풀의 위럴 지역에 포트 선라이트 마을을 조성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집단 주택단지와 교회, 병원, 미술관 등 공공시설까지 제공했다.

폴먼은 레버형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비누를 통해 실적을 개선하고 세상도 구하겠다는 목적지향적인 전략을 세웠다.

그는 CEO로 부임하자마자 1년에 네 차례나 실시하던 ‘주주보고’부터 폐지했다. 유니레버가 주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채택하겠다는 의미였고, 동시에 90일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외부 압박으로부터 조직을 해방시켜 더 큰 목표를 추구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어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취지의 ‘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삶 계획(USLP, 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을 세상에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가 개선되도록 돕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절반으로 줄이며, ▲기업의 성장을 통해 수백만 명의 생계 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니레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29개 국가에서 약 10억 명을 대상으로 손 씻기 교육을 실시했다. 제품으로는 ‘미키마우스 손 씻기’ 세트를 만들어 손 씻기를 일상적이고도 재미있는 행동으로 만들어주었다.

흔히 흐르는 물에 30초 정도는 손을 씻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이들에게 30초는 너무 길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30초씩이나 사용할 수 있는 물이 부족하기도 하다. 유니레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초 만에 세균 99%를 제거할 수 있는 비누를 개발했다. 그 결과 간단한 손 씻기로 막을 수 있는 질병인 설사로 사망하는 어린이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36% 줄었다.

폴먼 CEO의 넷 포지티브 경영은 초기 수년간은 기업 실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하지만 마침내 연매출이 33% 증가한 6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총주주수익률은 290%를 달성했고, 주가는 동종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FTSE지수(FTSE인터내셔널에서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도 뛰어넘었다.

기후위기, 불평등 해결이라는 옳은 일을 하며 실적을 신장하겠다는 터무니없어 보였던 유니레버의 ‘넷 포지티브’ 전략은, 진정 미래 지향적이고 효과적인 길임이 여러 수치로 입증되었다.

◇워런 버핏의 164조 원 인수 제안 거절하다

2017년 유니레버는 케첩으로 유명한 크래프트하인즈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 제시된 인수가는 시가총액보다 18% 높은 164조 원(1430억 달러)이었다. 크래프트하인즈는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과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해서웨이가 공동인수한 상태로 사실상 워런 버핏의 인수 제안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폴먼은 기업의 목적이 흐려지면 실적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었기에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만을 지닌 버핏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윤 창출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기업 고유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유니레버는 협력업체와의 관계 개선에도 주력했다. 캠페인 ‘파트너에게 승리를’을 통해 강력한 유대를 마련했고, 협력업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아 유대의 결실을 맺었다. 그 결과 박테리아를 빨리 죽이는 비누, 한 번만 써도 되는 유연제, 물 없이 사용하는 샴푸가 출시될 수 있었다.

지속가능성 분야의 선도기업 노보자임스와 협력하에 세제에 들어가는 일부 화학 물질을 효소로 대체해 세정력을 높이면서 제품을 사용할 때 나오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한편, 폴먼은 탄소발자국에 한정하여 ‘넷 포지티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어떤 회사든 돈을 주고 탄소배출권을 사서 자기가 배출한 탄소를 상쇄하기만 하면 그 회사는 ‘넷 포지티브’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폴먼은 “어떤 회사가 어느 지역에서는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저소득 계층이 모여 사는 다른 지역에서는 천식을 유발하는 해로운 물질을 내뿜는 공장을 방치한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나?”고 반문한다.

공저자인 경영전략 이론가 앤드루 윈스턴은 이 책에서 “단기적인 주주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GE의 잭 웰치와 같은 CEO가 더는 추앙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며 “기업계를 수십 년 동안 지배해온 그들의 경영 방식은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여 주가를 올리면서 공존은 해치는 방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윈스턴은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기꺼이 도전하는 (폴 폴먼 같은)기업 리더가 필요하며, 이런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