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일반 선박 뿐 아니라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도 기술·양산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1위 위상을 공고히 지켜나가고 있다. 최근 세계 조선업계에서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다양한 친환경 선박 개발이 이어지는 추세다. 한국 조선업계는 기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에 이어  메탄올, 수소, 암모니아 등을 연료로 쓰는 새로운 친환경 선박 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친환경 선박 수주량 중 한국 비중. 출처=산업통상자원부
글로벌 친환경 선박 수주량 중 한국 비중. 출처=산업통상자원부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친환경 선박  수주량 점유율은 50.3%로 집계됐다. 지난해 체결된 전 세계 친환경 선박 공급계약의 절반이 한국 조선업체의 몫인 셈이다.

같은 기간 전체 선박 시장에서 한국의 수주 점유율이 37%로 중국(48.8%)에 이어 2위었던  점을 고려할 때 높은 수치다. 한국 조선업의 친환경 선박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이 세계 친환경선박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었던 것은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제조 기술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이 수주한 친환경 선박의 종류 중 LNG 선박이 92%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LNG 선박을 활발히 수주한 덕분에 친환경 선박 실적을 크게 늘렸다.

LNG는 승용차 연료로 쓰이는 LPG의 절반 정도 가격인데 더 크고 무거운 용기에 강하게 압축한 뒤 수송할 수 있어 버스, 선박 등 큰 운송수단의 동력원으로 쓰인다. 메탄올이나 LPG 같은 친환경 선박 연료에 비해 에너지 저장 밀도를 높여 더 많은 용량을 실을 수 있고 생산가격이 저렴한 등 장점을 갖췄다. LNG 선박은 이에 따라 지난해 세계 친환경 선박 발주량의 86.5%를 차지하는 등 주류 선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지난 2022년 인도한 200K LNG운반선이 시운전되는 모습. 출처=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지난 2022년 인도한 200K LNG운반선이 시운전되는 모습. 출처=HD현대중공업

한국, LNG선 필두로 친환경 선박시장 평정

한국의 LNG 선박 역사는 지난 2013년 삼성중공업이 아시아 최초로 출선한 ‘에코누리호’로 시작됐다. 선박을 항만 홍보용으로 운항하는 한편, 국산 LNG 선박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려는 정부 의지가 담긴 산물이었다.

정부는 이후 선박 탄소배출량에 관한 글로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산 LNG선박의 생산량을 늘리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6년 해양수산부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해 LNG 선박 개발을 제도적으로 지원했다. ‘LNG 추진 선박 육성방안’을 마련, 공공용 LNG추진선을 도입하고 선박 건조·등록·운영 등 주기별 세제 혜택을 조선업체나 고객사(선주사)에 제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7년 중국 조선업체 후동중화조선이 기술력 부족 탓에 프랑스 해운사에 공급하려던 LNG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제작을 포기한 뒤 한국에 기회가 찾아왔다. 업체들은 앞서 세계에서 인정받은 건조 기술력에 정부 지원을 받아 확보한 LNG 선박 개발 기술을 접목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대형 유조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LNG 선박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LNG 운반선 시장에서 선두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요인인 가스 저장·운송 능력도 LNG 선박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린 비결로 작용했다.

2000년대 후반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10년대 세계 선박 수요가 위축된 점은 오히려 한국산 LNG 선박의 가치를 높인 요인이다. 노후선박 교체시점 도래, 탄소배출 규제 등 변수가 맞물려 LNG 선박 시장 내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정기대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LNG선박은 설계, 건조, 연비, 연료관련 기술 등 측면에서 중국과 일본보다 한걸음 앞서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친환경 선박 기술개발 로드맵. 출처=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
정부의 친환경 선박 기술개발 로드맵. 출처=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

한국선급 “탄소 규제에 친환경 선박 수주경쟁도 격화”

한국 친환경 선박의 시장 입지가 LNG 선박을 필두로 세계에 걸쳐 우세한 상황이지만 향후에도 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일본 등 주요 경쟁국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의 세계 친환경 선박 시장 점유율은 최근 4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된 후 선박 수요가 회복됨에 따라 친환경 선박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다.

앞서 해운업 탄소 배출량에 관한 국제 규범이 도입된 것도 경쟁 격화를 부추겼다. 국제해사기구는 2050년까지 국제해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각국이 이를 고려한 해운업 배출 규제를 적용하고, 조선업체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잰걸음을 옮기는 상황이다.

천강우 한국선급 그린쉽센터 팀장은 해양수산부 리포트를 통해 “미래 친환경 선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핵심기술 개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며 “정부 지원 효과를 늘리고 기업들도 경영 효율 제고, 연구개발 투자, 인재 육성 등에 최대한의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올해 친환경 선박 개발 시행계획에 책정한 예산의 사용 계획. 출처=정부 합동
정부가 올해 친환경 선박 개발 시행계획에 책정한 예산의 사용 계획. 출처=정부 합동

HD현대, 새로운 친환경 선박 메탄올 추진선 세계 최초로 진수

LNG 선박에 치중해온 한국의 글로벌 친환경 선박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메탄올 연료 추진 친환경 선박은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선을 올해 6월 한국 조선사에서 인도 받아 오는 9월 코펜하겐 본사에서 명명식을 거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머스크가 공개 예고한 선박은 HD현대 조선 부문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2100TEU급 컨테이너 선박으로, 지난 4월 4일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진수식이 진행됐다. 2021년7월 건조를 시작해 오는 9월경 인도될 예정이다. 

이 선박은 머스크가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기 전, 파일럿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로 HD현대 중공업 부문에 발주한 것이다. 머스크는 이외에도 친환경 메탄올 선박 18척을 HD현대 중공업 계열사에 발주했다. 

메탄올은 암모니아 수소 등과 함께 LNG 뒤를 이을 친환경 선박연료의 하나로 꼽힌다. 기존대비 황산화물 99%, 질소산화물 80%, 온실가스 25%를 각각 줄일수 있다고 한다.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체연료 중 조선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다. 

HD현대의 조선부문인 한국조선해양은 메탄올 선박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데 지난 2월까지 발주된 총 99척의 메탄올 추진선 중 54척을 HD한국조선해양이 수주했다. 

머스크가 오는 9월 공개 예정인 친환경 메탄올 추진선.  출처=머스크 홈페이지
머스크가 오는 9월 공개 예정인 친환경 메탄올 추진선.  출처=머스크 홈페이지

업체가 기술력 강화하고 정부는 밀어주고

조선 업체들은  LNG 선박의 수주 성과를 지속 창출하는 동시에 메탄올 등 LNG의 뒤를 이를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관한 기술을 확보하는데 힘쓰고 있다.

수소 선박과 같은 무탄소 선박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무탄소 선박은 수소전기차, 순수전기차 등과 같은 개념의 선박으로 탄소를 일절 배출하지 않는 선박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2010~2019년 10년 동안 한국이 수소 선박에 관한 특허를 560건 출원해 세계 최다 수준을 보였다.

주요 조선업체들은 친환경 선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친환경·디지털 선박을 개발하는데 31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조선해양은 메탄올 외에도 암모니아, 액화이산화탄소 등 대체 친환경 연료로 운항하는 선박에 관한 기술인증을 확보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축발전기, 공기윤활시스템, 소재 등 선박 구성요소를 개선해 연료 효율을 높이는데 공들이는 중이다.

정부는 최근 조선 업황 회복기에 조선업체들이 편승할 수 있도록 선수금환급보증서(RG) 발급, 무탄소 선박 개발 과정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중 RG는 선박 발주 과정에서 문제 발생 시 조선업체가 고객사로부터 받았던 발주 선수금을 되돌려줄 수 있도록 금융회사가 보증해주는  서류다. 최근의 수주증가, 선가상승, 선수금 비중 확대로 RG를 더 많이 공급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는 이와 함께 범정부 수출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LNG 선박에 적용되는 핵심기술을 국산화하고 수소연료전지, 배터리 등을 탑재한 무탄소 선박 개발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밖에 정부는 올해 친환경선박의 기술력을 발전시키고 관련 기자재를 개발하는 등 일련의 사업에 지난해(959억원) 대비 52% 증가한 1454억원의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정부는 친환경 선박을 자율운항 등 스마트 선박 기술과 함께 조선업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하고 이에 관한 역량을 강화하는데도 힘쓸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조선산업의 친환경·스마트화(化)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한국이 강점을 가진 친환경 선박의 시장 확대는 국내 조선 산업에 다시 없는 재도약의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