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 펴냄
- 1998년
책장을 뒤지다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찾았습니다. 문제적 작가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 테이프였습니다.
영화가 너무 인상적이고 좋아서 사두었던 테이프였습니다. 문득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하던 일을 대충 정리하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독일어 내레이션이 압권입니다. 독일어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영화지요.
아름다운 독일어 음률에 푹 빠져 있던 중에 영화의 한 대목이 강렬하게 귀에 박혔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 속에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지금.”
영원한 시간 속에 현재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말이 가슴에 울립니다. 이처럼 현재 이 순간을 간절히 갈구하는 표현도 드물 겁니다.
과연 제게 현재는 무엇일까요? 그냥 부유하는 삶 속의 어느 한 점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과거지향적으로 과거에 머물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일로 인해 크게 상처를 입고 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제게 그 친구가 말합니다.
“네가 빌려준 책 있지 않니? 안젤름 그륀의 《머물지 말고 흘러라》!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 과거를 자유롭게 놓아줘라, 과거를 놓아준 만큼 미래가 열린다, 과거를 놓아주면 마음이 유연해진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필요하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과거는 이미 지난 시간인데, 되돌릴 수 없는데, 왜 자꾸 과거를 붙잡고 헤매었을까. 게다가 내게는 오늘이 있고 미래가 있는데.” 그렇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요. 한스 크루파의 《마음의 여행자》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삶이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치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듯이 사람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영혼의 성장을 위해 마음의 껍질을 벗어야만 합니다.
지나간 일을 이제 던져 버리십시오. 비록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을 초대한 삶에 충실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의 삶 말입니다.
덧없이 늙지 않고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얽매이다 보면 오늘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을 기대할 수 없다면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과거를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기억의 과거든 나쁜 기억의 과거든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서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나는 과거에 얽매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전하는 글을 읽어드립니다.
우리의 과거도 그와 마찬가지다. 과거의 환기는 억지로 그것을 구하려고 해도 헛수고요, 지성의 온갖 노력도 소용없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이 물질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우연에 달려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65쪽
이현 지식·정보 디자이너, 오딕&어소시에이츠 대표 (rheeyh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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