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8월 도심 내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처음 도입된 '공공재개발'이 최근 삐걱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비 사업 정책이었던 공공재개발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계승되고 있지만 민간 재개발을 선호하는 주민 반발이 커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주민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낼 수 있을지가 사업 성패의 관건으로 보인다.

7일 오후 광명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광명사거리역(광명8구역)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주민설명회'에선 지역 내 다주택자와 상가 소유주, 고령자 등의 반발이 거셌다.

광명사거리역 남측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대상지.
광명사거리역 남측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대상지.

이날 현장에 참석한 70대 임대인은 "이 사업에 소요되는 기간이 최소 7년이라고 하는데 공공재개발 때문에 다른 지역에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도 제 나이에 몇 년 뒤 다시 돌아와서 살 수나 있겠느냐"며 "게다가 동네에서 받는 월세가 유일한 수입인데 재개발하면 뭐 먹고 살아야 하나. 월세만큼 손해보상을 해주면 재개발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십 년간 기반을 닦은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데다 애초 사업 진행 과정에서 문턱을 낮춰 주민동의와 의견수렴이 부족했던 점 등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사업지 공모 시 참여 문턱을 낮추기 위해 주민 동의율을 10%로 설정한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선 주민 의견수렴 과정이 사실상 생략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업 초기 공공재개발은 공모 신청 시 주민의 10%만 동의하더라도 신청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사업시행자를 지정하기 위해 토지 등 소유자의 3분의 2(66.7%)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받은 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이어 관련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절차들이 순항할 수 있을지 속단하기 이르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재개발도 민간에서 이끄는 재개발사업처럼 주민들의 여러 이해관계에 의해 첨예한 갈등이 벌어져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기는 힘들다"며 "광명시처럼 주민 동의율 10%만 달성해도 신청할 수 있었던 지역의 경우 특히 주민 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결속력이 낮을 수 있다"고 했다.

공공재개발 추진 단계. [자료=서울시]
공공재개발 추진 단계. [자료=서울시]

이 같은 지적에 서울시는 공공재개발 2차 공모부터 신청에 필요한 주민동의율을 기존 10%에서 30%로 끌어올려 지난해 8월 관련 후보지를 선정했다.

그러나 사업의 실현 가능성은 크게 제고되지 못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시내 후보지 24곳이 1차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됐으나 이 가운데 총 7단계의 절차 중 3단계(정비구역지정고시)에 들어선 곳은 송파구 거여새마을(재정비촉진존치주택정비형)이 유일하다.

거여새마을에 이어 속도를 내고 있는 곳은 동대문구 신설1구역(주택정비형)이다. 현재 정비구역지정고시가 '예정'돼 있다. 2단계인 '입안절차(주민설명회, 주민공람 등)'를 진행하고 있는 곳은 영등포구 양평13구역(도시정비형)과 종로구 신문로2-12구역(재정비촉진구역, 도시정비형), 서대문구 홍은1구역(재정비촉진해제도시정비형)‧충정로1구역(주택정비형)‧연희동721-6(주택정비형), 양천구 신월7동-2(주택정비형), 동대문구 전농9구역(주택정비형), 중랑구 중화122(주택정비형) 등 8곳이다. 이 중 전농9구역은 2004년 정비 예정 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빌라 지분쪼개기 등으로 개발이 장기간 정체됐다가 최근 공공재개발 구역 지정안이 통과돼 정비계획을 확정했다.

숭인동1169 구역 위치도. [자료=서울시]
숭인동1169 구역 위치도. [자료=서울시]

이처럼 공공재개발 2~3단계를 추진 중인 10곳을 제외한 나머지 14곳은 사업지로 발표된 지 2년째인 현재까지도 첫 단추(사전 기획)만 꿰놓은 상황이다. 구체적으로는 동작구 흑석2구역(재촉, 도시정비형), 동대문구 용두1-6(재촉, 도시정비형), 강북구 강북5구역(재촉, 도시정비형), 영등포구 양평14구역(도시정비형)‧신길1구역(재촉해제주택정비형), 관악구 봉천13구역(주택정비형), 동작구 본동(주택정비형), 성동구 금호23구역(주택정비형), 성북구 장위8구역(재촉제척주택정비형)‧성북1구역(주택정비형)‧장위9구역(재촉제척주택정비형), 강동구 천호A1-1(주택정비형), 종로구 숭인동1169(주택정비형) 등이다.

특히 숭인동1169은 이들 지역 가운데서도 사전 기획 절차를 진행중이기는커녕 아직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어 광명8구역처럼 다른 곳보다 공공재개발 속도가 더디다. 이 지역은 최근 사업장 안에 있는 동대문제일교회에 보상금을 주는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어 재개발 추진 속도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이 지역 임의단체인 주민봉사단은 최근 해당 교회에 향후 철거와 이주에 관한 보상금으로 134억원을 주겠다고 합의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공공재개발 구역에 있는 종교 시설에 보상금을 줘야 할 법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사업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과거 여러 조합들이 교회 등이 가진 토지가액에 기반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보상금을 지급해왔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를 모집한 광명시 광명제16R구역의 한 종교 시설은 앞서 2018년 4회에 걸쳐 90억원의 보상금을 받아냈다.

[자료=서울시]
[자료=서울시]

이처럼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만큼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끓지만 반대로 찬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정체된 정비 사업지에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재개발은 통합심의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도시계획위의 권한을 위임받아 정비계획안을 검토·심의하는 위원회) 운영으로 인해 사업 절차가 간소화돼 민간 재개발보다 사업 추진 속도가 빠르다.

경기주택도시공사 관계자는 "노후화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공공에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해 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려는 목적을 두고 공공재개발에 관한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던 것"이라며 "게다가 이 사업을 발표할 때는 원도심에 대한 투기 수요가 상당히 많아 원주민들의 피해가 커 정부에서 투기꾼들의 개발 이익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