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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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상장사의 가장 큰 행사인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임박했다. 올해 주총에서는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이 어느때보다 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일 금융투자(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헤지·사모펀드 뿐 아니라 노조 및 개인까지도 기업 의사 결정과 관련해 적극적인 주주제안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슈퍼파워' 된 행동주의펀드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자산운용(얼라인)은 불과 1% 남짓한 지분으로 대형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의 3월 주총에 자신들이 추천한 감사 선임안을 상정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대주주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관계를 종료하라는 지배구조안마저 이미 관철시켰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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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얼라인은 올해 1월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JB금융지주,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등 금융지주 7곳에도 합리적인 자본배치정책 및 주주환원정책 도입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낸바 있다. 얼라인이 공개서한을 보낸 궁극적인 목표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36%대에 머물고 있는 국내 은행주의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주주서안에서는 각사가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보통주자본비율이 13%에 이를 때까지 매년 조금씩 꾸준히 적립해 나가되 13% 이상에 대해서는 전액 주주환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본배치정책 도입을 요구했다. 또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 성장률을 명목 GDP 성장률 수준으로 감축해 확보된 재원으로 당기순이익의 최소 50% 주주환원을 하기로 약속하는 내용의 중기 주주환원 정책을 이사회 결의 및 공정공시를 통해 공식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KB, 신한, 하나, 우리, BNK, DGB 등 6개 금융지주사들은 얼라인의 요구에 부합하는 수준의 주주환원율 및 중장기 자본관리계획을 제시했다. KB금융이 최근 실적발표에서 밝힌 지난해 총 주주환원율 33% 중 현금배당 성향은 26%에 달한다. 이뿐 아니라 KB금융지주는 분기 배당을 정례화하고 3000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으로 총 주주환원율을 제고하기로 했다.

얼라인은 KB금융지주가 제시한 주주환원책이 요구 수준에 부합하자 당초 계획한 주주제안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반면 JB금융지주에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며 주주제안에 나선 상태다. 얼라인은 JB금융지주에 중기 자본배치정책 및 주주환원정책 도입 및 주주환원율 제고를 위한 2차 공개서한까지 발송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트러스톤자산운용 역시 주주제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행동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트러스톤은 최근 태광산업과 BYC(비와이씨)에 배당성향 제고 등을 주주제안했다. 이중 태광산업에의 주주제안은 독립적인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과 최근 2년 평균 0.3%에 불과한 배당성향을 상장사 평균인 20% 이상으로 올릴 것 등이 주된 내용이다. 앞서 트러스톤은 지난해 12월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에 4000억원 유상증자 참여를 막아내며 행동주의 펀드의 위력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당시 트로스톤은 흥국생명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은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을 지원하는 것은 태광산업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배임 행위라고 지적했다. 결국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철회했다.

남양유업 역시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됐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남양유업 지분 3%(2만447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남양유업이 자사주 매입 형태로 유통 주식의 절반을 공개매수하라고 주주제안했다. 차파트너스는 2018년 맥쿼리인프라에 대한 주주행동주의를 성공시켜 보수 인하를 이끌어낸 차종현 대표가 설립한 운용사다. 차파트너스가 남양유업에 주주제안한 요지는 ▲일반주주 주식 절반을 자기주식 형태로 공개매수 ▲일반주주 추천 감사(심혜섭 변호사) 선임 ▲정관 변경을 통한 5 대1 액면분할 ▲주당 2만원 배당 등이다. 

이처럼 일정 사항을 주총 목적 사항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주주제안권'은 상법상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전체의 3% 이상 확보하거나 1% 이상의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행사가 가능하다. 주주들은 통상 주총이 열리기 6주 전까지 주주제안을 해야 한다. 상장사들은 주총 소집 결의와 통지·공고, 배당 결정을 주총 개최 2주 전까지 알려야 한다.

목소리 커지는 슈퍼개미·소액주주연대

농심 사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농심 사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올해 정기주총을 앞두고 이어지는 주주제안의 특징은 행동주의펀드 뿐 아니라 슈퍼개미에 이어 개인 주주연대도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식농부’로 알려진 슈퍼개미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농심홀딩스, 동원개발, 한국알콜, 넥센, 디씨엠, 비아트론, 태양, 스카이라이프, 아이디스홀딩스, 한국경제TV 등 12개 상장사에 주주제안했다. 주주제안 내용은 대체로 자사주 매입, 배당확대 등 주주환원이다. 동원개발에 대해선 주주환원 이외에 인수합병을 통한 신사업 확대도 주문했다.

일반 소액주주들은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ISCO홀딩스의 일반 주주들로 구성된 주주연대는 감사위원(심혜섭 변호사) 선임과 정관 변경 등을 제안하면서 자회사인 한국철강에도 주당 1000원 배당과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감사위원 선임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KISCO홀딩스 정관에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를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최근 ‘2023년 정기주주총회 시즌 프리뷰 보고서’에서 "총수 일가 내분에 따른 경영권 분쟁 성격의 주주제안보다 소액주주·펀드 등 일반주주가 제기하는 주주제안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24일까지 주주제안을 정기 및 임시 주총 안건으로 올린 상장사는 총 17곳에 달한다.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에스엠과 ES큐브, 휴마시스, 유니켐, 디씨엠, 어반리튬, 한진칼, 디엔에이링크, 사조산업, 광주신세계, 지더블유바이텍, 대원강업, 국보디자인, 전방, KB금융, 하이록코리아, 한국경제TV 등이다. 

금융투자(IB) 업계에 따르면 주주제안을 정기주총 안건으로 올리는 상장사 수는 지난해 27개에서 올해 50개 안팎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행동주의·노조·정부 압박…긴장감 도는 금융권 주총

4대 시중은행. 출처=각 사
4대 시중은행. 출처=각 사

서스틴베스트의 보고서에서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예고한 7개 금융지주에 대한 배당확대 주주제안을 행동주의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이 함께 주주행동을 벌이는 케이티앤지(KT&G)의 주총과 함께 올해 주총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그러나 올해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주총은 예년과는 차원이 다른 여러 복잡한 쟁점들이 대기중이다. 역대급 주주환원을 발표하며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일단은 잠재웠지만 이번엔 노조의 견제는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의 압박이 기다리고 있다.

4대 금융그룹의 지난해 배당액(지주사 기준)은 총 4조416억원으로 전년(3조7505억원) 대비 7.8% 가량 늘었다. KB금융은 3000억원, 신한·하나금융 각 15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겠다는 정책도 최근 발표했다. 배당액 규모는 KB금융이 1조1494억원, 신한지주 1조928억원 하나금융지주 9767억원, 우리금융지주 8227억원 순으로 많았다. 이같은 소식이 발표되자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현대차증권 등 증권가는 일제히 호평을 담은 리포트를 쏟아냈다.

그러나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이어 노조 역시 주주 행동에 나서면서 주총을 앞둔 금융권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KB금융 노조는 지난달 9일 이사회에 임경종 전 수은인니금융 대표이사를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내용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 제안서를 제출했다. KB금융 노조 측은 "임 후보는 은행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실무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KB금융 노조는 지난 2017년부터 주주제안 사외이사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번 KB금융 노조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이번 주총에서 결정된다. 만일 KB금융 노조 추천을 통해 사외이사 입성에 성공하면 다른 금융지주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4대금융그룹은 이달 27명의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지주사들은 최근 정부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방향에 맞춰 대대적인 이사회 개편에도 나설 계획이다. 올해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권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 노조의 이사회 입성 시도는 앞으로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캐스팅보트' 국민연금 영향력 커진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전경. 출처=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전경. 출처=연합뉴스

이번 주총 시즌에서 케이티(KT)와 신한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여러 차례 강조해온 국민연금이 이들 기업의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어떤 과정과 방향에서 의결권을 행사할지도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현대백화점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회가 추진한 한무쇼핑의 인적 분할에 제동을 걸었다. 당초 현대백화점은 지주회사(현대백화점 홀딩스)를 신설하고 알짜 자회사인 한무쇼핑을 지주사 소속으로 인적분할하려고 했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46.3%)과 한국무역협회(33.4%)의 합작법인으로 무역점, 킨텍스점, 충청점, 목동점, 남양주아울렛, 김포아울렛 등 핵심 점포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영업현금흐름이 2100억원에 달했다.

국민연금 수탁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달 10일 열린 현대백화점 임시주총에서 이같은 인적분할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고 이에 따라 찬성이 64.9%에 그치며 '참석 주주 3분의 2이상(66.7%) 찬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의 현대백화점 지분은 8.03%다.

시장에서는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을 무산시키는데 국민연금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알짜 회사 한무쇼핑을 현대백화점에서 떼어내 지주회사로 이전하는 방안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소액주주 측에 힘을 실으며 안건 통과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사진 출처=KT
사진 출처=KT

최근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차기 대표 숏리스트(압축후보자)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 부문장,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임헌문 전 KT매스총괄 사장 등을 올렸다. 이사회가 정한 심사기준에 따라 이들 4인을 대상으로 면접 심사를 진행한 후 이달 7일 최종 후보자 1인을 확정 발표한다. 이후 이달말 정기주총 표결을 거쳐 대표이사 선임을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국민연금의 찬성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은 KT 지분 10.35%를 보유하고 있다.

당초 유력 후보자로 거론된 윤진식 전 장관과 김성태 전 의원,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 중량급 인사들은 모두 숏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여당 의원, 관료 출신들로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하며 현 정부와 인연이 깊다.

지난해말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구현모 대표의 연임안을 담은 KT 이사회 발표가 이뤄진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고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이후 구 대표는 결국 사임의 뜻을 밝혔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는 최근 수년째 증가하는 추세다.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2018년 18.82%, 2019년 19.07%, 2020년 15.75%, 2021년 16.25%로 10%대를 쭉 유지하다가 지난해 20%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1~9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이 주식 투자한 국내 기업 수는 1185개사로, 이들 주총에서 총 3364개의 안건이 다뤄졌다. 이중 국민연금은 23.72%에 이르는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10개의 안건당 2건 이상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지적은 이젠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표현이 됐다. 소유분산 기업에 대한 경영 방식의 변화를 압박하는 정부의 최근 기조를 감안하면, 올해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의 캐스팅보트 역할이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재계 주요 기업들 가운데 이달 15일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의 주총을 시작으로 기아(17일), LG디스플레이(21일), 현대모비스(22일), 신한지주·현대차·LG이노텍·한화솔루션(23일), KB금융지주·LG에너지솔루션(24일), LG전자(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LG화학(28일), SK하이닉스(29일) 등의 주총이 예정돼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사진 출처 = 이코노믹리뷰DB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사진 출처 = 이코노믹리뷰DB

현대차는 이번 주총에 기말 배당금을 전년 대비 50% 늘린 6000원으로 책정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주)LG는 주당 2800원(보통주 기준)이던 연말 배당금을 200원 늘려 3000원(우선주 3050원)으로 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결산 배당으로 2021년 대비 3배 수준인 보통주·우선주 1주당 자사주 0.033주 현물 배당을 결정하고 이를 주총에서 승인받는다.

이번 주총 시즌을 앞두고 배당절차 변경을 하는 기업들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배당액을 알지 못한채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소위 '깜깜이 배당'을  앞으로는 ‘선 배당액 확정·후 배당기준일 지정’으로 변경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서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등 현대차 주요 계열사와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 포스코케미칼 등 포스코 계열사들은 투자자가 배당금을 확인한 후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배당절차를 개선하는 안건을 이번 주총에 안건으로 올렸다. 삼성생명, 신한생명, 카카오 등도 배당 절차 변경안으로 주총 상정했다.  

기업들의 신사업 추가와 사명 변경도 눈에 띈다. 현대차와 기아는 인증 중고차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관 내 사업 목적에 금융상품판매대리와 중개업을 추가한다. LG전자는 기간통신 사업과 화장품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할 예정이다. 포스코케미칼은 포스코퓨처엠으로 사명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