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 업계도 빙하기를 맞았다. 결국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곳도 많아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내부갈등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생존할 수 있나"

스타트업 업계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투자액은 7조원을 넘겼으나 하반기에는 극적으로 꺾여 3조7000억원에 그쳤다.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창업자 77%가 장기불황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스타트업 중 기업공개에 성공한 곳은 5곳에 불과하다. 기업공개 대어로 꼽히던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아예 무기한 연기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던 VC들도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자본금을 모으지 못해 라이선스를 반납한 VC도 8곳에 이른다.

시장 분위기가 나빠지자 구조조정 칼날도 몰아치고 있다. 회생절차를 밟고있는 물류 플랫폼 메쉬코리아를 비롯해 MCN 업계의 제왕이던 샌드박스네트워크가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AI 교육 솔루션 업계의 신성이던 뤼이드, 물류 스타트업 두핸즈도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회원수 76만명의 오늘회도 비슷한 상황이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덩치 작은 스타트업...선제적 대응 중"

현장의 분위기에는 일부 온도차이가 있다. 구조조정 공포가 현실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 커머스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업계가 지난해 상반기부터 심상치않은 흐름을 보이고 하반기에는 크게 어려워졌으며, 현재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구조조정에 돌입한다는 것 보다는, 일종의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론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들어간 스타트업으로 소개되는 곳들은 시장을 대표하는 간판들이고, 그 만큼 덩치가 큰 곳이라 타격도 크다"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에 적은 투자를 받은 대다수 스타트업들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일단은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경영관리를 총괄하는 B씨는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논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트업 구성원은 대부분 소수인데다 각자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하며 다양한 일을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구조조정할 가능성은 낮다"라며 "뉴스를 보면 당장 스타트업 업계가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언론에 나오는 스타트업들은 수 백명 단위의 중견기업들이고, 대다수 스타트업 업계 사정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개발대행 스타트업 이사인 C씨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당장 무너질 것 같지 않다"면서 "시장이 어렵지만 명확한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다면 상당한 투자를 유치하는 스타트업들이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은 일단 선제적 대응으로 위기를 넘겨보자는 기류가 강하다"고 말했다.

C씨의 말대로 시장이 어렵지만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곳도 존재한다. 신약개발 전문기업 온코닉테라퓨틱스가 최근 260억원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엑스와이지도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통합 플랫폼 ‘모두의충전’을 운영하는 스칼라데이터도 GS에너지로부터 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최근 유치한 바 있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도 지난 11월 49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에 성공했다. 건설인력 중개 플랫폼 ‘가다’를 서비스하는 웍스메이트도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NHN, IBK기업은행, 호반건설 CVC 플랜에이치벤처스 등으로부터 40억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A를 유치했다.  
 
구조조정 만큼 무섭다...조직의 붕괴

덩치가 작은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의 공포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다만 덩치가 큰 업계 간판들이 그 덩치에 비례해 타격도 더 크게 받고, 또 적나라하게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인 스타트업들이 겪는 당장의 공포는 오히려 조직의 붕괴에 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이사인 D씨는 "올해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지 몰라 각 부서의 현황을 전사적으로 파악하는 등의 작업은 하고 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지만 구조조정 등을 염두에 둔 것은 아직 아니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어렵게 인재를 유치한 상황에서 당장의 상황이 어렵다고 갑자기 구조조정하는 것은 회사의 출혈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그 보다는 조직 내 구성원들의 보상 측면에서 고민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팬데믹 기간 많은 스타트업들이 개발자들을 공격적으로 채용하며 이들의 연봉이 높아지고 숫자가 많아진 상태에서 다른 직군과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D씨의 말대로 스타트업들은 2020년과 2021년, 공격적인 개발자 채용에 돌입한 바 있다. 당시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ICT 기업을 중심으로 개발자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스타트업들도 개발자 구인에 사활을 걸었고, 이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연봉은 천문학적으로 뛰었다. 단순 연봉 인상은 물론 쾌적한 근무환경 등을 내걸고 개발자 유치 전쟁을 벌였다.

문제는 글로벌 경제가 얼어붙고 스타트업 돈줄이 마르며 시작됐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스타트업 구성원들에 돌아가는 보상이 줄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높은 보상을 받는 개발자들에 대한 비개발자 직군들의 비토 정서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빌리티 기술개발 스타트업에서 운영총괄을 맡은 E씨는 "주로 돈을 직접 벌어오는 영업직군과 개발직군의 갈등이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조직이 흔들릴 수 있다는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