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에 자리잡은 삼표산업 성수 레미콘 공장(성수공장)은 근대화의 상징이자 우리 모두가 쌓아올린 땀과 눈물의 역사다. 

시작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원산업그룹(현 삼표산업)이 부지를 매입해 건설했으며 이후 크게 성장해 단일 기준 아시아 최대 레미콘 규모로 활동한 바 있다.

2010년대에는 연간 레미콘 생상량이 175만㎡에 달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컬러콘크리트 적용 건축물로 유명한 서초동 부띠크모나코, 논현동 어반하이브와 노출콘크리트로 세련된 이미지를 자아내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도 성수공장의 레미콘이 들어갔고 공장 반경 5km 내의 모든 아파트는 성수공장에서 납품한 레미콘으로 건설됐다.

반세기 가까운 시기 성수공장에서 생산된 레미콘은 24평(79.3㎡) 아파트 200만호를 건설할 정도다.

성수공장 건설 현장. 출처=삼표그룹
성수공장 건설 현장. 출처=삼표그룹

성수공장은 주민들을 지키는 단단한 울타리의 역할도 했다. 

원래 서울 성수동 지역은 상습 침수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 모래 퇴적층이 쌓이며 물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인근 주택가가 잦은 수해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매립을 지시했고 그 위에 올라선 성수공장에서 생산된 레미콘은 성수동 주택가를 위협하는 수해를 원천봉쇄하는데 성공했다. 강 중심 부분의 골재를 퍼올려 수심을 확보하고 한강변은 모래, 자갈 등을 채워 넣어 토지를 조성한 덕분이다.

성수공장. 출처=삼표그룹
성수공장. 출처=삼표그룹

한강의 기적, 그리고 주민들의 울타리였던 성수공장. 그러나 지금 그 성수공장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근대화의 초석을 쌓아올리며 주민들을 지킨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서울숲 및 주변 인프라가 강화되는 한편 주민들의 안전문제가 제기되며 철거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2017년 서울시와 철거를 위한 첫 협상이 벌어진 후 지난 5월부터 시설이 철거되는 중이다. 철거가 모두 완료되면 4만평에 달하는 해당 부지에는 추후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근대화의 과실을 품어냈던 곳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맞이하며 스스로의 몸을 부수고 있는 셈이다.

끝나지 않았지만 미장셴은 영원하다. 오늘도, 사라지고 생겨난다.

응봉역. 사진=최진홍 기자
응봉역. 사진=최진홍 기자

조용한 퇴장
경의중앙선 응봉역에 내리니 따가운 늦여름의 햇살이 내리친다. 한적한 역사를 지나 응봉교 다리에 올라 주변을 본다. 중랑천 기슭에 마련된 체육시설에서 운동하는 어르신들. 자전거와 달리기 운동을 하는 이들의 숨 소리가 낮게 깔린다.

그 너머에 펼쳐진 동부간선도로 옆쪽에 성수공장이 있다.

아니, 있었다. 커다란 차벽을 막아둔 상태에서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길 옆에는 늘어서 이제는 가동을 멈춘 레미콘 차량과, 현장을 철거하는 차량들만이 이곳이 성수공장이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공장 철거 현장 옆에 늘어서 있는 차량들. 사진=최진홍 기자
공장 철거 현장 옆에 늘어서 있는 차량들. 사진=최진홍 기자

현재 배치플랜트 5호기를 시작으로 7월 말에 4호기, 8월에는 1·2·3호기 철거가 마무리됐다. 구부러진 철제 구조물과 앙상한 흔적만 남은 시설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다.

그 주변의 정문과 후문에서는 포크레인과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며 수북하게 쌓인 철거 쓰레기들이 심드렁하게 발에 채인다.

한 때 인부들이 모여 작업하거나 많은 차량들이 오가며 시멘트를 생산하던 현장도 이제는 사라졌다.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되어 옛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철거 현장. 예전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사진=최진홍 기자

"여기 주민들은 다 환영하고 있어요"

응봉교 근처 사거리에서 만난 김창훈(가명)씨는 커다란 차벽으로 둘러친 현장을 힐끔 바라봤다.

60평생 성수동 토박이라는 그는 성수공장 맞은편의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공장이 있으니 무엇보다 아이들 안전이 걱정됐다"면서 주변에 펼쳐진 주택가 사이에 숨은 학교들을 일일히 가리켰다.

어림잡아 보이는 학교만 4개다. "레미콘 차량처럼 큰 차들이 계속 오가다보니 아무래도 주민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된 것이 사실이죠. 철거된다는 말에 부모들 사이에서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철거현장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30대 여성 이미연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성수공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서울숲을 바라보며 철거는 당연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공장 주변이 다 서울숲으로 조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고 있다"면서 "그 중간에 레미콘 공장이 있으니 아무래도 미관상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중랑천 일대. 사진=최진홍 기자
중랑천 일대. 사진=최진홍 기자

실제로 인근 주민들은 성수공장 폐쇄를 요구하며 인터넷을 중심으로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주민들의 안전권 등을 고려하면 당연한 요구로 볼 수 있다. 이미연씨는 "지하철 서울숲역 너머에는 성수동 카페거리가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면서 "공장은 철거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인근 카페거리에서 일한다는 30대 남성인 자영업자 최수민씨는 공장부지에 주목했다.

그는 "공장이 들어선 곳의 입지는 정말 좋은 곳"이라며 "주변에 서울숲이 있고 학교에 아파트에 모든 것이 갖춰져있다. 공장 부지는 말 그대로 금싸라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곳을 공장으로 남겨두는 것보다는 문화시설로 만들어 주변에 잘 갖춰진 시설들과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교통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공장이 있다보니 인근 교통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며 "응봉교는 물론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철거현장을 약간 벗어나 응봉교 아래 체육시설로 걸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리 밑 작게 조성된 문화공간에는 몇몇 사람들이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철거되는건 맞지만..."

중랑천을 따라 평소 운동을 많이 한다던 50대 여성 정순연(가명)씨는 하천 건너의 철거현장을 바라보며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잠시 말꼬리를 흐리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왠지 공장이 사라진다고 하니 마음이 이상하기는 하네요"

공장 인근 아파트 및 학교. 사진=최진홍 기자
공장 인근 아파트 및 학교. 사진=최진홍 기자

정순이씨는 공장이 한창 가동되던 당시를 기억해냈다. "하천 경계에 공장이 있다보니 인부들과 주민들 접점이 많았다"면서 "공장이 거의 24시간 돌아가면서 환한 불빛이 주변을 비추던 것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옛날부터 이 공장은 모래와 자갈을 엄청나게 캐내면서 골재의 보물창고로 불리기도 했다"면서 "인부들과 차량이 줄지어 공장에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공장 철거가 옳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소음이나 미세먼지, 매연 문제가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주민들이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던 것은 맞다"고 강조했다.

같이 운동하던 친구 조미숙(가명)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엇보다 성수공장이 있어 지역경제도 괜찮았고, 침수가 사라진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이제는 시대가 변하지 않았나. 달라진 세상에 맞는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멀리서 바라본 공장. 사진=최진홍 기자
멀리서 바라본 공장. 사진=최진홍 기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공간으로
성수공장이 힘차게 돌아가던 시기는 우리가 앞 만 보고 질주하던 시절과 일치한다. 낙후된 도시 인프라에 방치되었지만 생존을 위해 달렸고, 성수공장의 레미콘은 우리가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근대화의 틀을 벗어나 달라진 세상의 메시지를 받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주민들은 공장의 심박소리보다 문화예술이 흐르는 안전한 공간을 원한다.

서울시는 공장 철거가 완료되면 현장을 서울숲과 연계한 청년문화 복합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유력하며 스타트업을 위한 별도의 '스테이지'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서울숲은 물론 인근 카페거리의 문화수요와 시너지를 일으키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장을 둘러본 후 돌아오던 중 응봉교와 지하철 응봉역 입구 사이에서 만난 40대 남성 박준만씨는 이렇게 말했다.

"공장이 사라져도 최소한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해준것은, 사실 공장의 덕도 많이 봤으니까요. 딱 그 정도만. 그 정도라도" 

전성기의 성수공장 전경. 출처=샘표그룹
전성기의 성수공장 전경. 출처=샘표그룹

[도시유산]은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공간에서 '사라지고 생겨나는' 모든 현장을 변화의 순간에 찾아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시작으로 담담하고 중립적으로 담아냅니다. 이 세상 모든 '달라짐의 역사'를 공유하고 싶은 독자분은 편하게 제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