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에서 개명한 국산차 업체 르노코리아자동차(이하 르노코리아)의 느긋함이 업계의 화제다.
지분 매각 의사를 밝힌 2대주주 삼성카드와의 결별에 큰 비중을 두는 분위기가 아니다. 삼성카드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르노코리아 지분을 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나 삼성카드가 지분 매각 절차의 경과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완성차 업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규 투자자를 찾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다만 르노코리아는 신규 투자자를 찾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본연 사업에 집중해 몸값을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르노코리아의 여유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르노코리아의 주주는 르노 그룹 BV(80.04%), 삼성카드(19.90%), 우리사주조합(0.06%) 등으로 구성됐다.
삼성카드는 당초 지난 8월 삼성증권을 르노코리아 지분 매각 절차의 주관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후 7개월여 기간이 지난 이날 현재 지분 매각 절차의 경과에 대해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앞서 삼성카드는 지난 2000년 아시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는 르노 그룹에게 삼성의 완성차 계열사였던 삼성자동차의 지분을 일부 매각한 뒤 2대주주에 올랐다. 인연이 있었다. 삼성자동차가 지난 1995년 출범한 뒤 닛산의 기술을 도입해 첫 양산 모델인 SM5를 개발·출시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치열한 시장경쟁과 1990년대말 터진 외환위기 등 요인을 고려해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다.
2대주주로 남은 삼성은 르노코리아의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되 사명에 ‘삼성’을 남겨 영업이익의 일부를 브랜드 로열티로 지급받는 계약을 르노 그룹과 체결했다. 양사는 10년 단위로 맺은 브랜드 사용 계약을 그간 두 차례 갱신한 뒤 올해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계약을 종료시켰다.

완성차 제조업 성장성 물음표, 투자유치 난항
삼성이 브랜드 사용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건 르노코리아가 시장 경쟁에서 다소 뒤처져 실적에 기복을 보임는 한편 실질적인 수익원으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가 시장 입지를 강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르노삼성자동차’라는 사명을 지속 사용하는 것은 삼성 브랜드 가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네덜란드 자동차 전문 미디어 카세일즈베이스(Carsalesbase)는 “르노삼성차에 대한 삼성 브랜드의 라이선스 계약은 만료되기 앞서 균열을 일으켜왔다”며 “삼성전자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브랜드가 되었지만 국내 자동차 브랜드(르노삼성차)의 어려움이 명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균열이 발생한걸)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매각이 진행되고 있으나 르노코리아 지분을 매입할 투자자가 나타날지는 불투명하다.
전통적인 제조업인 완성차 업계의 국면이 전동화, 자율주행 등 새로운 화두를 중심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놓임에 따라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발맞춰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행보를 고려할 때 신규 투자자가 선뜻 르노코리아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긴 어렵다.

르노코리아, 그룹 중책 맡아 몸값↑
삼성과는 별도로 르노코리아는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르노코리아가 르노 프랑스 본사의 사업 로드맵에 동참함에 따라 몸값을 높이는 분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르노 본사는 중국 시장을 새롭게 공략하기 위해 맞손 잡은 현지 완성차 업체 지리(Geely)와 함께 한국에서 하이브리드 신차를 개발해 2024년 출시할 계획이다. 한국 내수용으로 출시한 뒤 수출하는 것도 고려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지리와 함께 중국에 생산공장을 설립할 계획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부산공장에서 만들어진 신차를 중국에서도 판매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중국에 대한 르노 전략에 르노 코리아와 부산공장의 중요성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르노 본사가 투자자를 찾지 못할 경우 직접 삼성카드 지분을 매입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르노 본사는 현재 자회사로 두고 있는 모터스포츠 전문 법인 알파인(Automobiles Alpine)의 지분을 프랑스 업체 캐터햄(Caterham)과 절반씩 나눠가졌다 다시 매입해 지배회사로 등극했다.

성장 관건은 투자유치 아닌 사업집중
르노삼성차는 다만 국내 증시의 상장사가 아닌데다 최대주주를 두고 있기 때문에 2대 주주를 급히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삼성 입장에서도 오는 8월 르노코리아와의 브랜드 사용 계약이 만료된 이후엔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에 지분을 처분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한국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르노코리아 지분을 매입하는 등 투자의지를 보일 확률은 미미하다.
르노 본사가 향후 삼성카드를 주주로 그대로 둔 채 사업에 몰두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르노코리아 최대주주로서 의결권을 위협받을 우려가 없고 새로운 자본을 유치해 자금을 조달해야 할만큼 재정이 나쁘지도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르노코리아의 영업손실은 전년(797억원) 대비 10분의1 수준인 81억원으로 축소됐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익은 지난 2020년 726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162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르노코리아는 현재 여느 완성차 업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 반도체 수급난 등 대외 악재에 대응하는데 여념 없는 상황이다. 다만 그룹 내 입지가 강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 관점에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개발·생산한 글로벌 모델 XM3가 전세계 시장에서 호조를 이어가고 있는데다, 르노 코리아가 본사 차원의 신차 개발·생산 일정에 참여하는 등 입지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르노 코리아가 당면한 과제는 앞으로 사업을 원활히 영위해 본사의 그룹 성장 프로젝트인 르놀루션(Renaulution)를 완수하도록 기여하는 점이다.

르놀루션은 2025년까지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의 비율을 의미하는 영업이익률을 5%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현금창출능력을 연간 60억유로 이상 규모로 높이는 등 수익성 강화 목표를 골자로 담고 있다. 동시에 204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제품과 생산시설 등을 전동화 하는데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르노코리아는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권역의 사업 수익성을 개선하는 한편 제품 라인업을 재편하는데 기여해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등 중요한 임무를 맡은 모양새다. 올해 들어 사명을 변경해 새롭게 시작한 르노코리아와 첫 수장을 맡은 스테판 드블레즈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한편 드블레즈 사장은 지난달 부산공장에서 열린 사명 변경 기념식 현장에서 “(그룹차원의 신차 개발·생산 계획은) 우리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진정한 시작이 될 것”이라며 “르노코리아자동차는 이번 신차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수 및 수출용 신제품의 중요한 시험의 장인 한국에 가장 적합한 차를 개발하고 수출 기회를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