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도다솔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남은 경쟁당국 심사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결합을 신고한 지 1년 만에 공정위라는 산 하나를 넘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앞으로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등 심사가 남아 있어 갈 길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2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주식 63.9%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의 합병으로 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운임 인상 등의 경쟁제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독과점이 발생하는 26개 국제선에 대해 국내 공항 슬롯을 이전하도록 했다. 아울러 해당 26개 국제선 가운데 운항에 운수권이 필요한 11개 노선에 대해선 슬롯과 함께 운수권도 이전하도록 했다. 독과점이 발생하는 14개 국내선과 관련해선 8개 노선은 국내 공항 슬롯을 이전하도록 했고 수요가 부족한 나머지 6개 노선에 대해선 10년 간 운임 인상 제한 등 시정 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단기간에 모든 노선에 새 항공사의 진입이 어렵다고 보고 반납 시한을 기업결합일(주식 취득 완료일) 이후 10년으로 제시했다.
대신 슬롯·운수권 반납 전까지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평균 운임을 2019년 대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인상 금지 ▲공급 좌석을 2019년 수준의 일정비율 미만으로 축소 금지 ▲무료 기내식 등 소비자 서비스의 주요한 내용을 2019년보다 불리하게 변경 금지 ▲마일리지 제도를 2019년보다 불리하게 변경 금지 ▲인수·합병(M&A)이 성사된 날부터 6개월 내 양사 마일리지 통합방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일각에선 공정위의 엄격한 조건으로 통합항공사의 시너지 약화가 예상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민식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익성이 높은 노선을 경쟁사에 반납하면 가격결정권이 약해지기 때문에 두 항공사 간 M&A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정위 승인을 득한 대한항공은 앞으로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이 남아있다.
현재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국가는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필수신고국가와 영국·호주 등 임의신고국으로 총 6개국이다. 특히 남은 필수신고국 4개국 중 한 국가라도 불허 결정을 내릴 경우 양사 합병 절차는 무산된다.
필수신고국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항공 자유화 국가로, 운수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노선 조정이 쉬워 기업결합 심사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EU와 중국의 심사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EU 집행위원회와 M&A를 위한 사전협의가 진행 중으로, 정식 기업결합 신고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사전 심사가 마무리되면 본심사가 진행된다.
공정위가 운수권과 슬롯 반납과 같은 깐깐한 조건부 승인을 내걸면서 EU 심사 승인 허들이 더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내 경쟁당국의 결정은 해외 경쟁당국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독과점에 있어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EU는 더 보수적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EU는 지난해 4월 캐나다 1위 항공사 에어캐나다는 EU 경쟁당국이 내건 승인 조건이 가혹하다면서 에어트랜샛 인수 추진을 자진 철회했다. 스페인 1위 항공그룹인 IAG의 3위 항공사 에어유로파 인수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나타내며 결국 이를 무산시켰다. 올 초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EU의 반대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도 무산됐다.

중국도 복병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자국 항공산업 보호 명분으로 해외 항공사에 대한 운수권과 슬롯 배분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이웃한 한국에서의 대형 항공사 탄생에 대해 견제할 가능성이 있다.
경쟁당국 심사를 모두 통과해도 절차는 남아있다. 심사가 끝나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획득할 예정이다. 총 들어가는 금액은 1조5,000억원으로, 계약금 4,000억원과 중도금 3,000억원은 이미 납부한 상태다. 유증까지 완료하면 총 63.9%의 지분을 취득하게 된다. 이후 자회사로 2년 정도를 운영한 뒤 하나의 회사로 합병한다. 이어 양사의 자회사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저비용항공사(LCC) 합병까지 마쳐야 진정한 통합항공사가 될 전망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조건이 세부적이고 까다롭기 때문에 해외 경쟁당국도 이를 참고해 여러 조건을 내걸 수 있다”며 “항공산업이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점 등 중요성을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전방위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