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제약바이오 산업, 특히 합성화학의약품 중심의 제약산업은 ‘대기업 자본’ 외면을 받던 시장이었다. 한화그룹이 의약품 자회사 드림파마를 매각하고, CJ제일제당이 헬스케어 사업부문을 한국콜마에 넘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오 산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은 사뭇 다르다. 바이오 분야는 신약개발에 수십년이 소요되고, 시설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반면, 상업화에만 성공하면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업종, 즉 제약바이오 산업이 ‘고부가가치 미래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협회 전문가들 또한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 이유로 ‘고부가가치 미래산업’이라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기업 진출 속도, 고부가가치 산업 방증

대기업들이 제약바이오 산업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시점은 2010년 즈음이다. 삼성, SK, LG의 성공이, 한화와 GS, CJ 등의 진출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이가운데 한화와 CJ는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발을 뺐다, 다시 돌아온 케이스다. 국민의 건강과 직격된 보건산업이 갈수록 팽창하고 있는데다, 바이오의약품 분야 수출이 급증하면서 대기업 자금이 제약바이오 산업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약바이오 전문가들은 이들 대기업들의 진출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체질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반갑다는 입장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지난해 수출액은 162억3,6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6.9% 증가했다. 2020년 수출액은 138억8,60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55.9% 성장을 거두기도 했다. 바이오헬스는 2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장병원 부회장은 “대기업이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제약바이오 산업이 향후 전도유망한 고부가가치 산업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 부회장은 “반도체 등 기존 제조업에서의 생산‧개발 노하우를 활용하거나 거대한 자본을 통해 연구개발(R&D), 생산시설 구축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어 그만큼 시장 경쟁력 확보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 산업 참여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토종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자금력 한계라는 단점 극복도 가능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적극적인 M&A가 기대되고, 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기술수출이 아닌 전주기 신약개발이 가능해 졌다는 기대감도 표출했다.

장 부회장은 “유망 파이프라인, 생산설비 등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단숨에 산업 기반을 갖추거나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보다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또 유망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개발 도중 기술수출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자본력을 갖추고 있어 자체적인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이 탄생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 부회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을 꼽았다. 장 부회장은 “반도체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부문에서 단숨에 글로벌 톱티어급 경쟁력을 갖춘 것이나, SK바이오팜이 임상시험부터 최종 허가, 글로벌 현지 판매에 이르기까지 자체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 같은 대기업들의 성과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시장 전반에도 고무적인 성과로, 전체적인 시장 규모 향상 등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도 장 부회장 분석에 동의했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 산업은 여타 산업들 보다 산업 특성상 오랜 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므로 기술 자체 다음으로는 자금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이 할 수 있는 투자 중에 현재 바이오 시장 만큼 매력적인 시장이 없으므로 다수 그룹이 바이오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국산화, 업계 활력 더한다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 분야 진출은 대부분 외국산이 사용되고 있는 바이오 소재‧장비‧부품(소부장) 국산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 역시 연구 중심 소규모 바이오텍과 협력을 통해 개방형혁신(오픈이노베이션)을 이뤄내는 ‘K바이오 생태계’ 구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인 슈퍼플랜트 4공장을 건설하면서 핵심부품을 국산화하고 있다. 국내 배양기 제조 전문기업인 정현프랜트와 업무협약(MOU)을 체결, 제 4공장에 들어가는 다양한 종류의 배양기를 모두 정현프랜트로부터 공급받기로 했다. 배양기는 살아있는 세포를 대규모로 증식하는 핵심 설비이지만 국내 기술력의 한계로 국산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수입에 의존하던 기술과 설비에 대한 국산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력을 높일 방침이다.

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은 “대기업의 유망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 협업은 결국 국내 바이오 산업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면서 “국내 바이오 의약품 제조 기업들은 원부자재 9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므로 소부장의 국산화와 유망 바이오텍의 스케일업 측면에서 대기업의 투자 확대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소재, 부품, 장비 개발은 내실 있는 중소 기업들이 굉장히 잘 해주고 있다”면서 “대기업이 앞서 말한 기술력 있는 바이오 소부장 기업에 투자를 하고 이런 자본을 통해 더 큰 생산 설비를 마련,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장 부회장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기존 바이오텍, 제약사 등과 협력하며 바이오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첨단 인프라를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과 융합하는 새로운 혁신들도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K제약바이오 글로벌 진출에 긍정적 영향 커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 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실행력 있고 경험도 있고 자본력도 있는 대기업이 유리하고 더욱이나 이런 대기업 중심적으로 인수합병(M&A)가 활성화되면 기업공개(IPO)에 치중돼 있는 자본 시장의 다양성이 확보돼 국내 바이오 산업도 활성화되고 투자 규모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자금이 돌고 대기업 진출이 활발해지면 우리나라 전체 바이오 산업 생태계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기술력을 바탕으로한 우리나라 바이오 업계가 대기업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이프라인 확대 등 기술 투자 증대를 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 부회장은 “대기업은 처음부터 시장 타깃을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으로 두고 있으므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 진출 가속화나 글로벌 생태계 진출 등 성과를 앞당길 수 있다”면서 “기존 브랜드에 기인한 K-제약바이오 브랜딩 전략에도 기여하는 부분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바이오텍‧제약사와도 경쟁,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장 부회장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부분은 있겠으나 기존 제약사들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보다 혁신적인 사업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이며,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나 글로벌 성과들이 기존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동기부여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면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극 뛰어들어 글로벌 제약사인 빅파마들과 경쟁하고,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서 대기업과 마찰보다는 상생,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