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 서울 인사동 나인트리호텔 루프탑에 위치한 '스페이스오' 입구에 들어서자 개량 한복을 입은 스텝들이 고객을 맞는다. 실내에는 모던한 분위기와 달리 한국 전통가구와 소품 인테리어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메뉴판에는 '꿩능이 전골', '오방국수', '궁중증편' 등 온통 한국 전통음식들 뿐이다. 방석과 원형 교자상으로 꾸려진 좌식 테이블에 앉으니 창문 넘어 서울 사찰 명소 조계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BTS를 필두로 한 K-팝 열풍과 영화 '오징어게임' 등 K-컨텐츠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오늘, 음식을 매개체로 K-라이프스타일 전파에 나서는 곳이 있다.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이 호기심으로 바뀌면서 특정 콘텐츠의 단순 확산을 넘어 우리 문화를 전세계인들과 공유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전재식 스페이스오 대표는 "다양한 방안으로 우리 전통 문화를 알리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생활문화를 제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우리전통에 기반한 의·식·주 모든 생활문화분야를 아우르는 새로운 K-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단순 루프탑 바·모던 한식당 'NO', 스토리텔링 다이닝 체험공간
'스페이스오'는 한식과 전통주가 중심인 복합문화공간이다. 식사 한끼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루프탑 바이자 모던 한식당으로 여겨지겠지만, 실제 이 공간의 목적은 우리 고유의 문화코드들을 진부하지 않도록, 우리시대에 맞는 '가치체험(value experience)' 제공에 있다. 따라서 '스페이스오' 주인공은 우리 생활문화다. 그중에서도 식문화 추구한다.
술뿐 아니라 음악, 기물들, 디자인 제품 등 우리문화를 담은 작은 플랫폼으로써 스토리텔링이 있는 다이닝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인 셈이다. 우리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역사, 술 제조과정 등을 전하며 식사하고 작은 문화 강의까지 진행하는 오감충족 공간이 바로 '스페이스오'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징검다리 같은 문화공간인 것이다.

'스페이스오' 이름 속 '오'에 우리 문화 '좋구나', '얼씨구'란 의미의 '좋다(O)'가, 또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오방색, 오미 의미가 담긴 이유다. 전 대표는 "유럽에서는 술을 소중한 누군가와 가깝게 소통하게 만드는 대화의 매개체이자 문화 소양 척도로 바라보는 반면 우리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 본다"며 "서울을 대표하는 동시에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인사동에 우리 술과 음식, 새로운 우리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7년여 전 세계적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의 40주년 기념전시를 총괄하던 중 영감받아 우리생활문화를 전파하는 K-브랜드매니지먼트이자 '스페이스오' 모회사인 '가치앤같이'를 설립했다. 서울대학교 디자인과와 프랑스 유학으로 미술사 석사, 문화정책 박사를 전공한 전 대표는 졸업 후 오랫동안 글로벌 사업을 담당했고, 2009년 CJ미디어그룹에 합류했다.
그의 인생 2막을 연 계기는 CJ에서 영상미디어분야 저작권사업 팀장을 맡아 해외라이센싱 업무를 담당하던 2015년 경 발생했다. 당시 경상북도 문경의 오미자로 와인을 만드는 이종기 박사와 아내인 김종애(전 리쿼리움 세계술 문화박물관) 관장을 통해 '결'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우리 술과 한식을 페어링하는 식문화 공간 F&B 사업으로 확장했다.
전 대표는 "이 선생 전시 오프닝 행사 만찬주로 우리 술을 찾던 중 스파클링 샴페인 오미로제 '결'을 테이스팅하며 큰 놀라움과 설렘을 경험했다"며 "'우리 술도 이렇게 품격 있고 수준이 높구나', '글로벌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술을 콘텐츠로 바라보니 다양한 가능성이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술·음식 통해 지식 파는 주인공 전재식 대표
물론 처음부터 모든 일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전 대표는 사업 초반 서울 종로구 서촌내 20평이 채 안되는 차고에서 혼자 요리하고 서빙하며 강의까지 진행하는 등 파일럿 형태로 시작했다. 하지만 'K-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는 그의 사업은 입소문을 타고 급속도로 번졌다. 그렇게 소수 마니아층만 즐기던 곳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찾는 공간으로 확대됐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던 평일 금요일 기준 하루 저녁 예약손님만 70여명, 낮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예약손님이 100여명이 훌쩍 넘긴다는 전 대표 설명이다. 인당 가격이 7만원~1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않는 매출 규모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이전에는 소셜릴레이션 서비스 '프립'과 '익스피어린언스'를 통해 방문하는 참여자들로 연속 매진행렬이었다.
전 대표는 "중요한 것은 한국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라며 "K-콘텐츠 열풍에 해외 방문객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지만 박물관이나 동영상 강의 보다 음식과 술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의 문화체험을 선호함을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오랜 해외생활은 전 대표에게 제대로된 한국 문화이해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는 "해외생활을 하다보니 한국이 또렷히 보였다. 베를린 택시운전사의 '언제 통일을 하는가', 스페인 친구의 '일본과 사이가 나쁜 이유' 등 생활 속 마주한 수많은 질문 속에서 우리의 것을 잘 알아야겠다 생각했다"며 "이후 서구와 우리 문화,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차이점을 비교했고 한국적 특수성을 깨닫던 중 이종기 박사와 생각이 맞닿아 아이템으로 발전시켰다"고 전했다.
한국 문화의 배움·재발견으로 '프리미엄급 브랜드化' 완성
그렇다면 그가 전하는 음식과 페어링한 한국 문화 강의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 대표는 한 사례로 '책과도(책이 있는 선반을 그린 그림)'를 들었다. 18~19세기 우리 선조들, 특히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거실 대청마루 등에 많이 비치하던 그림으로, 유독 많이 그렸다는 설명이다. 전 대표는 "이는 일본과 중국엔 없는 문화로 '지식'을 귀하게 여기던 한국 문화를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한국의 상류층은 돈이 조금만 있어도 책을 샀고 이를 넘어 그림에까지 그려 넣음으로써 책으로 둘러쌓인 삶을 지향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어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민족이란 의미"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스페이스오' 운영에 있어 우리 옛문헌과 생활문화 속에 나타난 한식재료들, 그리고 차 및 술의 페어링, 즉 '어우러짐'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따로 떼어놓으면 평이할 수 있는 재료들도 조화를 이루는 다른 재료와 만나면 훌륭한 결과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시그니처 메뉴인 '우리한입'은 완산도 김으로 만든 부각에 강릉초당두부가 곁들여지는 매뉴로 새로운 식감과 특별한 맛에 많은 고객이 놀라워 하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우리술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항상 음식과 어우러지는 연결고리를 고민한다"며 "우리 스스로 한국 문화에 대한 배움과 재발견을 하기 바라고 나아가 서구사회에도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훌륭한 식문화 콘텐츠가 있음을 알려 같이 즐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우리는 외국 문물의 일방적 수혜자였다. 프랑스 샤넬, 미국 스타벅스 등 해외브랜드들이 지나치게 일상화됐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우리 콘텐츠 역시 프리미엄급 브랜드로 귀결될 수 있다. 이에 주목하고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