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대 후반이 되신 부모님 댁을 요즘은 조금 더 자주, 길게 찾아뵙게 됩니다. 과거에는 삐끔 둘러보고 왔다면, 두 분이 점점 이인삼각하는 세월이 되면서 이제는 가서 하룻밤 묵으며 도와도 드리고, 지켜도 보게 됩니다. 예전부터 과학 선생님 출신인 부친 반대로 그 편한 전자레인지를 안 쓰고 있었습니다. 절차도 번거롭지만,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 하나를 데우려 해도 다시 끓여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릅니다. 게다가 짜지기까지.
이번에는 가서 그걸 바꾸어 보고자 했습니다.
간단하고 맛있는 레트로 식품을 사가서 그걸 전자레인지에 맛있게 데웠습니다. 적당히 따듯하고, 맛도 좋으니 어떻게 이런 요리를 했는가 부친께서 물어왔습니다. 즉석 식품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2분 돌렸다는 설명과 함께 환경 호르몬 걱정이 없게 전자레인지용 유리그릇에 옮겨 조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러모로 편리하고 안전하니 모친도 도와 드리고, 간편하게도 들기 위해 앞으로 이용해보도록 권해드렸습니다. 이참이다 싶어 전자레인지의 간단 기능도 마저 설명 드렸지요.
나이듦은 적응의 누적이고, 산물일까요? 변화가 그리 유쾌하지가 않을 듯합니다.
나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과거 유럽 출장을 가면 화장실, 엘리베이터, 조명 기구 등이 가는데 마다 다 달라 각 부분을 찾아 작동하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선진국이라는 이들은 왜 이런 것 하나 표준화를 하지 않아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지?”라고 무식(?)한 불평을 하면서 말이죠. 그건 어찌 보면 우리네 아파트 같은데 ‘문고리는 막대형으로’같이 획일적인 지침에 빠져 미나 품위보다 기능 위주로 일하고 살았던 우리네 수준 일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며칠 전 방송인 송해(94) 선생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송해 1927’이라는 다큐 영화 개봉을 앞두고 언론과 가진 기회였습니다.
그걸 보고 놀랐습니다. 1927이 선생이 태어난 해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그 나이에도 처음 하는 게 있다니... 1955년 악극단을 통해 데뷔했고, 이후 가수, 코메디언, 배우, 방송 진행까지 경계 없는 연예인으로 활동해왔습니다. 그러기에 현역 최고령 방송인인 그를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큐 영화의 주연을 이번에 처음 맡은 겁니다.
자신이 없어 4개월여나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결국 출연해 영화를 끝낸 겁니다.
94세의 어르신이 처음 하는 게 있다니. 그자체로 놀랍고, 감동이었습니다.
어떠신가요?
무얼 새롭게 해보기가 여전히 불편한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를 익숙한 것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듯합니다.
핸드폰의 익숙한 지도 찾기 앱마저도 수시로 업데이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앱 예약이 불필요한 어느 전시장을 찾았더니 점심시간 12시부터 1시까지는 문을 닫아 기다리게 만들더군요.
또 어떤 세계 최고 산업 디자이너는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은 새로운 빛깔, 새로운 바닥, 새로운 천장, 새로운 조명, 새로운 화장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만드는 그자체가 원동력이라구요. 더구나 나이든 이들에게 권하듯 말합니다. 자신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린 아이처럼 도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 우린 살아가면서 익숙한 것과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이별하며, 이렇게 줄기차게 나오는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 판입니다. 이왕 그렇다면 쫓김이 아니라 기꺼이 적응, 도전 콜이라는 이름으로 가면 어떨까요? 생각하고 살기, 쉽지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