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KT의 행보가 심상치않다. 말레이시아 Kuok(쿠옥)그룹이 보유한 글로벌 데이터 전문기업 엡실론을 품으며 구현모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글로벌 인수합병을 단행한 가운데, 밀리의서재까지 인수하며 콘텐츠 전략까지 단행했다.
엡실론과 밀리의서재 인수는 KT가 그리는 AI 및 디지코 전략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두 기업의 인수라는 이벤트 자체가 KT의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엡실론 품은 이유 뭘까
KT는 8일 엡실론의 지분 100%를 1억4,500만달러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대신증권의 자회사인 대신프라이빗에쿼티(대신PE)를 재무적투자자로 참여시킨 빅딜이다.
빅딜의 배경으로는 엡실론의 글로벌 데이터 인프라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데이터는 국내외 고객 및 해외 통신사에게 PoP(Point of Presence, 해외 분기 국사), 데이터센터, 해저케이블 등 해외인프라에 기반을 둔 국제전용회선, 이더넷, VPN(가상사설망), SD-WAN(소프트웨어 정의 광역 네트워크) 등의 IT(정보기술) 플랫폼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시장 규모만 지난해 기준 72조원으로, 2025년까지 약 40% 성장해 10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알짜배기 시장이다. 이에 KT는 엡실론을 인수해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 진출해 AI 중심의 새로운 전략을 가동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KT가 엡실론 인수를 통해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여도, 당장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서 무언가 선명한 액션플랜을 보여주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플랫폼 솔루션, 데이터센터, 해저광케이블 인프라 등 글로벌 통신의 필수 분야 기업에 대한 볼트온 전략을 가동하며 중장기 플랜으로 글로벌 데이터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KT가 엡실론 인수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솔루션에 대한 시너지를 단기적으로 쌓아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주력 신사업 중 하나인 클라우드가 포함된 AI/DX 매출 증가세가 생각보다 저조한 가운데 기업 매출까지 다소 떨어지는 사황에서 KT 탈통신의 주력 중 하나인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인프라 보강에 엡실론이 활동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공공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여전히 KT가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민간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AWS 및 구글 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트너사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사업 기회가 많아질수록 국내 이통사인 KT의 클라우드보다 AWS 및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국내 바이오 업체 대표는 "처음 KT 클라우드를 사용했으나 인도 법인과 소통하며 국내용의 한계를 느꼈다"면서 "최근 AWS를 선택한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엡실론 인수가 단순한 KT의 AI, 디지코 전략의 일환이 아니라 KT 탈통신 전략의 아킬레스건을 보강하기 위함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여기에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 대한 중장기적 접근이 덧대어지며 AI, 디지코 전략의 외부 팽창에 속도가 걸리도록 끌어내는 것이 KT의 전략으로 분석된다. 당장 KT도 엡실론이 글로벌 주요 거점에 보유한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솔루션을 활용할 경우 KT의 글로벌 데이터 사업이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KT 구현모 대표도 “지금까지는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본사와 해외 지사 간 데이터 연결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많은 불편이 있었으나, KT가 세계에 서비스 거점을 보유한 엡실론을 인수해 글로벌 데이터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세계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아시아 최고의 디지코 기업으로 도약해 KT의 기업가치를 높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밀리의 서재, 기대와 우려
엡실론 인수가 KT의 탈통신에 대한 광폭행보, 나아가 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과 당장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면 최근 단행된 밀리의서재 인수는 디지코라는 키워드를 더욱 선명하게 집중한 사례로 볼 수 있다.
KT는 10일 미디어 그룹사 지니뮤직이 464억원을 투입해 밀리의 서재 지분 38.6%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밀리의 서재는 5월 기준 누적 구독자수 350만 명, 보유 전자책 10만 권으로 전자책 구독형 서비스 플랫폼 중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KT는 밀리의서재 인수를 통해 음원과 오디오 콘텐츠 시너지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설명이다.
KT가 밀리의서재를 인수한 배경으로는 시장성, IP, AI 및 디지코 전략 등이 꼽힌다.
시장성의 경우 엡실론의 사례처럼 큰 틀에서 밀리의서재가 포함된 전자채 시장의 시장성 그 자체며, 해당 시장은 앞으로 팽창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AI 인터페이스가 음원 스트리밍 및 AI 스피커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것처럼, 보이스 인터페이스는 AI 전략을 풀어가는 가장 핵심 가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IP다. KT는 4월 알티미디어, 최근 현대HCN을 품에 넣는 한편 시즌을 독립사업체로 분사해 미디어 전략을 크게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밀리의서재를 통한 IP 전략에 집중, 지니뮤직 중심의 콘텐츠 밸류체인 로드맵이 더욱 탄탄해질 가능성이 높다.
KT스튜디오지니는 밀리의 서재를 통해 IP를 제공받아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며 제작된 영상 콘텐츠는 올레 tv, 시즌, SkyTV 등을 통해 서비스 된다는 설명이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서비스되는 도서들도 KT그룹 콘텐츠 생태계 속에서 오디오북, 오디오 드라마, 영상 콘텐츠 등 2차 저작물로의 확장이 유리해진다. 2차 저작물을 접한 이용자가 책을 찾아보는 선순환 구조도 기대할 수 있다.
AI 및 디지코 전략은 지니뮤직 차원의 흐름에서 큰 의미가 있다. AI 음악 플랫폼 지니를 중심으로 밀리의서재가 보유한 콘텐츠를 포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의 국내 상륙으로 이제 음원 스트리밍도 별도의 음원 콘텐츠를 키우는 경향이 짙어졌다. 멜론도 멜론스테이션이 대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20여 개의 프로그램, 총 650여 회의 방송을 진행하며 누적 스트리밍 4000만 회를 돌파하는 등 승승방구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지니뮤직은 지니에 밀리의서재 콘텐츠를 붙이며 볼륨감 넘치는 스펙트럼을 끌어낼 수 있게 됐다. 나아가 KT 외에 지니뮤직 주주사인 LG유플러스, CJ ENM 과의 다양한 협력도 추진할 계획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5조 5,530억 원이던 음원 제외 오디오 콘텐츠 시장은 2030년 87조 4,600억 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글로벌 오디오북 시장의 규모도 2019년 3조 1,000억원이며, 2027년까지 연평균 24.4%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시장성도 충분하기 때문에 지니뮤직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 적용까지 가능하다.
당연히 큰 틀에서는 디지코 전략이 핵심이다. 탈통신 전략의 청사진 아래에서 지니뮤직의 AI 음악 플랫폼 지니를 중심으로 밀리의서재 콘텐츠가 입체적으로 구축된 후 IP 및 디지코 전략으로 이어지는 콘텐츠 밸류체인을 확보될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 빅데이터 전략도 노려볼 수 있다.
서영택 밀리의 서재 대표는 “밀리의 서재와 KT는 올해 초부터 8개월 가까이 서로의 잠재적인 성장 동력을 극대화하고 콘텐츠 시장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올 방법을 고민한 끝에 양사의 전략적 가치를 기대하며 한 식구가 되는 데 뜻을 모았다“며 “이번을 계기로 독서 플랫폼으로서의 밀리의 서재 성장세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며, 이러한 성장세가 밀리의 서재 파트너 출판사와 구독자 전반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다변화 차원에서 도서출판 IP가 다양하게 활용되도록 콘텐츠 전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동시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독서와 무제한 친해질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KT가 미디어 콘텐츠 전략을 운용하며 지니뮤직을 중심에 두고 밸류체인 그림을 그리다보니, 기업공개에 나서는 밀리의서재가 KT의 증손회사가 되는 아이러니한 그림도 그려졌다. 여러 사정을 고려했을 때 지주사로 나아가려는 KT의 행보와는 180도 배치되며, 나아가 전폭적인 지원도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탈통신, 간다"
KT는 최근 엡실론, 밀리의서재 인수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과 국내 시장 공략은 물론 락인 전략과 기본적인 디지코 로드맵 등 입체적인 전략전술을 강화하고 있다. 그 행보 하나하나에 꼼꼼한 노림수가 깔려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 모든 작업들은 KT의 탈통신 전략을 위한 가능성 타진이라는 '퍼즐'의 일부라는 평가다. 나아가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선진화 전략에도 집중하면서 이제 완전한 탈통신 인프라 기업으로 탄생하려는 KT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최근 KT는 Enterprise부문 및 AI/DX융합사업부문을 최근 완공된 ‘KT송파빌딩’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KT송파빌딩은 에너지·실내공기·보안·안전과 같은 빌딩관리부터 사원증·우편배송· 좌석예약·헬스케어 등 업무 및 복지 전 영역에 AI·로봇·미디어·블록체인과 같은 KT의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와 기술을 집약시킨 미래형 AI 타워라는 설명이다.
탈통신 전략의 전진기지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를 바탕으로 KT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KT의 밸류체인 전략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