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 건 필요 없대. 짐만 된다던데!”
이제 등산 좀 해볼까 하던 지인에게서 돌아온 답이었다. 나름 오랜 경험을 토대로 이것 저것 상세히 알려주고 있었는데 이런 답변을 듣고 보니 힘이 빠졌다.
연배가 나보다 제법 위인 지인이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고 싶어 했다. 우면산 정도를 산책 삼아 계속 다니다가 다른 산으로도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한산성 둘레길처럼 초보자가 갈만한 완만하면서도 걷기 좋은 코스를 몇 곳 추천해 주면서 등산복이나 장비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일러줬다. 지인이 산책을 갈 때 착용하던 것은 그냥 여기 저기서 선물로 받은 등산화와 셔츠 정도가 전부였다. 꾸준히 산을 다니면서 필요에 따라 나처럼 하나씩 장만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 역시 초보자 시절 생각없이 구입했던 것들은 장롱 속 짐만 되었고,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 제법 있었기에 이런 시행착오를 줄여줄 속셈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5년을 넘게 북한산 도봉산 노고산 일대를 주름잡고 다니면서 경험으로 깨우친 귀중한 내용이었다. 등산화는 큼직하고 발목을 꽉 잡아 줄 수 있어야 하고, 등산복은 디자인, 브랜드 그리고 가격 보다는 땀이나 기온 변화에 대비할 수 있을 것 그리고 밋밋한 색깔 보다는 화려한 것도 좋음을 알려줬다. 사시사철 모자도 중요하고 베낭 역시 비싼 것 보다는 사이즈 별로 두어 개를 준비해서 산행 준비물에 따라 바꿔가며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준비해야 할 필수품으로 스틱이 꼭 필요함을 강조했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릎이나 발목이 그리 쉽게 닳는 것인 지 몰랐다. 그때는 웬만한 당일치기 등산으로는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가파르지 않은 길에서는 뛰어 다니기도 예사였다. 그러던 것이 40대 후반이 되자 바위나 계단을 내려 올 때 왼쪽 무릎이 살짝 이상함을 느꼈고 그 뒤로는 스틱을 필수품으로 들고 다닌다. 함께 등산을 즐기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면 무릎 때문인 경우가 제일 많다. 해서 오랫동안 등산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산행에는 반드시 스틱을 쓴다.
내 몸을 지켜주는 스틱을 짐이라 생각하기도
그런 얘기를 해준 지 몇 주 뒤에 되돌아온 대답이 “스틱은 필요 없고, 짐만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물어보니 주변 사람 몇몇이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체중이 무려 세 자리나 되고 등산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실제 등산장비를 제조하기도 하는 완전 전문가였다. 등산에 관한 한 두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있지만, 대답이 ‘스틱은 무용지물’이라 했으니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등산 초보자는 산행 코스를 쉽게 잡을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 자기 한 몸 가누기도 쉽지 않다. 그런 산행이라면 스틱도 짐스러울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산길은 좁고 나무 가지나 뿌리도 많아서 익숙치 않으면 걸리적거리기만 한다. 반면 초 고수의 경우, 며칠씩 걸리는 긴 산행이 아니라면 스틱의 사용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초 고수들을 보통 날다람쥐에 비유하곤 하는데, 가파른 바위 길도 훨훨 날듯이 오르는 그들에게도 스틱은 별로다.
스틱은 이런 정도의 초보나 초 고수를 뺀 모든 사람들에게는 필수다. 무릎은 한번 상하면 회복이 되질 않기에 나이가 들면 철저하게 보호하면서 다녀야 한다. 가끔 운동 삼아 산에 가는데 스틱을 사용하면 운동이 많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부러 힘들게 오르내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는 해줄 말이 별로 없다. 내 몸의 체중을 분산시켜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고 미끄러짐을 방지해서 훨씬 안전한 등산길을 보장해 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소중한 무릎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스틱이다. 오랜 산행 경험에서 우러나서 해준 조언을 애써 무시하는 그를 보고도 해줄 말이 없었다. ‘무릎 한번 상해 보면 알게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 땐 이미 늦다. 다행이 그 지인은 더 이상 스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 등산에 관심을 보였을 뿐 가벼운 산책 그 이상을 하지는 않았다. 천만 다행이다.
그 선배는 젊어서 갖은 고생을 거듭한 끝에 자수성가한 분이다. 자녀들은 이미 다 장성해서 일가를 이루고 있지만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나 같이 보통 사람처럼 자라지 않고 갈 수 있는 엘리트 코스를 다 밟아 왔고, 커서도 직장 걱정 집 걱정 없이 살고 있는 것에 가끔씩 부러움을 느낄 때도 많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그런 환경은 나로서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선배는 술이 들어가면 늘 입에 달고 있는 것이 있다. “가족이 힘인가 짐인가?” 하는 물음이다. 술 자리 대상이 누구이든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살아온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아온 사람은 나지만, 정작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해 보질 않았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다 장성해서 하고 싶은 일이면 뭐라도 할 수 있는 선배의 집안 환경에 비하면, 여전히 초등학생인 막내와 팔순이 넘은 부모님까지,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 가득한 세상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주고 스스로에게 위안과 힘이 되어 주는 존재 역시 이들 가족이다. 이런 나도 지금까지 가족을 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선배는 왜 그런 생각을 하실까 싶기만 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 주는 것도 가족이고, 주저 앉고 싶을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가족이고 그게 힘이 아닐까 싶은데, 함부로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선배 역시도 마찬가지 겠지만 말이다.
금융권부터 여러 제조업에서 근무를 했지만 팀원들 수는 항상 소수였다. 이직할 때면 커뮤니케이션 팀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매번 그룹 회장이라 불리는 사람과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끝날 때면 “팀 인원은 얼마나 있으면 되겠나?” 같은 질문이 뒤따랐다. 내가 생각했던 모범 답안은 ‘많다고 일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니, 적은 인원이라도 제대로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인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 오랜 기간 동안 같이 일했던 팀원들의 숫자는 몇 명 되지가 않는다. 뒤돌아 보면 아쉬운 부분도 많다.
내가 먼저 사람을 가리기도 했지만, 다른 어떤 업무 보다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은 습득하고 배우기가 힘들다. 회사 전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특히 회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그런 정도로 정리가 되려면 많이 읽고 써봐야 한다. 수박 겉핥기가 아니라 깊이 있게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많이 써봐야 잘 쓰게 된다. 상황에 맞게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오랜 시간을 두고 수없이 많은 시도와 노력 끝에 만들어지는 결과다. 조바심 가지지 않고 차근차근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만 가능해진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볼품 없는 지게 작대기가 버팀목인데
덕분에 오랜 기간을 두고 함께 해온 몇몇 후배들은 계속 커뮤니케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선배로서 옆에서 함께 해 준 것도 있지만, 스스로가 부단히 노력한 때문이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는 혼자 하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된다. 예전에 구조본 산하에 있었을 때 본부장이 “팀원이 부족해서 일을 어떻게 하냐? 다른 팀에서 한 두 명이라도…”라고 말할 때에도, “제대로 된 인력이 아니면 팀 업무에 도움되지 않습니다”며 늘 사양해왔다. 당시는 하루 하루가 전쟁과 같았는데, 그런 급박한 상황에 업무에 대한 기초적인 능력도 없는 인원을 덥석 받아서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비자발적 소수정예 팀이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 가장 까칠한 팀이었다. 힘이 되지 못할 팀원이라면 배제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늘 일손 부족에 허덕였다. 남들은 일당백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업무를 함께 할 팀원이 부족해 늘 이리 뛰고 저리 뛰곤 했다.
동업자가 갈라서게 되는 것이 처음에는 의지할 힘이 필요했으나,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난 뒤엔 서로가 짐이 되어버린 상황이 된 때문이다. 회사가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신규 인력들을 계속 필요로 한다. 그러다가 경기가 꺾여 버리거나 암초를 만날 때면 부담스러운 짐을 벗어버리려 하는 것이 속성이다. 경기가 좋았던 적이 언제인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이기에 회사 생활의 대부분이 구조조정이 횡행하는 살벌한 안개 상황의 연속이다. 경험에 의하면 이럴 때 힘이 되는 인력들이 제일 먼저 희생된다. 나서서 일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곳에서도 그런 힘은 필요로 하기에 먼저 떠나기도 한다. 반면 짐스러운 존재들은 끝까지 버틴다. 짐에 짐이 겹겹이 쌓이는 꼴이다. 다이내믹하던 조직이 둔화되는 과정이다.
내가 하는 가장 큰 오해가 하나 있다. ‘내가 일을 배우던 예전에 나는 팀의 가장 큰 힘이었지만, 요즘 애들은 하나 같이들 짐스럽기만 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아재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이런 생각들 하지 않을까 싶다. 있는 휴가도 쓰지 못했고, 퇴근 시간은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저녁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였다. 집안 일이 있어도 팀장님이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면 열 일을 제쳐 둘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무슨 소리냐?’고 할 법 하지만, 그 때는 회사 일이라면 가정일은 당연히 포기될 수도 있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늘 오랫동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팀장이 찾으면 언제든 달려가고 늘 옆에 있기만 하면 그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정작 힘이 되는 것엔 등한시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지금의 직장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가끔 나무하러 산에 가는 형들을 따라 다니곤 했다. 솔가지며 소죽 끓일 풀이며 나무를 지게에 한 가득 담아 지고 가는 그 뒤에서 도와줄 요량으로 “지게 작대기는 내가 들고 갈게”라고 하기도 했다. 지게의 짐만 해도 버거울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데, 거추장스럽게 무겁고 길다란 나무 작대기까지 들고 가는 형이 딱해서 한 얘기였다. 초딩의 덩치 작은 내가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지게 짐 가득 지고 가는 사람에게서 지게 작대기를 뺏으면 안 된다는 것을. 대충 깎아 만든 지게 작대기는 볼품 없고 무겁게만 보였지만, 비탈길에선 무겁게 짐 진 몸을 지탱해주고, 풀 숲을 헤치고, 뭐라도 나타나면 안전을 보장해 주는 필수품이다.
예전 등산 경험이 전무했던 대학교 때 일이다. 중산리 입구에서 금속 메달처럼 만들어서 열쇠고리 같은 것을 기념품으로 팔았다. 이름이나 간단한 문구를 새기기도 했는데, 제법 비쌌는데 함께 갔던 친구가 제일 큰 메달에 자기 이름을 새겨서 목에다 걸었다. 그리곤 의기양양하게 산을 올랐다. 한참 오르다 보니 나도 지쳤지만 친구는 겨우 손바닥 반 만한 메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꼬꾸라질 듯 몸을 자꾸 숙였다. 한나절 동안 중산리에서 천왕봉도 오르지 못할 저질 체력으로는 메달 하나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거품 물고 넘어 갈 듯 지쳐서 로타리 산장에서 뻗어버린 기억뿐이다. 그때 우린 너무 초보였다.
산에서 내 몸무게를 나누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스틱이다. 하지만 왕초보에게 스틱은 커녕 메달 하나도 감당 못하고, 날다람쥐 초고수에게도 스틱은 짐스러울 뿐이다. 소중한 스틱도 평평한 능선길에서는 짐이 되기도 한다. 사실 능선길 그리 길지 않다. 사람도 마찬 가지다. 때로는 힘이 될 때도 있지만, 가끔씩 부담스레 와 닿기도 하고 짐이 될 때도 있다. 오르락 내리락 먼 길을 생각하고 있다면, 짐 다 버릴 생각은 말아야 한다. 때로는 짐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를 지켜줄 때가 많다. 지게 작대기 무겁다고 내 팽개쳐 버리면 지게에 가득한 보물도 지키기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