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한진가 경영권 분쟁의 축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서 조현민 ㈜한진 부사장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조 회장을 위협하던 3자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산업은행의 참전으로 사실상 동력을 잃은 반면 ㈜한진의 2대 주주 HYK파트너스가 경영 참여 시동을 걸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3자연합의 행보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만큼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원태 회장, 산은 업고 경영권 방어 성공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은 현재 마무리 되는 수순이다. 다음 달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3자연합이 별도의 주주제안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3자연합은 지난해 초 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맞서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펼쳐왔다. 시작은 사모펀드 KCGI였지만 그해 3월 한진칼 정기 주총을 앞두고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건설이 진열에 동참하면서 조 회장을 견제할 대항마로 떠올랐다. 3자연합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진칼 지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온 결과 지난해 4월에는 조 회장측 지분을 처음으로 역전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당초 지난해 주총에서 패배한 3자연합이 올해 주총에서 본격 승부에 나설 것으로 전망해왔다. 확보한 지분율을 바탕으로 주총회사 이사회 교체를 추진, 사실상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지 않겠냐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으로 항공산업 재편이 이뤄지면서 판은 완전히 달라졌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마련과 관련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의 유상증자로 참여하기로 하면서 한진칼의 지분 10.7%를 확보한 3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그 결과 3자연합의 지분율은 41.8%까지 내려갔다. 당시 조 회장측 지분은 36.7%로 3자연합에 5%p 이상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산은이 조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면서 조회장 측은 47.4%의 지분율을 확보, 단숨에 3자연합의 지분율을 앞지르게 됐다. 즉, 3자연합이 올해 주총에서 주주제안에 나선다고 해도 안건이 통과할 가능성이 사실상 낮다는 말이다. 

산은은 한진그룹의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산은을 캐스팅보터가 아닌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던 산은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를 가진 조원태 회장 측에 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3자연합이 대주주는 맞지만 국책은행인 산은과 맞서기 부담스럽다는 점도 주주제안을 포기한 이유로 꼽힌다. 대신 산은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산은과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내비췄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최근 언론을 통해 “3자연합의 주장을 산업은행이 대신했기 때문에 이번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는 주주제안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경영진 감시와 견제 등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은행과 이해관계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내분설도 일축하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3자연합 해체설 및 불화설 등은 사실 무근”이라며 “다만 한진칼의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산은과 3자연합은 주주로서 같은 입장이라고 본다.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전했다. 

조현민 부사장, 그룹 경영권 분쟁 축으로

한진칼을 둘러싼 잡음은 일단락된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한진그룹 전체의 경영권 분쟁이 끝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 ㈜한진에서 경영권 분쟁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한진 2대 주주(9.8%)인 사모펀드운용사 HYK파트너스가 조현민 부사장을 겨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진은 HYK파트너스로부터 의안 상정 가처분에 관한 소송이 제기됐다고 22일 공시했다.

앞서 HYK파트너스는 지난 1월 주주제안서를 보낸 바 있다. 지난해 12월 ㈜한진에 첫 공식 서한을 보내며 압박에 나선지 1개월만이다. 하지만 ㈜한진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HYK파트너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다음달 ㈜한진의 정기 주총에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HYK파트너스가 보낸 주주제안서에는 ▲이사 최대 정원 증원(8명→10명)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집중투표제 미적용 조항 삭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후 10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의 이사 자격 상실 ▲전자투표제 도입 ▲중간배당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조 부사장의 이사회 진입 금지를 끌어내는 한편 실질적인 경영 개입에 나서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당시 HYK파트너스 또한 “조 부회장의 경영 참여는 가족 중심 경영을 답습하려는 의도”라며 “오너 일가와 독립적인 입장에서 견제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HYK파트너스가 거듭 공격에 나서면서 조현민 부사장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조짐이 이는 모양새다.

대한항공이 산은과 맺은 계약에 따라 지주회사 한진칼과 항공 관련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난 조현민 부사장은 또 다른 주요 계열사인 ㈜한진에서 경영 보폭을 넓혀왔다. 특히 지난해 연말 부사장으로 승진한 후 사내이사 선임은 당연한 수순으로 전망됐다. 사내이사를 발판으로 장악력을 넓힌 후 이르면 내년 초 ㈜한진의 대표이사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현재 조 부사장의 우호 지분은 최대주주인 모회사 한진칼 등을 포함해 27.41%다. 여기에 GS홈쇼핑(6.62%)과 우리사주조합(3.98%)까지 포함하면 38.01%다. HYK파트너스가 4대 주주인 국민연금(6.38%)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표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40%를 웃도는 소액주주가 HYK파트너스의 편에 서는 경우 의외의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실제 전자투표제와 중간 배당을 실시하라고도 주장한 것은 소액주주와 기관 투자자 표심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한진은 올해 주총부터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각각 3%까지만 인정하는 이른바 3%룰을 적용받는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싸움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한진그룹을 둘러 싼 경영권 분쟁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3자연합이 경영권 분쟁에서 완전히 발을 뺀 게 아니라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따라 3자연합의 향후 지분 추가 매집이나 조 회장 압박에 나설 가능성 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HYK파트너스의 ㈜한진을 향한 맹공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부터 공격에 나선만큼 당분간 지분 확보 등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