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월계점 주류 코너. 사진=박재성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마트 월계점 주류 코너. 사진=박재성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새롭게 자리잡은 술문화에 주류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와인이 '국민주류' 반열에 올랐고 전통주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제2 전성기'를 맞은 반면, 위스키와 맥주 시장은 울상을 짓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혼술' 또는 '홈술'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영향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 1년. 집안으로 들어간 주류트렌드는 국내 술시장 판을 흔들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주류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와인 판매 비중은 27.7%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국산 맥주는 전체 주류 매출의 25.2%를 차지해 2위를, 소주는 17.1%로 수입 맥주를 제치고 3위에 올라선 반면, 수입 맥주(15.9%)는 4위로 밀려났다.

'비싼술=와인' 옛말, 일상서 즐기는 '국민주류'

다양한 주종 중에서도 와인 상승세가 매섭다. 지난해 와인 수입 물량과 금액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와인 수입량과 수입액은 각각 3만8969t, 2억3927만 달러(2599억원)를 기록했다. 아직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지난해 12월 수치를 제외해도, 이미 사상 최고치였던 2019년 수입량과 수입액 3만3797t, 2억386만 달러(2214억원)를 뛰어넘은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 27일까지 이마트의 와인 판매 신장률 역시 작년 동기대비 37% 증가했다. 특히 12월에는 판매량이 무려 81.8% 껑충 뛰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식당이나 주점의 야간 영업이 제한되면서 주류 소비문화가 '홈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와인은 특별한 날 마시는 비싼 술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낮은 도수로 일상에서 즐기는 술이란 '인식 변화'가 주효했다.

와인은 지난해 대형마트와 편의점 '효자 상품'에 올랐다. 전염병 감염 위험이 걱정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근거리 소매점 매출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소매점을 중심으로 와인 수입량을 대폭 확대하면서 가격은 낮아지고 상품 종류가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 저가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데다 소매점 이용이 늘면서 와인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편의점업계는 와인시장에 올인하고 있다. '스마트오더' 서비스를 도입하고 와인 앱을 오픈하며 전용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상품 구색을 확대하고 있다. 와인을 구매하러 왔다가 안주류 등 다른 상품을 구매하는 연계 매출이 있어서다.

제2 전성기 맞은 막걸리, 코로나19로 수혜  

'아저씨 술'로 여겨지던 전통주도 코로나19로 어깨춤을 추고 있다. GS리테일 상품 판매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통주 매출(막걸리 제외)은 전년 동기보다 30.5% 증가했다. 이는 2018년의 전통주 매출 증가율 14.1%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조사 결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지난해 9월 최고치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인터넷이나 앱으로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편리성을 앞세우며 시장을 확대한 영향이 컸다. 전통주는 정부의 전통주 활성화 일환으로 2017년부터 무형문화재·식품명인이 빚은 전통술, 지역특산주 등에 한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 100% 비대면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막걸리가 코로나19시대 홈술시장을 노린 기업들의 다양한 제품과 트렌디한 마케팅으로 2030 MZ세대 인기를 끈 점도 매출 확대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막걸리 기업들은 달콤한 맛을 첨가하거나 도수를 낮추고 젊은 층 감성을 자극하는 패키지를 통해 2030세대를 공략했다.

서울탁주는 지난 2018년 출시한 '인생막걸리' 용기를 기존 불투명한 녹색에서 벗어나 투명으로 바꾸고 체크 이미지를 넣은 레트로풍 라벨 디자인으로 리뉴얼했다. 지평주조와 국순당은 각각 '지평막걸리', '1000억 유산균막걸리' 도수를 5%로 낮춰 2030세대 여성 소비자층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 영향에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조사에서는 20대 남성과 20~30대 여성층에서 향 첨가 막걸리 음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지난해 고흥유자주, 귤주, 마셔블랑 등 시트러스 계열 전통주가 신규 인기 품목으로 등장하는 등 젊은 층에게 친숙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SNS가 제품 판매에 큰 역할을 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혼술, 술스타그램, 구독서비스 등이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전통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곁들이는 푸드페어링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농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향첨가 제품들이 증가하고 있고 이런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며 "탄산이 첨가된 제품과 무감미료 제품 선호가 증가하면서 중간급 프리미엄 제품 성장이 증가세"라고 말했다.

가정용·무알콜로 대체된 맥주, 콧대 낮춘 위스키

반면, 소주와 맥주 시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피해를 가장 크게 봤다.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오후 9시 이후 영업이 종료되면서 B2B 시장을 중심으로 매출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홈술족' 증가에 따른 가정용 맥주 소비 증가는 주류 업계 수요 변화에서도 감지됐다. 국내 맥주시장 1·2위를 차지하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올해 가정용 맥주 수요는 유흥시장용 수요를 앞질렀다.

구체적으로는 오비맥주의 경우 기존 5대5 수준이던 유흥시장 대 가정시장 매출비율이 지난해 4대6로 바뀌었고, 하이트진로도 기존 6대4 정도에서 지난해 3.5대 6.5로 뒤집혔다. 그나마 유흥시장 빈 자리를 가정용을 공략한 저도수와 무알콜 맥주가 대체하며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

국내 무알코올 음료 시장 규모는 2012년 13억원대에서 지난해 약 150억원으로 올라섰다. 특히 지난해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 음료의 무알콜맥주 ‘하이트제로0.00’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955만캔을 돌파하면서 지난해 연간 판매량은 767만캔을 넘어섰다.

무알콜 시장 성장은 맥주기업들의 제품 확대로 이어졌다. 오비맥주는 무알콜 맥주 ‘카스 0.0’를, 칭따오도 '칭따오 논알콜'을 내놨고, 롯데칠성음료는 3년만에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 디자인을 바꿨다. 세계시장조사 연구기관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세계 무알코올 시장의 규모가 2017년 160억 달러에서 2024년까지 연평균 7.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마트 월계점 주류 코너. 사진=박재성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마트 월계점 주류 코너. 사진=박재성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동안 맥주시장을 잠식하던 수입맥주 역시 '비주류'로 전락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촉발된 불매운동 여파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던 일본 맥주는 지난해 9위까지 떨어졌다. 수입맥주 2위인 중국 맥주도 중국발 코로나 여파로 수입이 줄면서 전반적인 수입맥주 시장이 축소됐다.

'독한 술' 위스키시장은 '혼술'과 '홈술'을 즐기기 좋은 저도주 열풍에 더욱 침체된 상태다. 수년간 독주라는 이유로 주류트렌드가 위스키를 기피한데다 코로나19로 저도주를 찾는 주류음용 문화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시장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주요 브랜드들은 마케팅 방향을 전환해 새로운 경험과 낮은 도수를 선호하는 MZ세대를 타깃한 부드러운 저도주나 칵테일 레시피를 적극 소개했다. 유튜브 등에서 위스키에 탄산수, 사이다 등을 섞은 칵테일 제조법이 속속 등장, 쉽게 만드는 칵테일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서다.

동시에 도수를 낮춘 저도주 및 소용량 제품도 출시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소주병 사이즈 소용량 제품을 내놓는가 하면, 커피전문점 커피빈과 칵테일 RTD 제품 '깔루아 에스프레소 마티니 캔'을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디아지오코리아 역시 알콜 도수를 업계 최저 수준인 32.5도까지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