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욱 편집국장]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진 해다. 한국 역시 코로나19 여파가 피부로 와닿기 시작된 2월 이후,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충격과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가 뉴스의 메인을 차지하며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을 피부로 느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을 경험했다.

경제적 타격은 가히 매머드급이다. 감염 차단을 위해 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대규모 재택근무에 들어갔으며 업종별 특성에 따라 달리했던 영업환경은 ‘언택트’ 중심으로 재편됐다.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자영업자들의 눈물은 한해 내내 멈추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국가적 비상사태로 경제의 흐름이 일순간에 ‘턱’ 막혀버린 것이다.

전방위 타격받은 한국경제... 기업은 ‘패닉’

한국경제의 신음소리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신종 바이러스 창궐 직후 세계 곳곳에선 확진자 급증으로 ‘국가 봉쇄’ 조치가 내려졌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11일에서야 ‘팬데믹’을 공식 선언했다. 그 사이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은 이미 코로나 감염지대에 들어갔다.

각 국의 국제선 항공노선이 상당부분 폐쇄되고 코로나 공포로 해외여행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암흑기’를 보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만 해도 승무원을 포함해 직원들이 순환휴직(일부 무급휴직)에 돌입했고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은 직원 600여명을 정리해고 했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직원들이 간간이 버티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이달 15일이면 지급이 중단된다.

항공사 스스로도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대한항공은 기내식과 기내면세점 사업부를 1조원에 팔기로 하는 등 긴축경영에 들어갔고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건은 업황에 영향을 받으면서 끝내 거래가 무산됐다.

백신 원료를 수송하는 대한항공  사진=대한항공
백신 원료를 수송하는 대한항공 사진=대한항공

제조업체들의 심리적·경제적 위축도 상당하다. 주요 대기업의 공장직원들이 잇따라 감염되면서 생산라인 곳곳이 멈춰섰다. 코로나19 창궐 초기만 해도 공장폐쇄가 간간이 있었지만 대규모 감염발생에 대한 예방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이나 기아차 광주공장 사례처럼 공장직원들의 코로나 확진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간헐적인 공장폐쇄는 언제든 가능하다. 가뜩이나 코로나 국면으로 최악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업계 역시 근무자들의 확진사례가 속속 나오면서 이커머스와의 경쟁과 더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굳이 코로나 여파가 아니었어도 올 한해 기업들은 강력한 규제 프레임에 갇혀 숨죽인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때문이다. 지난 9일 ‘3%룰(상장회사의 감사 선임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법안)’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일찍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7대 경제단체는 “경제계 대안에 귀를 기울여 수용해달라”며 정부와 여당에 간곡히 법안 수정을 요청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계는 '3법' 통과로 기업 경영권이 지나치게 침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권이 뒤숭숭한 사이 금융계에서는 대형 사모펀드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가뜩이나 패닉상태인 한국경제를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자산운용사인 라임과 옵티머스의 사모펀드가 금융사기로 드러나면서 조단위의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졌고 금융당국이 수습에 나섰지만 여전히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라임의 경우 판매사에 대해 ‘100% 배상 결정’을 내린 금감원의 조치를 두고도 말이 많았고 공공기관의 투자, 정치권 연루설까지 겹치면서 사모펀드발 어수선한 국면은 좀처럼 꺼질 줄 모른다. 

K바이오, K배터리, 증시활황... ‘반전스토리’ 완성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가경제가 초비상 사태에 접어들었지만 위기 속에서도 우리기업들은 기회를 찾았고, 또 놓치지 않았다.

세계 바이오시장에서 ‘K바이오’가 주목받은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 사태 초반 확진자 증가로 중국과 더불어 ‘민폐국가’ 오명을 받던 한국은 체계적 방역시스템과 바이오기업들의 진단제품이 주목받으면서 빠른 시간 내 ‘클린국가’로 이미지 전환을 이뤘다.

그 결과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세계 곳곳으로 수출돼 ‘K바이오’의 위상을 재정립시켰다. 현재 수출용 진단시약은 총 221개 제품으로, 전 세계 170여개국에 수출 중이다. 11월까지 누적 기준, 수출금액만 총 2조5000억원에 이른다. 진단키트와 함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셀트리온이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CT-P59(레그단비맙)’의 임상 2상 투여를 완료했고 GC녹십자도 혈장 치료제 ‘GC5131A’의 3차 생산에 돌입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K배터리’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도 2020년 한국기업사의 한 획에 해당한다.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이 선두주자다. 이 회사는 지난 2분기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착수한 지 20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세계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지난해 4위에서 3계단이나 상승한 것. 경쟁사인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역시 지속적인 연구개발(R&D)과 그룹의 추진동력으로 각각 4위와 7위를 기록하며 ‘톱10’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국내 배터리 3총사의 활약은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역성장 중인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더 눈에 띈다. 

라임, 옵티머스 사태로 팬데믹급 충격을 받았던 금융시장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동학개미운동’으로 촉발된 증시 열풍이 좋은 시그널이다. 상반기 증시를 살렸던 ‘개미들’은 하반기 들어 코스피 지수 신기록 행진을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촉발로 폭락했던 증시 국면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대거 사들이며 외국인이 빠져간 자리를 잘 메워 ‘V자 반등’을 성공시켰다. 여기에 지난 6월 SK바이오팜을 시작으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공모주 열풍을 주도하며 IPO(기업공개) 시장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특히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2030 세대들의 증시 진입은, 코스피 지수가 전인미답의 2700선을 뛰어넘는 '전초' 역할을 했다.

시장의 흐름과 별개로 위기 상황에서 직접 반전스토리를 쓴 기업들도 있다. 대한항공은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여객수요가 감소하는 위기 속에서도 화물 공급으로 시선을 돌려 2~3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해 주목받았다. 아사이나항공과 제주항공이 주도한 ‘무착륙 관광비행’ 상품 역시 위기에서 기회를 찾은 케이스다. 이 상품이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확대되면서 올해 내내 어려움을 겪던 면세점업계에도 모처럼 활기가 느껴진다.  위기에서 주춤하며 출발했던 2020년이, 반전과 기회를 찾은 2020년으로 점차 마무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