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 참고

[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관리신탁 수탁고가 70% 가까이 늘며 올 상반기 국내 은행들의 부동산신탁 수탁고 증가를 이끌었다. 특히 관리신탁 상품 중 하나인 을종관리신탁은 한해 만에 88%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을종관리신탁은 장기간 외국체류 등으로 부동산 소유권을 타인에 관리해줄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지만, 최근 급증한 원인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절세 꼼수'라는 지적이다. 다만 내년부터 법 개정에 따라 을종관리신탁을 통한 종부세 회피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을종관리신탁 88% 급증에 '두둑해진' 부동산신탁 수탁고

14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신탁회사로 등록된 국내은행 16곳은 올 상반기 51조6737억원 규모의 부동산신탁 수탁고를 쌓았다. 작년 상반기 43조4176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19.0% 증가한 규모다. 은행권이 판매 중인 모든 신탁상품 가운데 가장 큰 증가세다.

올 상반기 부동산신탁 수탁고가 두둑해진 데는 관리신탁 수탁고가 증가한 영향이 주효했다.

은행권이 판매하는 부동산신탁 상품은 크게 담보신탁, 관리신탁, 처분신탁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관리신탁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나 직접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올 상반기 국내 은행의 관리신탁 수탁고는 1조475억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6295억원)와 비교해 66.4% 증가한 규모다.

특히 관리신탁 상품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상품은 을종관리신탁이다. 

관리신탁은 갑종관리신탁과 을종관리신탁 등 두 종류로 나뉜다. 갑종관리신탁은 부동산 실소유주가 신탁사에 소유권 뿐 아니라 임대차, 세무, 운용수익 등 관리업무 일체를 위탁하는 상품이다. 반면 을종관리신탁은 단순히 보존목적으로 소유권만 신탁사로 바꿔 위탁하는 상품이다. 을종관리신탁은 장기간 외국체류 등 일정 기간 동안 부동산소유권을 타인이 관리해줄 필요가 있는 고객이나, 상속분쟁 등 부동산과 관련된 분쟁이 타결될 때까지 재산권이 임의처분될 수 없도록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관리신탁 두 종류의 연간 수수료율은 통상 시가의 0.1%~0.6% 수준이다.

은행권 을종관리신탁 수탁고는 작년 상반기 4536억원에서 올 상반기 8541억원으로 무려 88.3%나 늘었다. 갑종관리신탁 수탁고가 10.1%(1758억원→1935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8배 이상 높다.

이에 따라 은행을 비롯한 부동산신탁사,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권 전체 관리신탁 수탁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서 전 금융권 관리신탁 수탁고를 집계한 결과, 올 상반기 기준 금융권 을종관리신탁 수탁고 규모는 총 9조7122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7280억원) 대비 11.3% 늘었다. 이 가운데 은행권 을종관리신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작년 상반기 5.2%에서 올 상반기 8.8%로 3.6%포인트(p) 올랐다.

'종부세 회피 도구'로 전락한 을종관리신탁…내년부터 활용 못해

이 같은 국내은행들의 을종관리신탁 수탁고가 급증한 원인은 정부의 종부세 개편과 맞물려 있다. 다주택자에 누진세율이 적용되면서 늘어난 세금 탓에 을종관리신탁을 절세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신탁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부동산신탁사 한 관계자는 "다주택자의 경우 주택 수가 많을수록 누진세율이 적용되면서 종부세 부담이 커지는 데 을종관리신탁은 다주택자가 주택 중 일부의 소유권을 신탁사로 넘겨 부담을 줄일 수 있다"라면서 "신탁수수료와 종부세 감면에 따른 이익을 비교해 신탁수수료를 내는 게 더 이득으로 판단한 다주택자들이 더 몰린 영향으로 볼 수 있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을종관리신탁을 활용해 위탁자인 부동산 실소유주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사에 넘기면 다주택자의 경우 종부세 산정을 위해 합산되는 보유주택 수가 감소한 것으로 간주돼 왔다. 

올 상반기 수탁고와 관련된 내용인 점을 감안해 지난 7월 22일 이뤄진 세법개정안 발표 이전이라고 가정하면, 3주택 이상이거나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을 소유한 경우에는 2주택 이하를 소유한 경우보다 최대 0.5%p 누진세율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다주택자가 1주택만 본인 소유로 하고 나머지 주택을 신탁사에 소유권을 넘기면 누진세율을 회피할 수 있어 종부세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다주택자는 최대 0.5%p 적용되는 누진세율과 0.1%~0.6% 수수료율을 가진 을종관리신탁 사이에서 비용부담을 줄이는 데 유리한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이 생겨난 것은 2014년 지방세법 개정(지방세법 제107조 3호)으로 신탁부동산에 대한 재산세 부과 시 납부 의무자를 종전 위탁자(실질 소유주)에서 수탁자(신탁사)로 보기로 한 이후부터다.

지방세법 개정 이후 을종관리신탁을 통한 다주택자의 감세 효과는 감사원 발표 자료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감사원이 발표한 '부동산 임대소득 등 세원 관리 실태' 감사보고에 따르면, 납부의무자를 신탁사를 보게되면서 걷지 못한 종부세 규모는 2017년~2019년 3년간 총 1037억원 규모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부동산을 신탁하면 종부세 부과 대상에서 빠지거나 낮은 과세율을 적용받게 돼 조세 회피 수단으로 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며 제도 개편을 권고한 바 있다.

다만 내년부터는 종부세 회피 목적으로 관리신탁을 활용하는 방식이 효과가 없어질 전망이다. '꼼수 신탁'이라는 비판이 일자 정부가 신탁재산에 대한 종부세 납세 의무자를 수탁자에서 다시 위탁자로 바꾸기로 결정해서다. 정부는 지난 7월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0년 세법개정안'을 확정·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관리신탁을 활용한 종부세 회피 통로는 차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