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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에서 배운 것

속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주행선과 속도제한 표지판에 따라 안전주행을 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고속도로에 비유해 보면, 금융회사들은 자동차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투자은행들은 ‘금융공학’기법이라는 최첨단 엔진을 장착하여 기존의 상업은행 등을 비웃으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전 미국 연준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통화팽창 정책으로 고속도로 전 구간에 밝은 불빛을 비추어줌으로써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더욱이 안전주행을 책임져야 할 미국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해 고속도로의 속도제한 표지판과 주행선 표시마저 제거했다. 이로 인해 고속도로는 ‘아우토반’으로 변해버렸고, 운전자들은 어떤 위험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결국 스피드를 만끽하던 투자은행들은 제동장치 고장으로 연쇄 추돌사고를 일으켰고, 뒤따르던 상업은행들마저도 사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현재 상황은 사고 수습이 잘 되지 않고, 오히려 인근 공장 및 주택가(실물경제)로 불길이 옮겨붙고 있는 양상이다. 각국 정부가 사고와 화재 진압을 위해 엄청난 자원을 퍼붓고 있지만 완전히 진압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통해 한국의 증권산업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국내에서는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투자은행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와 연관 지어 그 시행 여부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논란은 문제의 본질과는 크게 괴리되어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본질은 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 선물회사의 업무 영역이 상호 확대되고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국내 금융투자회사들이 글로벌 금융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뿐이다. 이를 두고 문이 열린다고 해서 바로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다.
금융투자회사는 본질적으로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위험 수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경영의 핵심요소이다. 자기자본 규모가 크면 클수록 유리한 경쟁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글로벌 금융회사와 비교하여 20~3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현재 우리나라 금융투자회사들은 자기자본 확충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구하는 노력을 무엇보다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안이한 리스크 판단의식의 위험성이다. 리스크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과 리스크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은 별개의 사안으로 봐야 한다. 시스템에 의존한 안일한 대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국내 금융투자회사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한국 증권산업이 국내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리스크를 부담하고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금융기관을 정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Risk’와 ‘Return’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선행될 때, 국내 자본시장에 또 다른 미래(Di-fferent Tomorrow)가 열리지 않을까 한다.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대표이사
■ 1951년생으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IB본부장, 동경사무소장 등 주요보직을 두루 거쳤고 LG증권 국제 및 법인 사업부장, LG선물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4년 대우사태로 기울어가던 대우증권 대표이사를 맡아 업계 1위로 올려놓고 2008년까지 대우증권 고문을 역임했다.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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