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택민 경기디지털콘텐츠 진흥원장
“굴뚝산업 돌파구 콘텐츠에 있어”
발문
"콘텐츠 비즈니스를 생산, 유통, 마케팅 등의 시야에서 넓게 바라보고, 전자, 네트워크를 비롯한 다른 산업과의
시너지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
권택민 경기디지털콘텐츠 진흥원장은 민간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이다. 데이콤과 하나로통신에서 20여년간 근무하며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변화를 현장에서 목도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정부 정책의 변화에 대응해 거대 통신업체의 전략 밑그림을 그려온 전략통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경기도 산하 경기디지털콘텐츠 진흥원장에 부임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도내 콘텐츠기업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놀 수 있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생태계 조성이라는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것. 권 원장은 “집무실에 마음 편히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지난달 24일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콘텐츠 진흥원의 원장집무실에서 만난 권 원장은 직접 탄 커피를 건네면서 “바쁘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길지 않은 임기 동안 실행에 옮길 전략들을 털어놓았다.
전임 원장의 퇴진으로 공석이 된 자리여서 부담은 더욱 크다. 직원들의 업무를 파악하고, 도내 콘텐츠기업 동향을 파악하다보면 하루 일과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공식 업무를 마친 후에도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귀를 기울이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그가 임기 중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문이 바로 ‘콘텐츠 생태계’의 구축이다. 콘텐츠 생태계는 콘텐츠·굴뚝 기업의 상생의 장이자, ‘융합’을 비롯한 기업 혁신의 전진기지이다.
그는 미국의 미디어그룹인 ‘컴캐스트(Comcast)’를 보라고 강조한다. 서비스 가입자들은 프로그램 시청은 물론 추가 비용 없이 매달 바뀌는 온라인게임도 즐길 수 있다.
컴캐스트는 게임과 인터넷, 그리고 케이블을 접목한 대표적 융합의 사례이다. 비단 미디어 그룹 뿐일까. “첨단 디자인의 각축장이 된 전자업계도 콘텐츠가 제품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고 권 원장은 말한다.
콘텐츠는 비교우위의 원천이다. 문제는 생태계 구축까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담당자가 삼성전자나 LG전자의 과장급 담당자를 한번 만나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아십니까. 뛰어난 아이디어나 상품이 있어도 대기업 담당자들을 보기 어려운 게 이 분야 중소기업인들이 직면한 냉엄한 현실입니다.”
권 원장이 ‘콘텐츠 생태계’ 조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각종 정책 인센티브를 앞세워 콘텐츠산업 발전의 큰 그림을 주도적으로 그릴 필요는 있다는 것.
그의 콘텐츠 생태계론은 ‘위기감’도 반영한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를 비롯한 국내 콘텐츠업체들은 여전히 ‘외화내빈’격이다.
세계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온라인게임업계도 중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콘솔이나 개인용 컴퓨터 게임까지 포함할 경우 국내업계의 글로벌 게임시장 점유율은 3~4%에 불과하다.
애니메이션도 일부 작품의 경우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경쟁국인 일본에 비해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영화도 반짝 히트작은 종종 등장했지만, 전반적으로 침체의 골이 깊다.
권 원장이 발상의 전환을 거듭 강조하는 배경이다.
핵심에는 “콘텐츠는 서비스”라는 그의 지론이 자리잡고 있다. 콘텐츠 비즈니스를 생산, 유통, 마케팅 등의 시야에서 넓게 바라봐야 한다. 전자, 네트워크를 비롯한 다른 산업과의 시너지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국내 콘텐츠업체들은 여전히 ‘업스트림(제작)’에 사로잡혀있다. ‘다운스트림(유통, 마케팅)’을 강화할 수 있어야 양 부문의 시너지를 꾀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전체를 조망할 때 해법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 1990년대 초 빅 블루 IBM을 파산위기에서 구한 루 거스너는 컴퓨터업계에서 근무한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아멕스(Amex)와 과자업체 나비스코의 CEO로 근무한 그가 이 공룡기업을 구한 것도 발상의 전환이 주효했다.
잦은 연착과 고장으로 악명이 높던 미국의 ‘국영철도’ 암트랙이 마케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민간 전문가들을 수혈하면서 환골탈태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콘텐츠는 서비스이다
<겨울연가>는 일본의 중년 여성들에게는 청량음료였다. 남편을 직장에 빼앗긴 일본 여성들의 노스탤지어이자, 로망이었다. 이 드라마로 제작사는 300억원 정도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일본은 1조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거두었다.
일본은 이미 콘텐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디즈니사의 백설공주나 미키마우스에 환호하지 않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포켓몬>이 세계 각국의 아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콘텐츠산업도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역량은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콘텐츠 상품을 다양한 장터에서 유통시키는 돈벌이 노하우는 일본기업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원소스 멀티유즈’ 비즈니스 역량이 한수 처지는 것.
권 원장이 지난 2004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디지털콘텐츠 사업단장으로 근무하며 구축한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Global Service Platform)’의 성공도 그의 폭넓은 경험이 주효했다.
“소프트웨어 부문도 아이디어나 제품은 뛰어난데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중소기업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상대로 인프라와 유통, 마케팅 네트워크 등의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한몫 했지요.” 그의 포부는 당차다. 도내 중소기업의 글로벌시장 공략과 더불어 비즈니스 모델의 재구축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또 이들을 상대로 마케팅, 법률, 자금 정보도 제공해 복합미디어기업 성장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방침이다.
경기도는 성남에 게임 클러스터, 부천에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고양에 방송 클러스터, 파주에 출판 단지 등을 조성했다.
클러스터간의 융복함화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경기도 내 콘텐츠 클러스터가 반도체, 자동차, 전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고, 주력 제품이나 서비스의 부진으로 위축돼 있는 굴뚝산업에도 혁신의 돌파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인터뷰 막바지에 밝힌 포부의 한 자락이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Profile|권택민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장은 1959년생으로 데이콤 무선사업단 사업부장, 하나로통신 경영기획실장, 전략사업단장,경영기획담당, 경영지원실장을 거쳐 2004년 한국디지털콘텐츠사업단장에 부임했다. 교육과학부 디지털교과서 정책자문위원, 숭실대 정보과학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아시아경제신문이 만든 고품격 경제 주간지 '이코노믹 리뷰' (www.ermedia.net)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