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헤지펀드에서 중동 국부펀드까지
한국 저평가기업 사냥 ‘혈투’
‘월가의 상어’ 칼 아이칸이 다녀간 3년, 그동안 국내기업들은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했다. 금융위기는 국내기업들의 거대한 몸집이 부실 속에서 커졌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기업들은 지배구조가 취약해졌고, 몇몇 금융사들은 매물로 나오기 시작했다.
변동이 심한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격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저평가돼 있던 기업들은 금융위기로 그보다 평가절하된 것이다.
론스타-외환은행 사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들은 ‘제2의 론스타’로 탄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몇몇 헤지펀드들은 한국 정보를 얻기 위해 현지 전문가를 기용해 팀을 구성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몇몇 금융사 매물에는 헤지펀드가 인수 제안을 했다고도 한다. 미국과 홍콩 현지 전문가들은 “금융업계의 통폐합과 대기업의 부실을 빨리 털어내지 않으면 제2의 칼 아이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국부펀드, 한국 공격 조준 중
미국 헤지펀드 관계자에 따르면 2조달러에 달하던 헤지펀드 시장이 45%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헤지펀드도 고사 직전인데 이머징마켓을 노릴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헤지펀드가 고사될 수 있다고 하지만, 금융위기를 견뎌낸 헤지펀드들은 이머징마켓에 다시 들어가 수익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이머징마켓 중 한국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전문가들도 헤지펀드 공략 시기를 내년 중후반으로 잡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적정 환율 1200원을 넘어서 1500원까지 치솟은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펀드오브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에 따르면 블랙스톤과 KKR, 칼라일 등에서 한국 전문가들을 뽑아 한국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옥트리캐피탈과 TRG도 한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블랙스톤의 경우에는 홍콩 씨티그룹 헤지펀드에서 일했던 매니저와 관리자들을 기용했다고 한다. 덧붙여 그는 “이들 아시아 사모펀드(PEF)들은 한국 주식시장과 기업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며 “내년 중후반에 들어갈 계획으로 금융시장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블랙스톤과 KKR, 칼라일 등은 이전부터 한국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홍콩 펀드매니저는 이들보다 유럽계 헤지펀드들과 국부펀드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올 초 석유 가격이 치솟은 덕에 오일머니들의 배는 두둑해졌다”며 “아부다비의 경우 국부펀드만 20조달러”라고 언급했다.
중동 국부펀드만이 한국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2년 전 네덜란드 국부펀드도 한국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적이 있었으며, 이번에는 중국 국부펀드까지 합세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경고했다. 홍콩 펀드매니저는 “중국 국부펀드 규모는 4조~5조달러”라며 “한국 기간산업이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부펀드는 국제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 세계의 기업, 은행, 자원 등 잡식성으로 먹어치웠다. 중동 국부펀드 20조달러, 중국 국부펀드 4조~5조달러를 합치면 24조~25조달러이다. 원으로 환산하면 2400조~25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로 전환된다. 만기도 없고, 투자 결과를 공시할 필요도 없다. 잡식성 국부펀드에 잘못 걸리면 정치적 간섭은 물론, 기간산업까지 빼앗길 우려가 있다.
달러를 국내에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국제적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불투명한 외국 펀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외국 초대형 국부펀드가 한국시장에 진입할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며 “달러 유치라는 나무만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국부펀드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국부펀드만이 한국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2년 전 네덜란드 국부펀드도 한국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적이 있었으며,
이번에는 중국 국부펀드까지 합세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경고했다.
내년부터 쏟아지는 금융사 매물
미국과 홍콩 등 해외 헤지펀드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내년 초반부터 한국 금융사 매물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매물로 나온 금융사들을 보면 증권사 중 유진투자증권, SK증권, 교보증권 등이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매각설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헤지펀드 관계자들은 하나금융지주가 자금이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매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보험사의 경우 금호생명 등이 매물로 나왔으며, 교보생명과 중소형 손해보험사들도 헤지펀드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 헤지펀드 관계자는 “교보생명은 많은 금융사들이 인수 제안을 타진했을 정도로 매물로서 가치가 높다”며 “손해보험사들은 한국 규모에 비해 너무 많아 중소형 손보사들을 매물로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제2금융권에 대한 의견은 공통적으로 “1997년도 당시 제대로 구조조정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증권사는 현재 61개로 집계되고 있는데, 향후 10~20개 정도 더 늘어날 것으로 자산운용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몇 개의 증권사가 있는 게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10개도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 밖에도 캐피털업체는 70%가 매물로 나온 상황이라고 국내 PEF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캐피털업계의 상황이 나빠지자 서둘러 매물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저축은행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HK저축은행이 일본 대형 대부업체 다케후지(武富士)에게 인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년 헤지펀드 작전 ‘합종연횡’
금융위기로 국내 펀드만 반토막 난 것이 아니라 세계 헤지펀드(사모펀드 포함) 규모도 반토막이 났다.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해도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투자할 수 없다. 경기가 좋아지는 내년 중후반부터 규모가 작아진 헤지펀드들은 ‘합종연횡’으로 뭉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국에서 펀드오브헤지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하면서 헤지펀드 규모가 작아진 탓에 헤지펀드들은 서로 경쟁이 아닌 상부상조하고 있다. 금융위기에서 생존한다면 향후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는 “예전 같으면 서로 상생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헤지펀드는 절대 수익을 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전략을 가리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헤지펀드들은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차입비용을 늘리기도 했다.
헤지펀드는 정보가 생명이기 때문에 물밑에서 작전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경쟁사 매니저들과 전략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펀드매니저는 “하지만 규모가 작아졌고 변동성이 심한 시장에서는 ‘서로 연합’ 또는 ‘투자자금을 모아 대표 펀드에 몰아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인터뷰 | 스칼라 조 스칼라 어드바이저 대표이사
“재미동포들, 환투기 세력 가세”
“LA 교포들은 한국의 환율이 어떻게 변동할지 이미 8월부터 알고 있었어요. 수출입 무역업에 종사하거나 한국 시중은행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꽤 있죠. 원·달러가 1000~1200원으로 올랐을 때부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에 다시 IMF가 도래했다’는 기사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어요.”
스칼라 조 대표이사는 미국에서 PEF를 운용하고 있는데, 어느날 한 투자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끊었다.
“한국 모 시중은행의 이사와 친척관계에 있는 교포인데, 해당 은행 이사에게 8월달에 전화가 왔대요. 조만간 한국 환율이 변동할 테니 한국으로 달러를 좀 보내라고요. 간간히 달러가 필요할 경우에는 보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대규모로 보냈죠. 무려 5000만달러(당시 환율 1000원)를 보냈고, 시중은행에서 이자와 환차익을 동시에 얻었죠.”
11월 초 미국 교포 사회에서는 한국으로 달러를 보내는 송금 ‘붐’이 일었다. 환율이 1500~1600원대로 치솟을 당시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은행 관계자들도 달러 송금 대열에 참여했다.
당시 LA신한은행은 한국계좌를 틀고 달러를 보내는 고객에 한해 송금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고 전한다.
“BOA, 메릴린치 등 미국 시중은행들이 부도할 것이라는 위기설이 돌자, 미국 예금자보호 한도인 10만달러만 미국 계좌에 남기고 대부분의 돈을 한국으로 보내기 시작했어요. LA 현지의 한국 계열 독립은행인 한미은행과 나라은행에도 달러 송금하겠다는 교포들이 줄을 섰죠. 현재는 환율이 1300~ 1400원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어서 송금 붐이 가라앉았어요. 달러 가격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보는 거죠.”
차익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고 이 매니저는 강조했다.
“미국 교포들은 미국 세법에 대해 잘 몰라요. 한국으로 달러를 송금할 경우 환차익을 보는 장점도 있지만, 그 차익에 대해 세금이 부과되죠. 한국처럼 금융과세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 소득세로 납부해야 합니다. 한국으로 보내는 돈을 국제통상거래라고 생각하는 거죠.”
연기금에 입맛 다시는 블랙스톤
“달러 유출”vs“국부 유출” 이견
지난 10월 블랙스톤과 연기금이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각각 20억달러씩, 총 40억달러를 공동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주요 투자대상은 인수합병을 비롯한 국내 기업, 기반 인프라시설,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이다.
블랙스톤 말고도 오크트리(30억달러), MBK파트너스(20억달러) 등과 공동투자를 유치했다.
자산운용업계는 근심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블랙스톤이 20억달러라는 거금을 모을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공동투자라는 명분으로 연기금의 20억달러를 블랙스톤의 지분이나 보유 현물에 투자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최근 블랙스톤 지분 가격은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이다. 때맞춰 연기금과 공동투자를 실시한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블랙스톤은 (세계 곳곳의) 주식에 투자한 탓에 글로벌 증시 하락으로 손실을 많이 봤다”며 “연기금 자금을 먼저 투자하는 형태라면 공동투자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 글로벌 마케팅 팀장은 “국내 시장이 40억달러나 투자될 수 있는 규모도 아니고, MOU를 맺었다고 블랙스톤이 반드시 국내에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언급했다.
홍콩 헤지펀드 관계자도 “중국 국부펀드 CIC도 해외 금융기관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블랙스톤이 투자금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며 “현재 홍콩에서도 투자유치 설명회 등을 거치면서 펀드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연기금과 블랙스톤의 공동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은 기우(杞憂)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해외 헤지펀드 관계자들은 블랙스톤의 투자유치력은 뛰어나며, 공동투자로 달러를 끌어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한국에 해외투자가를 유치함으로써 달러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달러 공급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연기금과 블랙스톤의 공동투자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민연금공단 곽대환 해외투자실장은 “블랙스톤과 체결한 MOU를 통해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