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신·재생에너지의 성공적인 확대를 위해 녹색채권(Green Bond) 등의 자본시장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녹색채권 규모는 미미하지만, 정부의 적극적 개입 및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으로 민간 사회책임투자 인식이 제고되면 녹색채권을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 자본시장의 동반 성장세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와 일부 기업이 제반 비용을 주로 조달하는 중에,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자본시장 참여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 비해 발행 규모는 늘어났지만, 현재 국내 녹색채권(Green Bond) 시장 성장세는 매우 더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녹색채권 발행규모는 지난 2013년 146억달러에서 2017년 1631억달러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 글로벌 그린본드 발행 추이 및 배경. 출처=자본시장연구원

반면 국내 규모는 지난해 8월 기준 약 22억8000만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2013년 수출입은행이 첫 발행한 이후의 누적 수치다. 중국은 지난 2016년 342억달러의 녹색채권을 발행한 바 있다.

국내 녹색채권 대다수는 해외에서 발행되는 코리안 페이퍼(Korean paper)다. 대체로 신용도가 좋은 공기업 등이 주를 이루는 중에 간혹 기업도 발행에 동참하고 있다. 원화 표시 채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난해 산업은행, 신한은행, 한국남부발전 등의 발행이 전부였다. 규모 총합 1조원 미만에 불과하다. 

지난 1월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이 3억달러 규모를, 현대캐피탈은 2억원 스위스프랑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지난해 5월 한국수자원공사가 3억달러 워터본드를, 7월 한국수력원자력이 6억달러를 발행한 등의 사례가 있다. 11월에는 LG디스플레이도 동참 3억달러 그린본드 발행했다.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으로 넓히면 발행사례는 조금 더 늘어난다. 지난해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이 5억달러 규모 발행했다. 최근에는 금융권 발행이 잇따랐다. KB국민은행이 4억5000만달러 규모로 후순위채 발행했고, 우리은행은 2000억원 규모 발행했다. 지속가능채권은 녹색채권 상위개념으로 사회적기업 육성이나 저렴한 주택 공급 등에 이용될 수 있는 사회채권(Social bond)을 포함한다.

▲ 국내 그린본드가 첫 발행된 201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의 녹색채권 발행 현황. 녹색채권 상위개념인 지속가능채권 사례 일부도 포함돼있다. 출처=자본시장연구원

단점 대비 장점 뚜렷하지 않은 ‘녹색채권’

녹색채권은 환경 친화적 프로젝트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반드시 친환경 사업 자금으로만 쓰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기업 등이 녹색채권을 발행할 당위가 없는 상황이다. 단점에 비해 장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녹색채권 발행절차는 일반채권보다 복잡하다. 자금이 정해진 목적에 맞게 쓰여야 하기 때문에 이를 검토할 규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적 규제 대신 민간 자율로 규제되는 상황이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기후채권기구(CBI) 등 민간단체 제정 가이드라인이 주로 적용된다. 자금용도, 프로젝트 평가 및 선정 절차, 자금 관리, 사용내역 등이 검토사항이다. 검토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반면 특별한 이득은 없다. 금리가 일반채권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절차를 감당하면서까지 녹색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녹색채권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녹색채권은 자금 및 프로젝트 사후 관리 등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곧 녹색채권의 투자매력 상승과 이어질 수 있다.

자율규제에 필요한 검토비용 등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녹색채권 투자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조세혜택을 제공하는 방안 등도 고려된다.

오덕교 연구위원은 “녹색채권은 투자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므로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등도 가이드라인 제정에 합류하는 추세”라며 “홍콩과 싱가포르는 녹색채권 발행 유도를 위해 현재 80만 홍콩달러 또는 10만 싱가폴 달러 내에서 발행비용의 100%를 지원해주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세계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기조 영향에 따라 녹색채권 발행 증가가 예상되며 이 시점에서 시장여건 마련 및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성공적인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녹색채권과 같은 자본시장 참여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회책임투자 인식 부족이 원인... 국민연금 책임 주장도 있어

국내 녹색채권의 더딘 성장은 결국 사회책임투자(ESG)에 대한 국내 인식 부족과 직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재무상황과 더불어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사회적인 요소들을 고려하며 투자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녹색채권은 주식 등과 함께 사회책임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이용되는데, 사회책임투자 인식이 낮다 보니 분위기 조성이 안 되어 결국 녹색채권 시장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에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인식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공적기금의 해이가 민간기업의 인식저하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관련 시장 축소와 이어졌다는 의미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영국의 기업연금법은 연기금이 기업에 투자할 때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명시하며 관련 지표 등의 제시도 요구한다”라며 “반면 국내 국민연금법 기금운용지침에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라고만 적혀있다”라고 언급했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가 의무 아닌 권고에 그치다보니 참여 비중도 낮아졌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운용자금은 지난해 기준 560조원이고 이 중 국내주식 위탁운용 사회책임투자는 7조 내외였다. 1.3%에 불과한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2014년부터 전체투자액의 60% 내외를 책임투자로 수행해왔다.

이종오 사무국장은 “공익과 수익은 상충한다는 고정관념때문에 반대가 있던 것”이라며 “실제로는 사회책임투자 확대가 수익률 제고와도 이어진다”라고 주장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선진국 사회책임투자(ESG) 총 수익률은 7.86%로 그렇지 않은 투자보다 0.32%포인트 높았다.

▲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사회책임투자(SRI) 및 일반 투자 수익률 비교. 출처=MSCI

국민연금 스튜어드쉽 코드 도입... 녹색채권 확대 기대감

향후 녹색채권 시장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쉽 코드 도입으로 사회책임투자 확장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쉽 코드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지침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제도 도입을 결정하면서 민간기업으로의 확장 기대감도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종오 사무국장은 “스튜어드쉽 코드 도입으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 사회책임투자 비중이 늘어나면 녹색채권 시장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덕교 연구위원도 “사회책임투자 일환으로 국내 녹색채권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국내 녹색체권 제반 시장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인 증가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책임투자 인식 제고로 기업들이 녹색채권 발행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각종 녹색채권 발행업무를 맡아오며 관련 사업에 앞장서온 SK증권 관계자는 “녹색채권 발행은 자금조달과 광고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라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녹색채권 발행 및 투자수요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SK증권은 지난해 삼정KPMG와 녹색채권 시장 활성화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