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외국인들의 미국 주택 매수 규모가 사상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쓸 만한 집을 사기 위해 외국인들과 경쟁해야 했던 미국인 주택 구매자들에게는 큰 경쟁자가 줄어든 셈이지만 향후 주택시장 방향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6일 발표된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 NAR)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로 끝나는 회계연도에 외국인 구매자들의 총 주택 매입 규모는 1210억 달러(135조 4500억원)로, 전년도의 1530억 달러보다 무려 21%나 감소, 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주택에 대한 외국인 구매자들의 관심이 이와 같이 떨어지면서 맨하튼,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그리고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미국 부유층 수요자들의 주택 구입이 한결 수월해졌다.
전체 미국 주택 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그들은 대개 고급 주택 시장에 집중되어 있고, 현금으로 대금을 결제하며, 집 주인이 요구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불러왔다고 중개업자들은 말한다. 이로 인해 현지의 미국인 구매자들도 덩달아 더 높은 가격에, 더 높은 계약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인 매입규모의 급격한 감소는 주택 가격 상승, 달러 강세와 미국과 세계 다른 국가 간의 무역전쟁 등 정치적 긴장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NAR의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역 전쟁을 통해 오고 간 공격적 말들이 그들의 미국 부동산 매입에 대한 열정을 어느 정도 식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철수는 그 동안 이들의 관심과 현금 거래에 맛이 들린 주택 판매자들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주택 시장,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고급 주택을 판매해 온 부동산 개발업체들에게 이미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시에서 엥겔앤볼커스(Engel & Völkers)라는 중개업을 하고 있는 존 장은 "중국인 주택 매도자가 매수자보다 많은 것은 이 일을 하면서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존 장은 고객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것을 지켜보면서 “지금이 현금화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언론의 미국에 대한 보도가 잠재 구매자들을 겁먹게 하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은 미국에 투자하면 안전하지 못하다느니, 중국 투자자들이 자금을 지원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파산했다느니 하는 부정적 보도들이 지면을 채우고 있어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 고객들은 여전히 미국 주택의 가장 큰 구매자이지만, 총 매입 금액은 전년 대비 4% 감소한 304억 달러(34조원)를 기록했다. 두 번째 큰 구매자인 캐나다인은 45%나 감소해 105억 달러(11조 7500억원)로 떨어졌다.
기존 주택 판매는, 가격 상승, 오랜 기간 지속돼 온 매물 부족, 담보 금리 상승 등으로 인해 지난 6개월 중 5개월에서 연간 기준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여기에 해외 구매자들의 구매 감소까지 이어져 시장 불황이 더 가중됐다.
NAR의 로렌스 윤은 "외국 구매자들의 소극적 전략도 주택 시장을 둔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은 지난 해에도 현지 미국인 고객들보다는 더 비싼 부동산을 구매했지만, 지출 습관을 축소했다. 지난 해 외국인이 구매한 주거용 부동산의 중간 가격은 29만 2400 달러였는데, 이는 전년도의 30만 2300 달러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현지 미국인들의 구매 중간값은 이보다 약 5만 달러 정도 적다. 중국 구매자들의 구매 중간값은 43만 9100 달러로 외국인 들 중 가장 높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규모가 큰 아시아 지역 공동체, 좋은 공기 질, 경쟁력 있는 대학이 있는 곳으로, 중국인 구매자의 40%가 이곳에서 주택을 매입할 만큼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구매자들은 자국에서 돈을 쉽게 빼내 올 수 없게 된 데다, 미국과의 긴장 고조를 우려하고 있다.
뉴욕의 부동산 중개업체 더글라스 엘리먼(Douglas Elliman)의 케리 린은, 자신의 거래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과의 거래이지만 최근 6개월 동안에는 중국에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인 구매 고객의 급감에 따라) 현지 미국인 고객에게 눈을 돌리고 있으며, 중국 고객들은 사려는 사람보다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린은 가장 큰 문제는, 중국 정부가 중국인의 외국 송금액을 5만 달러까지만 허용하고, 은행들에게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등 제한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금 용도는 허용하지만 부동산 매입은 대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4년에 미국의 주택을 구입한 고객이 있는데, 8개월 전에 이곳으로 이사와 살다가 마음에 드는 다른 아파트를 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지요. 그들은 지금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에서 주로 휴가와 은퇴 생활을 위해 부동산을 사는 캐나다 구매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구매를 늘려왔는데, 지난 한 해 동안 자취를 감췄다. 달러 강세와, 미국-캐나다 간의 무역 협상을 둘러싼 갈등이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플로리다주의 브렌트 레드우드 중개사는 캐나다의 전문 투자자들은 지금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은퇴 베이비 붐 세대들은 주택 매입 규모를 크게 줄이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불길한 징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