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대구 조일로봇고등학교는 기자가 가본 학교 중 가장 컸다. 학교가 큰 덕분에 실습실과 교실, 교무실이 넓어 쾌적했다. 로봇 특성화고라는 명칭에 걸맞은 실습실도 인상적이었다. 교실 한가운데 로봇을 가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크고 작은 로봇들이 있었고 로봇을 테스트하기 위한 장애물도 비치돼 있었다. 당연히 졸업생들이 로봇 관련 업체로 많이 취업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조일로봇고는 대구 유일 중소기업청 지원 로봇 분야 특성화고등학교다. 2012년 로봇 분야 특성화고교로 지정된 후 조일공업고등학교에서 조일로봇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전자로봇과, 기계로봇과, 자동차로봇과, 로봇콘텐츠과, 전자기계과, 건축그래픽디자인과가 있다. 재학생은 2016년 12월 기준 총 690명으로 남학생 625명, 여학생 65명이다.

▲ 이문영 교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문영 교장은 2016년 9월 취임했다. 올해로 27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그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로봇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학교가 설득됐다고 설명했다. 로봇진흥원의 말을 믿고 로봇 특성화고로 방향을 바꿨지만 그들이 긍정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로봇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 그런 커리큘럼을 따라갈 만한 학생들이 특성화고 입학을 꺼린다는 문제도 있다. 현재 로봇 특성화 고등학교를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부연했다.

아직 우리나라 로봇 산업이 무르익지 않아 힘들지만 중소기업청 지원 특성화고 제도는 한줄기 빛이라고 말했다. 자금 지원 덕분에 취업 역량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중기청 지원이 없을 때는 학교에 자금이 부족해 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기청 측에서 학교 프로그램을 관리하라고 보내주는 지원 인력의 임기가 1년이라는 것”이라며 무기계약 전환도 안 돼서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운영하기 힘들다고 부연했다.

교장실에서 나온 후 전자로봇과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실습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김영현 전자로봇과 교사와 대여섯명의 학생이 있었다. 학생들은 작은 로봇을 가지고 실습 중이었다. 교사들의 걱정스러운 말과 대비되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김 교사는 기초적인 로봇을 교육할 수 있는 기초로봇부터 산업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봇을 갖추고 있다며 말을 시작했다. 

▲ 김영현 전자로봇과 교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로봇 업체, 아직은 실력보다 학력 중시 채용

로봇은 융합학문이라 배우기 어렵고 가르치기도 쉽지 않다. 교사들에 대한 지속적 연수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부족한 상황이다. 로봇으로 학생들이 취업하기에 마땅한 업체가 별로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는 산업체가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채용을 하지 않는 것도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로봇 분야에 투자하는 단계이고 뚜렷한 결실이 나오지 않는 시기라 그런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 3~4년 더 있으면 상황이 좋아질 것 같아요”라고 부연했다.

그는 중기청 지원 특성화과 제도에서 가장 많이 도움이 되는 건 기업 맞춤형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기업 맞춤형 프로그램은 미리 학생과 기업을 매칭해 기업 맞춤 교육을 하는 사업이다.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맞춤반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다. 학교 선생님이 맞춤형 업체를 미리 구해 놓으면 학생들은 방학부터 그 기업에 맞는 훈련을 한다. 그는 “기업도, 학생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라면서 “예전에는 졸업이 다가오면 기업을 찾아서 생소한 곳에 취직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교사는 중기청 지원 제도에서 아쉬운 점으로 맞춤반 제도가 3학년 학생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꼽았다. 2학년 학생부터 기업의 전문 기술을 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중기청이 학과와 관련된 업체에 학교와 함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김 교사는 “기업과 학교가 함께 진행하는 사업이 많으면 취업의 양과 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 좌-손준혁 전자로봇학과 2학년, 우-이희근 로봇콘텐츠학과 2학년,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대학 수준 커리큘럼 미리 학습

김 교사와 인터뷰 중에도 학생들은 로봇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중 한 학생과 얘기를 나눴다. 손준혁 전자로봇학과 2학년 학생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꿈이다. 전자로봇과에서 프로그래밍으로 로봇제어를 하면서 C언어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취업 후에도 야간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 군은 인문계고가 아닌 특성화고를 다니는 것에 불안감은 없다고 한다. 중학생 때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특성화고 진학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특성화고 진학 결심을 전하자 인문계고 진학을 원하는 집안의 반대를 많이 받았다고 부연했다. “학교에 들어와 다양한 대회에서 입상을 많이 했더니 부모님도 특성화고가 나쁘다는 생각을 바꾸셨어요”라며 덧붙였다.

이희근 로봇콘텐츠학과 2학년 학생은 입시를 준비하는 인문계 친구들은 입시 공부와 함께 실습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이미 대학에서 배울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포토샵, 일러스트, 3D-Max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현장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익히고 있다.

이 군은 취업보다는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입학할 때부터 취업이 아닌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인문계에서 중간 정도 공부할 바에 특성화고에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학교에 입학해 애니메이션 공부를 해보니 게임 애니메이션에 빠졌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나 넥슨 같은 게임 대기업에 들어가 게임 애니메이터로 활약하는 게 이 군의 꿈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고 당차게 말하며 “학교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관련 대회에서 보여 주면 대학에 진학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실력 중시하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환영받아

임규배(23세) 씨는 조일로봇고등학교 로봇콘텐츠과를 졸업한 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임 씨는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 특성화고에 진학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인문계에 진학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정도의 성적은 받지 못했다. 빨리 애니메이션을 배우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학교로 조일로봇고 교사들이 홍보를 왔다. 설명을 들어보니 자신에게 맞는 애니메이션 커리큘럼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인문계보다 특성화고의 실습 비중이 크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포트폴리오 쌓기도 좋고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살려 취직하기도 좋다고 말한다. 취업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된 학교의 프로그램은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방문해 경험담을 들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분야는 철저히 실력 중심이라고 한다. “제가 일하는 분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사람이라도 영상만 잘 만들면 대우받습니다”라고 임 씨가 강조했다. 반대로 좋은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영상을 못 만들면 인정받지 못한다.

산업기능요원··· 공업 분야에 80% 이상 집중

임 씨는 산업기능요원의 혜택은 받지 못했다. 주변에도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산업기능요원은 중소기업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면 군 복무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해당 제도 지원을 받으려면 미리 업체 선정이 돼야 한다.

산업기능요원 업체로 선정돼도 해당 회사가 TO를 받아야만 직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1·2순위에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생을 배정하고 남는 인원이 있으면 3순위로 일반고 졸업생, 대학생을 배정한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졸업생 중심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1773개 중소기업이 신청해서 1278개 기업이 선정됐다.

누적 지원 중소기업은 2016년 3월 기준 5981개로 당시 1만8550명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측은 신청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공업 분야 기업이라 다른 분야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특혜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일로봇고의 활약··· 3년간 평균 취업률 55.5%

2015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 우수 2개로 대구 시내 특성화고 4위에 입상했다. 제50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우수 2개를 받았다. 2016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 우수 3개의 성적을 보였다.

2014년 256명 중 130명이 취업해 50.98%의 취업률을 보였다. 2015년에는 271명 중 151명이 취업해 55.72%, 2016년에는 273명 중 163명이 취업해 59.93%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조일로봇고에서는 뭘 배울까?

전자로봇과에서는 로봇 제어 회로를 설계 및 제작하는 방법을 교육한다. 로봇 운영과 보수를 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인 양성이 목표다. 기계로봇과는 로봇 기계의 기초가 되는 CNC선반 조작능력과 CAD‧CAM을 이용한 자동 시스템을 가르친다. CNC선반은 수치제어 선반으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제품을 절삭가공하는 기술이다. CAD‧CAM은 컴퓨터를 이용해 제품설계를 하고 그 설계 데이터를 토대로 공작기계 등을 작동하는 자동 생산 시스템이다. 로봇 용접 등의 기초지식도 교육해 관련 실무에 종사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인 양성에 노력한다.

자동차로봇과는 학생들이 자동차의 다양한 센서, 기계, 통신 등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돕는다. 해당 지식을 무인자동차에 접목해 기초적인 무인탐사 로봇 설계 및 제작을 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인 양성이 목표다. 로봇콘텐츠과는 컴퓨터 교육을 기본으로 로봇용 콘텐츠 제작 및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하는 전문 기술인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전자기계과에서는 로봇 관련 메커트로닉스와 자동화 기계 관련 기술을 가르친다. 첨단 산업 기기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술인 양성이 목표다. 건축그래픽디자인과는 CAD, 3D MAX, 그래픽 디자인, 건축시공 등의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실무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다.

<이문영 교장 인터뷰>

로봇 산업, 10년은 더 있어야

Q: 로봇 특성화고인 점이 특이하다. 로봇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본교는 2012년에 로봇 특성화고로 전환했다. 당시 대구에 있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서 학교 강당에 선생님들을 모아놓고 로봇산업에 대한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 앞으로 3년 뒤에 대구에만 최소 1000여명의 고졸 로봇 관련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철책선을 지키는 군인들이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로봇진흥원의 말을 믿고 로봇특성화고로 방향을 잡았지만 현실을 달랐다. 3년이 지나도 학교에서 로봇 업체로 취업하는 애들이 3명에서 4명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는 로봇을 받아들이는 데 보수적이다. 최소 10년은 있어야 로봇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로봇 관련 업계가 대졸자를 선호하는 이유도 있다. 로봇은 융합학문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그렇고 학교 선생님들도 앞으로 로봇을 계속 밀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Q: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조일로봇고 학생들이 더 활약했으면 하는가?

A: 전자 관련 대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하다. 때문에 국내 전자 제조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전자로봇과 학생에 대한 취업 의뢰가 급감하고 있다. 국내 전자 제조 산업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기계금속 산업도 더 성장해서 우리 학생들의 취업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Q: 특성화고 취업률은 증가하고 있지만 일자리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생각은?

A: 지역 교육청들이 매년 취업률 목표치를 올리고 있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취업률이라는 게 단순히 해마다 오를 수 없다. 올해 같은 경우에는 중소기업 수가 작년보다 줄었다. 그렇다면 취업률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학생들 진로도 수시로 변하는데 어떻게 매년 올리라는 건지 모르겠다. 작년 대구교육청에서 정한 취업률 목표치는 61%였다. 올해는 이보다 더 높이라는 얘기다. 목표치를 맞추지 못하면 교육청 등수가 떨어졌다며 학교에 압박을 가한다. 교육청에서 실질적인 압력을 주므로 학교는 학생들이 꺼린다 해도 취업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적당한 목표치를 준다면 학교는 당연히 양보다 질을 선택할 것인데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