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세이코엡손은 흥미로운 곳입니다. 1942년에 히사오 야마사키가 하토리 가문의 다이니 세이코샤의 투자를 받아 시계회사인 다이와 코교(Daiwa Kogyo, Ltd.)를 설립하며 태동했습니다. 이후 1946년 세이코 시계가 도쿄 올림픽 공식 시간 측정기로 채택되자 세이코의 자회사는 더욱 정확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프린터 개발에 매진, 1968년 세계최초의 미니프린터인 EP-101을 출시합니다.
나아가 그 후속작인 썬오브 EP-101(Son of EP-101)의 후속작이 소위 대박을 칩니다. 프린터 신화가 시작되는 지점이에요. 엡손(Epson)이라는 브랜드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네, 맞습니다. 말하자면 엡손은 전형적인 일본 기술제조기업의 표본입니다. 정밀한 시계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장인정신집단.

코드명 : 엡손 25
엡손은 25일 한국엡손 설립 20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우스이 미노루 사장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었어요. 한국엡손 2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한편, 추후 엡손의 로드맵을 공개하는 자리였습니다.
행사 도중 전기가 내려가 엡손의 프로젝트가 꺼지는 아찔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이는 호텔의 전기 문제였습니다. 여러모로 인상깊은 간담회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장기 플랜인 엡손(Epson) 25가 발표됐습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엡손의 장기 비전인 SE15가 기술적 강점에 집중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방점이 찍었다면, 엡손 25는 초연결의 기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핵심인 프린팅,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웨어러블, 로봇 등 4가지 사업군을 핵심으로 삼는 것이 특징입니다. 2025년까지의 큰 그림으로 이해하면 편하고, 엡손은 매출 1조7000억엔(약 18조원)과 영업이익 2000억엔(약 2조2천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엡손 25의 핵심은 뭘까요? 일단 전에 발표된 SE15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도 프린팅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제조혁신이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SE15가 엡손 25로 넘어오며 프린팅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은 존속되는 한편 제조혁신이 웨어러블과 로봇 등으로 세분화 되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기에서 우스이 미노루 사장의 발언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스이 미노루 사장은 “엡손 25는 고효율, 초소형, 초정밀 기술을 통해 사람, 사물, 정보를 연결하는 시대를 만들어 4대 축을 중심으로 혁신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초연결의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자신들이 가진 기술강점을 극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자연스럽게 제조업에 초연결의 인프라를 연결한 4차 산업혁명이 연상되며, 나아가 전형적인 기술기업의 태세전환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미 엡손은 지난 2010년대 후반부터 로봇 및 웨어러블 기술력을 보여주며 나름의 행보를 거듭한 바 있습니다. 제조에 강점을 가진 기술기업이 초연결의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자세. 엡손은 딱 그 어딘가에 있는 분위기입니다.
엡손이 초연결 시대를 준비하며 내세운 사업 다각화가 엡손 본연의 정체성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주특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제조사의 고집일까요? 아니면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요? 엡손의 로봇기술은 자사의 시계기술에서 파생되어 글로벌 수출의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웨어러블은 오피스라는 특정 B2B 영역에서 찾은 또 하나의 길로 보입니다.

정리하자면 엡손의 사업 다각화는 자신의 강점인 기술과 제조의 카테고리 내부에서 시작된 혁신을 외부의 혁신과 연결한 전형적인 사례로 보입니다. 말로는 장황하지만 사실 제조기업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디바이스인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로 소프트웨어 결정체인 간편결제 솔루션에 진입하는 대목과 비슷합니다. 강점인 제조 경쟁력을 주특기로 삼아 초연결 시대까지 품어가는 기본적인 방법론입니다.
지속적인 사업 다각화를 통해 다양한 먹거리를 찾겠다는 주장도 눈길을 끕니다. 웨어러블 및 로봇, 증강 및 가상현실까지 영역을 확대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 경쟁력도 손을 뻗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묘한 구석도 보입니다. 일단 엡손이 제조기술력을 바탕으로 초연결 시대를 준비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주특기에 착안해 로봇 및 웨어러블 기술력을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드웨어 인프라만 있다고 초연결 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필연적인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엡손은 이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요?
우스이 미노루 사장은 이러한 질문에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제조기술회사의 4차 산업혁명 태세전환의 만점사례인가요? 다만 이후에 우스이 미노루 사장은 “엡손이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며 “디바이스, 하드웨어 중심으로 생태계를 꾸리고 다양한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즉 하드웨어, 즉 제조기술회사의 정체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의 필요성은 충분히 느끼고, 이에 다양한 곳과 협력하겠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하드웨어를 중심에 두는 방향성입니다. 고집일까요? 정말 현명한 방법일까요? 역사가 말해 줄 것입니다.

제조기술기업의 2가지 길
우리는 제조업이라고 하면 ‘오래된 산업’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당연하게도 제조업은 필연적인 미래의 주인공인 소프트웨어 산업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미래 비전에 있어 양쪽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여기에서 제조기술기업은 2가지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엡손처럼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긴밀하게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 또 하나는 망하는 것. 후자는 논할 가치가 없으니 전자를 보자면, 오히려 소프트웨어 일변도로만 흘러가는 것보다 더 큰 비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해당 시장의 패권을 튼튼히 가져가는 것. 딱 하나입니다.
엡손의 가치를 보자
엡손이 천명한 엡손 25의 ‘실물’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먼저 센싱기술입니다. 스크린 골프장 부스를 만들어 놨습니다. 골프 자세를 교정하고 그 외 필요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정교한 장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iOS만 지원하는 전용앱을 다운받으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엡손이 스크린 골프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작은 센서를 부착하면 세밀한 흐름을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로봇도 보입니다. 3가지 로봇이 전시되어 있는데 당연하지만 공업용 로봇입니다.
특히 LS6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전시된 로봇 중 제일 작았지만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는 제품이라는 것이 엡손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암 길이는 500mm/600mm/700mm며 가반 중량은 최대 3Kg, 반복 정밀도는 제1+2관절 (+/-0.02mm) 제4관절은 (+/-0.01도)입니다. 수작업과 같은 작동이 가능하며 스마트폰 공정에서 사용이 된다고 합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폭스콘에서도 활용하고 있답니다.

스마트글래스도 있습니다. 웨어러블 경쟁력입니다. OLED로 만들어 화면 자체가 선명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현재는 3세대 모델이고 아직 출시되지는 않은 제품이라고 합니다. 내년 3월 출시가 된다고 합니다.

B2B2C에 가까운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