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탓에, 미국의 느릿느릿한 일처리에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관공서의 일 처리는 느리지만 나머지는 서울 못지않게, 아니 서울보다도 더 빠르게 돌아간다. 필자는 서울에서도 빠르게 걷는 편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뉴욕에서는 어째 옆에 걷는 사람들이 필자를 모두 제치고 앞서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맨해튼에서 주변 풍경에 넋을 잃은 관광객이 길에 서서 감탄이라도 할라치면, 뒤에서 빠르게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막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을 각오는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맨해튼에서 유독 느리게 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버스다. 대부분은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지하철이 가장 빠르고 인기 있는 이동수단이다. 맨해튼의 버스는 정류장이 워낙 촘촘하게 있는 데다, 교통체증으로 인해 하도 자주 서다 보니 버스를 타는 것이나 걷는 것이나 속도는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얼마 전 일을 보러 버스를 타고 나가는데 가뜩이나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사람들이 다 타도록 출발을 안 하고 마냥 서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마지막에 탑승한 승객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해서 휘청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버스는 어찌 된 영문인지 승객들이 모두 자리 잡고 앉아있는데도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몇 분이 더 지났을까, 앞쪽 출입구에서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걷는 것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태우기 위해서 저상버스가 높이를 더 낮추고 장애인용 리프트를 내리고 올리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할아버지가 버스로 들어서니 앞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자리를 양보하고 뒤쪽으로 이동했다. 앞쪽의 의자에는 장애인·노약자 우선석이라는 표시와 함께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탑승할 경우에는 양보해달라고 쓰여 있다.
몇 달 전에는 뉴욕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거리며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줄을 지나쳐서 버스가 섰다. 이유를 알아보니 휠체어를 탄 승객이 있어서 버스 중간의 문을 열고 휠체어를 버스 안으로 들이는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0여분이나 걸려서 휠체어 승객이 탑승한 후 버스에 올라보니 고속버스처럼 2좌석씩 쭉 있는 의자의 2열이 한쪽으로 밀어져서 생긴 공간에 휠체어를 타고도 탑승하도록 만들어졌다.
뉴욕의 지하철역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이 많지 않아서 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한 편이지만, 매 역마다 지하철 개표구 앞에는 휠체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는 비상 출구가 있다. 필자가 근무 중인 학교에서 가끔 마주치는 여학생은 뇌성마비로 의사표현이 불편한 대신, 학교에서 학습 도우미를 배정해주어 모든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학교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학습 도우미는 항상 이 여학생과 함께 움직이면서 노트 필기를 도와주고 휠체어를 밀어주고 음료수를 먹을 수 있게 잡아주는 등 다양한 도우미 역할을 한다. 지난 1990년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에서 장애인이 모든 종류의 교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모든 편의시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 때문에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으며 고용된 장애인을 위해서는 편의시설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함에 따라, 미국 내 많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 또 주에 따라서는 소수인종이나 성별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고용 개선조치에 장애인들도 포함해 소수인종이나 여성, 장애인의 취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기 쉽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자주 눈에 띄기 때문에 왜 미국은 장애인이 많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곧 이는 한국이 장애인들이 일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며 미국의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직장을 다니는 환경적인 차이를 알 수 있다.
맨해튼 컬처기행
‘없던’ 성질도 폭발하게 만드는, ‘분노 유발’ 의사?
영화 <성질 죽이기> 속 데이브는 평소 성격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출장길에 탄 비행기에서 오해로 성격이 나쁜 말썽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법원에서 분노를 다스리기 위한 ‘분노 조절’ 프로그램에 참석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할 수 없이 버디 라이델 박사가 운영하는 분노 조절 프로그램에 참석한 데이브는 이상한 분노 조절 프로그램 때문에 오히려 점점 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그것도 모자라 버디 박사는 데이브의 여자 친구까지 빼앗아가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결혼 프로포즈를 하려던 데이브의 아이디어까지 베끼려 한다. 하지만 이는 데이브의 생각이었을 뿐, 결국 3명이 양키스타디움에서 만나게 되어 모든 것이 버디 박사가 데이브가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려는 치료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나온 양키 스타디움은 1923년 뉴욕 브롱스에서 개장한 야구 경기장으로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에 소속된 프로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시설 노후 등으로 인해 2008년 9월 22일 뉴욕 양키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를 끝으로 문을 닫았고 현재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은 브롱스에 2009년 새로 개장한 곳이다. 기존 양키 스타디움과 구별하기 위해서 뉴양키 스타디움, 양키 스타디움 투 등으로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