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순 자산운용협회 회장

“내 펀드도 반토막 났지만 싼 가격에 추가 불입하고 있어요”


“펀드는 대박 상품이 아니에요. 목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상품이죠. 운용과 투자마인드를 이번 기회에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

백조는 당연히 하얗다는 생각을 깨버린 ‘블랙스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경제의 ‘블랙스완’에 국내 펀드투자자들은 뿔났다. 펀드와 관련된 분쟁조정 신청이 하루 90여건 이상 금융감독원에 밀어닥친다. 펀드가 자산을 무조건 불려준다는 말에 가입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며 소송 준비 중인 투자자들도 있다.
자산운용사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는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한 투자자문사 회장이 자살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단순한 자살 사건으로 여기기에는 자산운용사 CEO들의 마음이 시리다. 펀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했던 금융사들도 ‘불완전판매’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됐다. 내년에는 금융상품판매법이 도입돼, 판매로 인한 과다경쟁도 할 수 없다.

펀드의 블랙스완을 뼈아픈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이가 있다. 자산운용협회 윤태순 회장은 “운용 마인드, 투자 마인드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을 펀드시장의 성장통으로 보시는지요.

윤태순▶몇몇 분들은 펀드시장이 몰락한다고 말합니다. 몰락이라기보다는 시장이 몇 년간 급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으로 봐줬으면 합니다. 향후 건전하고 성숙된 시장으로 재탄생되기 위한 단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투자한 펀드도 -60, -70%라는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회복될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회장님도 손해를 보셨나요?

윤태순▶제 펀드도 지금 반토막이에요. 해외펀드와 국내 주식형펀드에 적립식으로 가입했는데, 오히려 지금 현금을 계속 집어넣고 있어요. 싸게 살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요. 주변 지인들에게도 납입을 중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현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일까요.

윤태순▶‘리스크’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운용사, 판매사, 투자자 모두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어요. 다들 높은 수익률만 쫓아갔죠.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말이에요. 자기 투자 성향에 맞지 않게 리스크를 크게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리스크 관리가 이렇게 중요할지 몰랐어요.

윤태순▶운용사의 리스크는 투자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됩니다. 투자자의 돈을 운용하는 만큼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죠. 호황기에 운용사들이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했다면 현재와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투자자들도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에 가입하고 대박 환상을 버렸어야 해요. 판매사들은 수수료만 생각한 나머지 수익률이 높다는 말만 되풀이했죠. 운용사와 판매사, 투자자 모두 뼈아픈 교훈을 얻은 셈이죠.

투자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윤태순▶무작정 환매하지 말고 펀드시장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도 최근 지인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다들 “지금 환매해야 되냐, 이럴 줄은 몰랐다”고 하죠. 현재 상황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블랙스완’이에요. 블랙스완 시대는 인내심이 가장 큰 힘입니다.

인내심만으로 지금 상황을 이길 수 있을까요.

윤태순▶지금을 인내하는 사람이야말로 경제회복으로 인한 플러스 수익률을 맛볼 수 있어요. 예적금으로 전환한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면 오히려 손해죠. 장기적인 마인드로 다가가야 합니다. 현재 손실에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해요.

여유자금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손실을 예상하고 3, 5년 이후 자신의 목적자금을 달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투자 성향을 파악하고 가입한 투자자들은 현재 손실에 연연하지 않아요.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는 투자자들은 지금을 기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가흐름에 다들 예민해요.

윤태순▶펀드는 원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기존 투자자들이라면 이제부터라도 펀드의 전제사항을 숙지해야 합니다. 자기의 여유자금 내에서 투자처가 명확한 펀드에 가입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최근 펀드에 관련된 소송이 잦아졌어요.

윤태순▶소송만이 해결책의 전부라고 할 수 없어요. 물론 상품을 복잡하게 만든 운용사와 불완전판매를 한 판매사도 책임이 크죠. 현재 금융감독원이 손실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니, 투자자들도 이를 믿고 기다렸으면 합니다.

복잡한 상품을 투자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윤태순▶펀드시장이 급성장하다 보니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상품이 만들어지고, 판매사들도 이해하지 못한 채 판매했습니다. 펀드매니저들도 이직이 잦아 상품을 만든 당사자가 어디로 옮겼는지도 모르죠. 수익률 좋은 상품만 찾다보니 이해하기 복잡한 상품만 출시됐죠. 판매사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을 고객이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앞으로 자산운용사들이 어떤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윤태순▶투자처가 명확한 상품을 만들어야겠죠. 전문적인 투자상품은 기관투자자나 전문 투자자들을 위해 만들어야 하겠고, 일반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알기 쉽게 만들어야죠. 또 자사를 대변할 수 있는 펀드상품을 출시해야죠.

대변할 수 있는 펀드상품이라면.

윤태순▶말 그대로 자산운용사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상품이에요. 예를 들어 채권 운용에 강한 회사라고 한다면 채권형 펀드를 잘 만들겠죠.
또 해외주식을 잘 운용한다고 하면 해외펀드에 강할 거예요. 자사를 대변할 수 있는 펀드상품을 만들면 투자자들도 해당 분야에 투자할 경우 그에 알맞은 운용사 상품을 고르지 않겠어요?

펀드상품 개수가 지금보다 줄어들겠어요.

윤태순▶지금은 펀드시장도 구조조정이 필요해요. 현재 펀드상품은 개수가 많은 반면, 운용 규모는 작아요. 규모가 작으면 운용해도 수익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요. 이해하기 힘든 상품은 과감히 없애고, 자사의 대표적인 펀드 규모를 대형화시켜야죠.

펀드매니저의 공시도 강화돼야 하지 않을까요.
윤태순▶현재 공동으로 운영하는 펀드들도 있어, 주책임자가 불분명합니다. 펀드매니저들이 이직을 많이 한 탓이죠. 공시를 강화하는 작업을 현재 추진 중인데, 펀드상품마다 과거와 현재의 운용자들,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의 이력도 공시할 예정이에요. 과거 상품을 운용했던 펀드매니저가 현재 어디에서 근무하는지도 말이죠.

운용사의 협조가 많이 필요하겠어요.
윤태순▶운용사뿐만이 아니라 금융감독원, 정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1500명의 펀드매니저가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워요. 투자자들을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죠. 앞으로 협조를 많이 요청할 생각이에요.

정부의 장기투자자를 위한 세제혜택이 빛을 못 보고 있어요.
윤태순▶그 부분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이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제한시켜 놓은 것도 없지 않아요. 펀드 전성기 때 세제혜택을 했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게 아쉽죠. 정부에서 투자자들을 위해 혜택을 확대해 줬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습니다.

2009년 말이면 해외펀드 비과세도 폐지되는데요.
윤태순▶해외펀드 비과세는 외환보유고가 증가해 원화절상으로 수출업체들이 타격받지 않도록 내놓은 제도입니다. 국가 정책상 나왔지만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죠. 타이밍 좋게도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과세를 유지한다는 결정은 쉽게 할 수 없어요. 한시적인 법안인 만큼 그때 상황을 봐야겠죠.

앞으로는 지난해와 같은 수익률을 바라서는 안 되겠죠?

윤태순▶연 20% 수익률에 다들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50~100%의 수익률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런 분들에게 펀드의 환상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펀드는 대박을 가져다주는 상품이 아니에요. 장기적으로 목적자금에 맞게 수익을 벌어다주는 상품이죠.

판매사들도 불완전판매를 조장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윤태순▶내년 2월 실시될 자본시장통합법에는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많아요. 불완전판매를 3회 이상 할 경우 판매자격을 박탈시키는 ‘3진아웃제’가 실시됩니다. 특별법으로 금융상품판매법을 현재 만들고 있습니다.

금융상품판매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윤태순▶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보험과 은행, 증권 등 모든 금융사들은 이 법에 접촉을 받아요. 내년이면 이 법이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융사 전속의 개념을 풀고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하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입니다.

금융사에 전속돼 있는 판매인이 문제가 많았는지요.
윤태순▶전속이라는 이유로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상품을 판매한다면 문제가 많습니다. 반대로 금융사에 독립된 상태에서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한다면 투자자·판매자·운용사가 모두 윈윈(win-win)하겠죠. 상품 제조와 유통이 분리되는 시대에 대비해 투자자 보호를 보다 강화해야 합니다.

자산운용사들도 투자자 보호에 앞서야겠어요.

윤태순▶최근 자산운용사 CEO들을 만났는데, 다들 한숨부터 쉬더군요. 원금손실에 괴롭다, 고객들의 항의전화에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합니다. 가슴 아프죠. 저는 그 항의전화를 잊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자산운용사들도 이제부터 투자자들을 위해 알기 쉬운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화투자신탁운용 전 CEO로서 자산운용사 후배 CEO들에게 조언한다면.

윤태순▶투명한 운용과 리스크 강화, 시장을 쫓아가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특히 리스크 관리는 지금과 같은 불황기가 아닌, 호황기에 해야 합니다. 주식하락기에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시장이 수익률 높은 상품을 원한다고 그대로 쫓아가는 것도 좋지 않아요. 결국 성난 투자자들에게 항의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Profile연세대 경영학을 전공, 1975년 한국투자공사에 입사하면서 업계에 첫 발을 들였다. 2002년 한화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2004년 자산운용협회 초대 민선회장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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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자산운용…금투협회장 하마평도

내년 2월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협회가 통합돼 ‘금융투자협회(가칭)’가 출범한다. 협회장 공모도 이미 시작돼 누가 1대 금투협회장이 될지 하마평이 가득하다. 증권업협회 황건호 회장이 유력시 되고 있다고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이다.

하마평으로 가득한 업계에서 자산운용협회 윤태순 회장은 지난 4년간 걸어왔던 자산운용협회를 회고한다.

“2004년 협회장을 맡고 나서 협회 회원사들의 권익이 열악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펀드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이야기를 정부가 잘 들어줘야 합니다. 4년간 운용업계의 요구를 정부정책에 제대로 반영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세계자산운용협회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내년 10월 세계자산운용협회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윤 회장은 올해 10월 개최된 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다. 개인적인 영광인 동시에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세계에서 알아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총회가 개최되는 내년에는 상황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르겠지만, 힘들었던 오늘을 기억하며 대처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여야겠죠.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 매도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줘야 합니다.”

윤 회장은 공모펀드 거래세의 면제 제도를 유지했다. 2006년 5월에는 자율규제에서 그친 자산운용협회 펀드 광고심사 기능을 정부의 감독규정을 위임받은 업무로 위상을 격상시키기도 했다. 금투협회장 하마평에 윤 회장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공적 때문이다.

“금투협회장 후보로 봐주시는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자산운용업계를 위해 뛰고 싶어요.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됩니다. 앞으로도 제도 개선,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노력해나갈 예정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블랙스완 시대에 현실을 보다 충실히 살아갈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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