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장은 인간중심의 혁신 깃발을 치켜든 이유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금융시장 환경을 들고 있다. 도요타가 단 1년만에 위기의 그림자를 깨끗이 지운 그 추동력과 데자뷔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2100억원 비용 절감 이뤄내… 도요타 위기극복 DNA 닮은 꼴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불길한 전조는 뚜렷했다. 미국인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플로리다를 비롯해 집값이 대폭 상승했다가 급락한 지역민들이 야반도주의 장본인이었다. 그들은 새로 산 집의 우체통에 열쇠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값싼 담보 대출로 무리를 해 집을 산 주민들은 빚을 상환할 능력이 없었다.
바다 건너 미국민들의 야반도주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며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을 도미노처럼 뒤흔들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부임한 시기가 이 즈음이었다. 수십년간 잔뼈가 굵은 금융권을 잠시 떠나 서울시교향악단에서 외도를 하다 화려하게 친정에 복귀한 이팔성 회장의 복귀 시기는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격이었다.
이 회장이 부임한 지 불과 석 달 뒤,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마침내 파산을 선언했다. ‘빅5’에 속하는 메릴린치도 그 뒤를 이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월마트로 불리던 이 투자은행은 터키계 담당 임원의 도덕적 해이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메릴린치의 스타경영자 스턴오닐은 추풍낙엽처럼 스러졌다.
미국 발 금융위기는 대한민국 금융가를 뒤흔들었다.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금융상품은 은행들의 재무제표를 초토화할 시한폭탄이었다. 외환위기설이 주기적으로 불거지며 시장은 출렁거렸다. 그로부터 3년 후, 위기의 그림자는 희미하다.
우리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조 2420억원. 전년 대비 21% 상승한 수치다. 계열사별 2010년 누적 당기순이익은 광주은행 1055억원, 경남은행 1443억원, 우리투자증권 2382억원으로 은행부문 뿐만 아니라 비 은행부문에서도 안정된 수익을 보였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뚝심이 있는 경영자이다.
금융권을 떠나 유랑해온 신산한 세월이 도약의 디딤돌이다. 이 회장이 지난해 발표한 <경제학 토크쇼>는 그의 성향을 엿보는 창이다. 정치, 사회 현안을 겨냥한 화려한 말들의 향연을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는 점이 특징. 증권, 은행 부문 등에서 익힌 실무적인 지식이 빼곡하다.
인간 중심의 지속성장 기반 닦아
이팔성 회장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Micro management)의 고수이다. 이팔성식 혁신의 성과물이 바로 지난해 거둔 2000억 원의 재무성과이다. 대표적인 업무개선 사례가 ‘상속예금 업무처리 방법’의 개선. 은행 예금 상속인들은 그동안 불만이 적지 않았다. 모두 해당 은행을 방문해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 규정탓이다. 이 규정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다들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한 문제였다. 성과는 명확하다. 매월 한 두 건식 발생하던 민원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정준범 우리금융지주 공보팀장은 “고객들이 직접 지점을 방문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해 연간 20억원을 절감하는 성과도 거두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팔성식 혁신의 주춧돌이 ‘원두 혁신(OneDo Innovation)’이다. 공허한 ‘수사’보다 ‘실천’을 중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원두 혁신의 목표는 ‘저비용-고효율’ 구조의 정착이다.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수혈해 ‘밸류 체인’을 강화한다는 행동 원칙도 정했다. ‘질문 던지기’, ‘관점 바꾸기’, ‘생각 모으기’, ‘낭비 버리기’ 등이 그것이다. 상속예금 업무처리 방법개선이 이러한 ‘원두혁신’의 결과이다. 도요타식 혁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팔성 회장이 혁신의 깃발을 치켜든 이면에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금융시장의 환경이 있다. 지난해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을 인수하며 금융 빅뱅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올해도 대어급 매물들이 꼬리를 물 예정이다.
이 회장은 비용절감으로 몸을 추스르고 조직의 체질을 강화하면서, 대도약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이 회장은 인간중심의 혁신을 표방하고 있다. 조직원들의 로열티를 자산으로 지속성장기반을 닦아 나간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대규모 인력 조정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경쟁사들과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그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동료를 떠나보내던 여의도의 맨얼굴을 기억한다. 인간 중심 혁신은 우리금융지주 도약의 핵심 자산이다.
기착지는 우리금융지주의 지속성장. 도요타가 불과 한 해만에 위기의 그림자를 상당부분 지워버린 것도 인간 중심의 경영이 한몫했다.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가 바로 도요타의 ‘캄리(Camry)’였다. 브레이크 부품 이상으로 흔들리던 글로벌 자동차 업계 맹주의 놀라운 위기 대응능력이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전형적인 ‘진무구(賑撫九)’의 리더이다. 매사에 고난이 따르지만, 전진을 결행해도 허물이 없다는 뜻으로, 주역(周易)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위기가 닥칠 때 은인자중하며 실력을 닦아, 다가올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는 주역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서울시교향악단 시절이었다.
올해는 세계로 도약하는 민영화 원년
“올해 우리금융 민영화가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 50위, 아시아 10위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겠다.” 이팔성 회장은 신묘년 세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 강화, 그리고 글로벌 사업 확대가 그것이다. 하나같이 녹록치 않은 과제들이다. 첫 단추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작업.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인연을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금융지주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무대의 강자로 도약시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지난해 금융가의 시너지 대전에 이어, 올해 불어 닥칠 해외 시장 주도권 다툼에서도 경쟁사들에 비해 한걸음 앞서 나간다는 복안이다. ‘원두 전략’은 이러한 바람의 방편(方便)이다.
이팔성 회장은 “지난 1년간 원두(OneDo) 혁신으로 비용 절감도 달성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임직원의 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며 “ 올해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혁신DNA가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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