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원작에 기댄 뒷북 영화

‘피를 불렀으니, 죽음을 각오하라!’ 새빨간 헤모글로빈이 큰 스크린을 수놓는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선정적인 영화 홍보 문구다. 말 그대로다. 맥스 페인 좾Max Payne좿은 지난 2001년 출시되어 전 세계에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동명의 액션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 좾The Matrix좿> 등으로 이제는 너무 익숙하지만 <맥스 페인>은 총에서 발사된 총알의 움직임을 초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내는 ‘블릿 타임(Bullet Time)’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집을 침입한 의문의 괴한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은 형사 맥스 페인(마크 월버그 분). 이후 그는 닥치는 대로 범죄자를 잡아들이며 암흑가에 공포의 존재로 부각되지만, 정작 범인을 찾지는 못한 상태다.
범인을 추적하기 위한 단서 포착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맥스는 우연히 나타샤(올가 쿠리렌코 분)라는 여자와 동료 형사인 알렉스(도널 로그 분)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범죄 조직뿐 아니라 경찰의 추적까지 받게 된 그는 가족의 살인범을 찾는 것과 함께 자신의 살인 누명까지 벗겨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나타샤의 언니 모나(밀라 쿠니스 분)와 함께 맥스는 자신을 옥죄어오는 어둠의 세력에 일대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영화 <맥스 페인>은 완성도 높은 원작 게임의 요약본 역할을 하는 데 기꺼이 팔을 걷는다. 복잡하게 얽힌 게임의 여러 캐릭터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주인공인 맥스 페인의 일당백 격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탓에 비교적 짧은 100분 러닝타임으로 완성된 <맥스 페인>의 이야기 전개에서 긴장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부실해진 이야기를 만회하려고 <맥스 페인>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름 아닌 ‘시각적 쾌감’이다. 영화의 감독인 존 무어는 그 자신이 원작 게임에 대한 엄청난 팬임을 밝힌 바 있는데, 이 말에 어울리게 게임 속에서 묘사되는 음울하고 비장한 대도시의 이미지와 스타일리시한 액션 시퀀스들은 영화에 적극 차용된다.
제작진의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는 먹혔다. 공들인 티가 확연한, 완성도가 있는 그림들로 영화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신선함과는 거리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남발되는 ‘블릿 타임’과 범인을 찾아가는 맥스의 모험담은 지난 10년 동안 비슷한 장르의 영화에서 경험했던 것들이다.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극 말미 옥상에서의 결투 신 역시 마찬가지다. 그 결과 <맥스 페인>은 이야기는 부실한데 화면은 기시감(Deja-vu)의 연속일 뿐인 김빠진 액션 영화로 곤두박질쳤다.
사실 히트한 게임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게임계의 전대미문의 여전사 ‘라라 크로포트’로 분한 <툼 레이더 좾The Tomb Raider좿> 시리즈나 밀폐된 공간에서 무시무시한 좀비들과 두 여자 헤로인의 대결을 그리는 <레지던트 이블 좾Resident Evil좿> 등의 영화는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그런데, 게임 원작 영화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백이면 백 모두 게임의 명성에 기대려 한 졸작 영화들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다는 것.
<맥스 페인>의 상황은 어떨까? 만약 이 영화가 10년 전에 관객 앞에 선보였더라면, 스타일리시한 화면이 인상적인 웰 메이드 액션 누아르라는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맥스 페인>은 사정없이 ‘뒷북’치는, 너무 늦게 온 영화다.
태상준(영화칼럼니스트)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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