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가맥집 투어
풍류의 도시 전주에 왔는데 술 한잔이 빠질 수 있겠는가. 기분 좋은 주객들의 발길은 막걸리촌으로 ‘가맥집’으로 이어진다. 전주에는 이름난 막걸리 골목이 여럿 있다. 가장 유명한 삼천동에는 서른 개가 넘는 막걸리집이 골목을 이룬다. 삼천2동 우체국을 찾으면 막걸리집들이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다. 삼천동과 이웃한 평화동에 있는 10여 개의 막걸리집은 모악산을 찾는 산꾼들이 많이 찾는데 넉넉한 인심으로 유명하다.

 

서신동 막걸리 골목은 전주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 좀 더 젊은 분위기다. 한옥마을 인근의 경원동 막걸리 골목은 옛날식 주막들이 모여 있고, 효자동은 막걸리집 수가 많지는 않지만 홍탁으로 유명한 ‘홍도주막’이 있어 단골이 많은 동네다. 오모가리탕으로 배부르게 저녁식사를 한 오늘은 시원한 맥주가 생각난다. 한옥마을과 가까운 ‘전일수퍼’로 간다. 전주의 가맥집들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가맥집은 ‘가게 맥줏집’의 줄임말이다. 이름 그대로 동네 가겟집에서 테이블 몇 개를 두고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파는데 그 모양새가 참으로 이색적이고도 정감이 넘치니 절로 마음이 간다. 게다가 가게에서 파는 술이다 보니 맥줏값이 일반 술집의 절반도 안 된다. 2,200원 하는 하이트맥주를 두 병 시키고 연탄불에 구운 황태포 안주도 주문했다. 예전에는 주인아저씨의 ‘핸드메이드’ 망치질로 부드러운 황태포가 탄생했으나 지금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어 전동 해머를 들였다. 해머가 아저씨의 팔뚝을 대신하는 셈이다. 기계로 생선포의 결을 부드럽게 만든 후 은근한 연탄불에 먹기 좋게 구워내면 이 집 주인의 비밀 병기인 간장 소스가 등장한다. 사실 이 집이 유명해진 것은 이 소스의 중독성 강한 맛 때문이다. 간장에 물엿과 매운 고추, 참깨를 뿌린 듯 보이는데 언뜻 청주 냄새도 나는 게 묘한 감칠맛으로 가득하다. 저녁 아홉 시 무렵의 가게 안은 이미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바로 앞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기도 쉽지 않지만 괜히 즐겁고 유쾌해지는 것은 가맥집 손님들의 공통된 기분일 듯하다.

전일수퍼에서 한 블록쯤 떨어진 곳의 임실수퍼는 소박한 분위기의 가맥집이다. 전일수퍼에 황태포가 있다면 이 집에는 수제비 띄운 명탯국이 유명하다.

 

콩나물국밥 열전
친절하게도 전주는 완벽한 ‘해장 리스트’까지 구비해 놓았다. 비록 남부시장의 피순댓국과 콩나물국밥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든 후회는 없으니 걱정은 없다.

이번엔 콩나물국밥으로 결정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국밥을 끓여내는 방식인지 토렴식으로 말아먹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전자를 ‘삼백집식’, 후자를 ‘남부시장식’이라 한다. ‘삼백집식’은 뚝배기에 콩나물국과 밥을 넣어 끓여낸 다음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날달걀을 툭 깨 넣어 먹는다. 시원하면서도 진한 국물이 최고다. ‘삼백집’과 ‘왱이집’이 제일 유명하다. ‘남부시장식’은 남부시장 내의 현대옥에서 맛볼 수 있다. 빽빽이 둘러앉으면 딱 열일곱 손님이 둘러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달랑 하나 있는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인원수대로 쿵닥쿵닥 소리 내며 마늘을 찧고 파와 고추를 썬다. 미리해둔 밥을 뚝배기에 담고 뜨거운 국물을 붓고 슬쩍 데쳐낸 콩나물을 올린다. 밥그릇에 따로 내어주는 수란에 국밥 국물을 몇 숟가락 부어놓고 구운 김도 쭉쭉 찢어 넣어 둔다.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혀에 착착 감기고 아삭한 식감 살아있는 콩나물도 반갑다. 영양가 만점의 수란을 찬 삼아 훌훌 마시는 것도 재미나다. 동네 사람들은 국밥집에 들르기 전 골목길 앞 김 가게에 먼저 들러 각자 먹을 김을 1,000원어치쯤 사온다. 방금 구워내 더 고소한 김을 곁들여 먹으면 이 집 콩나물국밥이 두 배쯤 더 맛있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맛있는 음식 사이를 헤매고 다니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전주에서 해가 지려 할 때면 얼른 전주 한옥마을 입구의 카페 ‘투모로우(Tomorrow)’나 전동성당 앞으로 가길 권한다.‘투모로우’ 카페 발코니에선 한옥마을의 지붕 너머로 내려앉는 일몰을 볼 수 있고 전동성당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첨탑에 스며드는 저녁놀을 만날 수 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전주천을 산책하면 좋겠다. 이곳을 가로지르는 남천교가 환하게 불빛을 쏟아내고 밤하늘엔 휘영청 밝은 달이 떠있을 것이다. 맛있는 풍류가 또한 그곳에도 있다.

이 기사는 건강보험 1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