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배우는 기다림의 지혜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約束)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김소월 <개여울>

1972년. 전국을 강타한 가수가 있었다. 그는 당시 우아함의 대명사였다. 그런 격조 높은 분위기로 그는 김소월의 시 <개여울>을 대중가요로 부르곤 했다.
정미조. 그는 지금 가수가 아니다. 미대 교수 겸 화가다. 그 변신은 그가 부른 <개여울>처럼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를 실행에 옮긴 때문이다.
봄이면 파릇파릇 풀도 돋아나고 개여울 아래 잔물도 찰랑찰랑 움직이며 하류로 흘러간다. 그 흐름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 주인공 연인은 자신을 떠났다. 그리하여 자신의 연인을 기다리며 개여울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 시가 주는 시사점은 이제부터다. 마냥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 무엇이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테니 너도 나의 약속을 잊지 말고 기다리라는 부탁’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있었겠지요’나 ‘부탁인지요’라는 표현처럼 설사 그 약속이 확실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믿고 삶의 동력을 얻는다.
기다림은 이런 것이다. 기다림에는 이처럼 생각의 동력이 살아있다. 동력을 잃고 바다를 표류하는 배처럼 그 어떤 선택의 힘도 잃어버리면 기다림이 아니다.
정미조는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방에서 부른 노래가 소문이 나 학교 축제 때 패티김과 한 무대에 서게 됐다. 패티김은 그의 노래를 듣고 반해서 자신이 출연하는 TV쇼에 함께 출연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이대는 학교 규정상 방송 출연이 금지돼 있어 패티김의 제안은 성사될 수가 없었다. 그후 각 레코드 회사에서 취입하자고 몰려들어 졸업과 동시에 가수가 된다. 이때 정미조는 친구들과 자신에게 반드시 미술인으로 돌아온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2년부터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생각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홀연히 파리로 떠난다. 자신에게 약속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돌아와 대학교수와 화가로 변신했다.
정미조는 자신이 부른 <개여울>처럼 기다림에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연결하는 동력을 잃지 않았다.
기다림은 이처럼 의도적인 선택이다. 진짜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정중동(靜中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와 숙고가 필요하다. 생각의 팽팽함이 없으면 이미 기다림이 아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 어떤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고 그에 따른 정보와 직관, 그리고 통찰력을 키우는 게 바로 기다림이다.
요즘 수많은 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CEO들은 바짝 엎드려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다림이 표류가 돼서는 안 된다. 이때야말로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을 충족하는 공부의 시간이어야 하고, 직원을 교육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때가 오면 다시금 날개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시에서 찾을 수 있는 기다림의 지혜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소 대표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


키워드

#시와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