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1992년 개혁 개방을 독려하기 위해 남방지역인 선전(深 ), 주하이(珠海), 상하이(上海) 등을 시찰했다.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다. 당시 그가 남긴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稀土流)가 있다”란 어록이 2010년 위력을 발휘했다.
중국 정부는 매년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에 따른 문제로 희토류 수출 쿼터를 줄여왔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9%나 감축했다. 희토류 수입을 중국에 의존해 오던 국가들이 혼란에 빠졌다. 전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7%가 중국에서 채굴되는 탓이다.
중국 수출 물량의 절반을 수입하는 일본은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정부와 희토류 수입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희토류가 없으면 미사일을 비롯한 방위산업은 물론 전기자동차-스마트폰-TV-LCD 등 각종 첨단제품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매년 희토류의 가격 상승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물량마저 확보 못하다면 국가 경제에 큰 충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위기 의식과 신속한 대응으로 오히려 지금은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왼쪽)와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경제동반자협정 체결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부와 기업 합심… 광산 공동 개발
일본은 우선 희토류의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세계 희토류 생산량은 중국이 97%에 육박하지만 매장량은 31% 정도. 미국·러시아·호주·인도 등이 나머지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환경 오염 등으로 개발에 나서지 않은 이유다.
이 점에 착안한 일본은 희토류 수입 국가와 공조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희토류 생산이 가능한 국가와 공동으로 광산 개발에 나섰다. 일부 국가는 일본의 최첨단 환경 오염 방지 기술을 믿고 먼저 공동 개발을 제안해 오기도 했다. 이달에만 벌써 중국 주위에 있는 3개국과 희토류 광산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아사히신문 인터넷판은 지난 11월 1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 응웬떤중 베트남 총리가 베트남 북부지역의 희토류를 공동 개발하는 사항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은 희토류가 다량 매장되어 있는 지역을 제공하고, 일본은 희토류 탐사 기술을 베트남에 제공할 예정이다. 내년에 희토류 광산 개발에 착수하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연간 희토류 수요의 10%를 목표로 한다.
일본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스미토모상사는 베트남 북부 채굴지역에 희토류 개발연구소를 설립하고, 도요타통상과 소지츠그룹도 현지 기업과 합작회사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11월15일 일본을 방문한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희토류 광산의 탐사와 채굴에 첨단기술을 가진 일본이 참여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몽골과 일본은 결국 11월19일 몽골지역의 희토류 광산 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도 지난 11월23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외무상과 회담에서 “호주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일본에 희토류를 공급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과 호주는 희토류 공급 문제로 물밑 접촉을 꾸준히 해 온 것으로 보인다.
다음 날 24일 일본종합상사인 소지츠그룹은 호주의 광산개발회사인 라이너스사와 희토류 공급 기본 합의를 맺었다. 이 합의에 의하면 소지츠그룹은 일본 국내 연간 사용량의 30%에 해당하는 8500톤의 희토류를 2013년부터 10년에 걸쳐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은 이번 호주의 희토류 광산 개발에 공공자금 포함 최대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일찌감치 일본에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 10월24일 일본을 방문해 희토류의 제련 및 가공 분야에서 일본의 기술 및 자금 협력을 요청했다. 인도의 희토류는 전 세계 매장량의 3%인 310만t으로 알려져 있다. 생산량은 세계 2%다. 일본 기업인 도요타 통상은 벌써 인도 동부에 희토류 정제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이밖에도 미국, 캐나다 등 희토류 생산 가능 국가와 수출입 거래를 확대해 2012년 이후에는 중국 이외 국가에서 약 40%에 달하는 희토류를 조달할 계획이다.
희토류 광산 보유국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환경 보전 기술을 들여오려는 전략과 맞아 떨어져, 일본은 지금 희토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일본은 미국, 캐나다 등 희토류 생산 가능 국가와 수출입 거래를 확대해 2012년 이후에는 중국 이외 국가에서 약 40%에 달하는 희토류를 조달할 계획이다.
희토류 재활용과 대체기술 개발도 한 몫
폐차나 폐가전에서 희토류를 추출, 재활용하는 기술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게다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한 대체기술 개발도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일본 정부는 ‘희토류 종합대책’을 위해 1000억 엔(1조3800억 원)을 추가예산으로 책정했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내용을 보면 재활용 추진을 위한 기업의 국내 설비 투자 보조금으로 420억 엔, 희토류 대체기술 개발에 120억 엔을 투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만큼 재활용과 대체기술도 희토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 대책 중 하나인 셈이다.
벌써 상당수 일본 기업들은 이미 사용한 희토류를 회수해서 재활용하고 있다. 히타치 제작소에선 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현재는 사용이 끝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서 수작업으로 희토류를 회수하고 있지만, 2013년부터는 자동으로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시킬 계획이다. 가전제품의 모터 제작에 필요한 500~600t 가량의 희토류 중 10% 정도를 재활용할 수 있다.
스미토모상사는 대량의 희토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눈을 해외로 돌렸다. 카자흐스탄 국영기업과 우라늄 채굴 후 잔존물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사업을 내년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2012년 완전 가동하면 연간 3000t 정도의 생산이 가능하다.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일본의 신에너지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NEDO)와 홋카이도대(北海道大)는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차세대 자동차용 모터의 공동 개발에 성공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의 모터는 희토류가 필수지만, 이번에 개발한 모터는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고 모터 기능이 가능하도록 실현시켰다.
일본전산(日本電産)도 희토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차세대 모터를 2012년 중기계용으로 공급하기로 했으며, 점차 전기자동차용 모터도 개발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국에 의존했던 희토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놀라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쿼터 감축 정책이 오히려 자원광물을 한 국가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분산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 간부는 “중요 자원을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면서 ”희토류 가격 상승과 중국의 수출 제한 때문에 다른 자원국가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 밝혔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은 기술은 강하지만 비즈니스는 약하다”란 표현을 자주 한다. 노벨상 후보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돈 버는 데는 약하다는 의미다. 해외 대형 인프라 건설 입찰 경쟁에서 기술력은 인정받지만 막상 수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유행어를 낳게 했다.
이번 희토류 확보 전쟁에선 기타 국가와 새롭게 펼쳐지는 비즈니스, 그리고 대체기술 개발 등 기술로 난국을 돌파하려는 기술 강국 일본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지 기대된다.
희토류(Rare earth resources)란
란탄(lanthanum)과 세륨(cerium), 디스프로슘(dysprosium) 등의 원소를 일컫는 말로 희귀 광물의 한 종류다. 희토류는 화학적으로 안정되면서도 열을 잘 전달하는 성질이 있어 삼파장 전구, LCD 연마광택제, 가전제품 모터자석, 광학렌즈, 전기차 배터리 합금 등의 제품을 생산할 때 쓰인다.
강준완 편집위원 napol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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