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째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한국투자증권 신인숙 마케팅부 차장. 그녀는 지난 외환위기 당시 2번의 구조조정을 겪으며 동료들이 퇴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첫 번째 구조조정은 자발적 희망퇴직이었지만 두 번째는 강제퇴직이었다.
최근 그녀는 다시 외환위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2번의 구조조정을 무사히 넘길 만큼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 그녀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자발적으로 떠맡는다. 예를 들어 웹상의 신상품 관리, 영업점에서 연수받는 일 등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은 다른 이들은 꺼리지만 신인숙 차장은 자원하는 편이다. 또 주어진 일 이외에 다른 회사의 동향을 알아보고 수시로 상사에게 메일이나 메신저로 보고한다. 상사가 회의 때 남보다 먼저 정보를 발표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것이다. 신문 스크랩을 상사의 책상에 놓기도 한다. 기혼임에도 불구하고 출장을 마다하지 않는 건 기본이다. 철저하게 회사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물론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해외연수 등 따라오는 혜택이 많고 인사평가도 좋아 동기보다 진급이 빠르다. 직장 12년차인 그녀는 요즘도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은행, 텔레콤 등 타 업종에 있는 사람을 소개받아 정보를 얻기도 한다.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장인으로 변화
국내 직장인들의 회사에 대한 인식 변화는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뚜렷이 구분된다. 외환위기 이전의 직장인들은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직장을 운명공동체로 인식한 것이다. 이후에는 ‘평생직장인’으로 살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기존 구인시장의 문이 좁을 뿐만 아니라 신입을 선발하는 것에서 점차 경력직을 선호하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전에는 기업문화가 다른 회사 출신의 인재는 이질감 때문에 선발하기를 꺼렸지만 최근에는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인식한다. 중소기업 출신 인재를 대기업에서 뽑아 쓰기도 한다고. 외환위기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다.
기업의 구인형태가 변하다 보니 직장인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직장을 경력관리의 수단으로 생각해 자신만의 전문성을 길러 가치를 높이고 몸값 높이기에 열중하기도 한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황선길 잡코리아 컨설팅 사업본부장은 “예전 직장인들은 평생직장이랑 개념이 있었기에 늘 회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충성하는 전략을 썼다”면서 그러나 “요즘 직장인들은 평생 직업인으로 살려면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하기 때문에 회사를 수단으로 여기고 어느 상황이든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점차 경기가 어려워지자 몸값을 높이기 위한 이직은 줄어들고 구조조정이나 폐업으로 인한 구직이 늘어나고 있다. 잡코리아에서 이직은 보통 한 달에 60~70건 정도(오프라인 기준)가 성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밀려난 직장인들이 연말부터 내년 3월까지 본격적으로 구직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채용 전망은 어둡다. 아직 사업계획 자체를 계획하고 있지 않은 기업들도 많다.
그러나 방식은 달라졌지만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여전하다. 인턴십을 확대해 실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실질적인 채용 규모는 줄이고 인턴십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 사원 규모를 늘리겠다는 것. 경쟁사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고 좋은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속셈이다.
요즘 직장인의 특징은 보수적으로 직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사정이 어려워지자 몸을 낮춰 연봉협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그 대신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는 “외환위기 때는 학벌을 갖추고 회사에 순종하는 스타일의 무난한 사람이면 취업하기에 무리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기업들은 글로벌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사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선호하는 인재 유형에도 유행이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학벌, 인성 등이 중요한 선발요인이었지만 최근에는 ‘I자형’에서 ‘T자형’ 인재로 유행이 바뀌고 있으며 ‘4E1P유형’도 등장했다. 직장인들이 갖춰야 할 생존능력도 하나씩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I자형 인재는 한 우물을 깊이 파는 전문가를 의미하는데 T자형 인재는 I자형의 전문성에 다양성을 접목시킨 사람을 뜻한다. T자형 인재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이면서 동시에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는 것이다. T자형 인재란 말은 도요타 자동차에서 처음 등장했다. 도요타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전문성과 다양성의 의미를 담아 회사명 첫자를 따서 T자형으로 정의했다. 전문가가 된 다음에 전문성에 연관된 다양한 능력을 배양해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실감각, 논리적 분석력, 문제해결 능력, 뛰어난 창의력 등을 요구하고 있다.
T자형 인재 선호 현상은 국내도 다르지 않다. 노영돈 현대종합상사 사장은 경기도 고양시 현대자동차 고양연수원에서 열린 ‘2008 팀장 밑 간부직원 역량강화 워크숍’에서 “폭넓은 지식에서 비즈니스 기회가 나온다”며 “현대종합상사의 최우선 인재 역량은 창의적 사고와 T자형 인재”라고 말했다.
최근 등장한 인재 유형은 ‘4E1P유형’이다. 잭 웰치 GE 전 회장이 지난 11월5일 열린 글로벌인재포럼에서 강조한 ‘4E1P’는 에너지(Energy), 에너자이저(Energizer), 조직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능력(Energize), 날선 사람처럼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용기(Edge), 실행력(Execu-tion)을 갖추고 이 모든 것에 열정(Passion)을 담아 임하는 인재다. 그는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도 이와 같은 인재 유형이라고 언급했다.
《이기는 습관》의 저자 전옥표 위닝경영연구소 대표는 ‘미래의 엔진을 돌릴 수 있는 인재’가 돼라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에는 제도와 룰만 따라가면 됐기 때문에 관리능력만 있으면 됐지만 현재는 고객 니즈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이 급변하고 정보가 넘쳐나 고객이 스마트해졌기 때문에 회사의 프로세스가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과거의 관행 때문에 짐이 되는 요소들을 버리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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