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학교 동창생이 SNS에 글을 올렸다. 이름하야 “내 생애 여행지.”

1990년대 학창시절 경주의 첨성대 및 불국사등 문화재 답사 및 짧은 기간의 제주도 신혼여행을 제외하면 육아, 맞벌이 등 바쁜 일정에 쫓겨 여행다운 여행을 못했다는 아쉬움의 글.  “아차산은 가 보았다”라는 문장을 봤을 때 나는 살짝 당황했다. 트레킹(Trekking) 을 가업으로 삼고 있는 본인은 서울을 제외, 여행전문가로써 섬 포함, 전국을 누비고 다녔으나 아차산은 물론 청계산, 북한산등 남들이 쉽게 가는 서울 근교는 접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듯 저마다 치열한 삶을 뒤돌아 볼 때면 누구에게나 아쉬운 발걸음이 있다.

철쭉여행이 그렇다.

5월 즈음이면 많은 언론매체에서  “불난 듯 산을 뒤덮은 철쭉”이라는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하지만 쉬 가지 못하는 코스 중 하나가 바로 철쭉여행이다. 이유인 즉슨 산 전체에 핀 철쭉을 보고자 하려면 높은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 한라산 철쭉. 가파른 길로 2시간 이상 올라가야 한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 합천 황매산 철쭉, 태백산, 소백산등도 마찬가지다. 가보고는 싶지만 철쭉꽃을 보기위해선 힘든 발품을 팔아야 한다.

철쭉의 꽃말이 사랑의 기쁨이다. 사랑하긴 어렵지만 사랑을 시작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듯, 오르긴 어렵지만 오르고 나면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꽃말과도 같다. 하지만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쉬운 사랑도 있는 법.

남원의 봉화산이 그렇다. 봉화산은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최적의 철쭉여행지이다. 남원 아영면 흥부마을에서 장수 번암면을 잇는 복성이재(고개)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다. 복성이재에서 15분에서 20분정도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꿈에 그리던 철쭉군락을 내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봉화산의 철쭉은 우리가 거리에서 쉽게 보는 그런 철쭉과는 차원이 다른 참철쭉이다. 키는 2~5m정도이며, 치재에서 펼쳐지는 철쭉 군락지를 걸어서 내려 갈 때는 뒤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멀리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내 머리 위에 구름이 아닌 철쭉꽃이 펼쳐져 있다. 철쭉 숲 사이를 뚫고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허리 밑에 있는 뒷산과도 같은 철쭉 길을 걷는 그런 여행이 아닌 철쭉에 파묻혀서 나를 숨기며 걷는 비밀의 화원과도 같은 나를 위한 철쭉여행이다.

“붉게 핀 바윗 가에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수로부인의 간절한 애원에도 천 길 낭떨어지가 두려워 나서는 이 없는데 어느 한 노인이 꽃을 꺾어다 줬다 라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들었을 법한 신라의 향가인 헌화가 이야기에서 나오는 그 꽃이 바로 철쭉이다.

남원 봉화산의 철쭉은 매 년 5월 초에서 중순에 만개한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달인 5월에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철쭉꽃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올 해는 수로부인에게 꽃을 따다준 노인처럼 내 마음속에 묵혀져 있던 정열적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을 대신이나마 느낄 수 있는 아름답고 붉디붉은 철쭉을 보러 깊숙한 곳, 두근거리는 심장과 내 무거운 몸을 위해 뜨거운 철쭉을 상상하며 봉화산으로 동(動)하여 보는 건 어떨까? 5월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가는 길 :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빠져나와 1084지방 국도를 이용하여 함양방면으로 가다보면 아영이란 동네가 나온다. 아영에서 성리(흥부마을)로 가면 된다. 장수로 이어지는 고개로 올라 복성이재에서 걷기 시작하면 좋다.

* 걷는 길 : 복성이재에서 시작하여 치재로 오르면 된다. 치재에서부터 매봉, 봉화산까지가 철쭉군락지이지만 가장 아름다우면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치재에서 매봉이다. 치재와 매봉사이에 장수 꼬부랑재로 내려오면 큰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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