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이 17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고현장을 전격 방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대통령도 세월호에 갇혀있을 실종자 구조가 현지의 높은 파도와 빠른 유속 때문에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이 지역은 평균 유속이 시속 8㎞로 빨라 잠수사가 선박내에 진입하기도 전에 해류에 떠내려갈 위험이 있다.  더구나 기상청에 따르면,이날 진도 앞바다는 풍속이 초속 7~11m,파고는 0.5~2.0m, 최대유속은 시간당 10㎞ 수준으로 악천후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날 세월호에 올라 타려던 민간 잠수부 3명도 높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가까스로 다른 민간잠수부들에 의해 구조됐을 정도다.

하지만 상황은 매우 위중하고 촌각을 다툰다. 배 안에 갇혔을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구조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모두가 바다 탓을 하며 속수무책으로 잠수사들의 목숨건 작업시도만을 지켜 볼 때가 아니다.

지금처럼 밀물 썰물이 바뀌면서 1시간 정도 파도가 잠잠해지는 정조(停潮)시간에 맞춰 하루 4차례만 구조대의 선체진입과 구조작업을 벌이는 것은 문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조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4년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1984년 서산간척지 개발사업의 최종 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현장은 난관에 봉착했다. 공사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육지 양 쪽에서 둑을 쌓아오다가 마지막 구간이 남겨진 상태에서, 이 좁은 구간을 통과하는 바닷물의 속도가 엄청났던 것이다. 대형 덤프트럭들이 흙과 돌을 퍼부어도 엄청난 압력의 물살에 의해 순식간에 휩쓸려 갔다. 집채만한 바위들을 옮겨놓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망연자실 포기하고 있을 때 정주영은 기상천외한 해법을 내놓았다. 노후화 된 대형 유조선을 가져와 최종 구간을 막은 것이다.<사진참조> 다들 기존 공법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이라고 비웃었을 것이지만, 정주영의 예상대로 유조선은 엄청난 압력의 물흐름을 차단하여 마무리 공사를 가능케 해줬다. 이것이 훗날 ‘정주영공법' 혹은 ‘유조선공법’이라고 불리게 된 해법이다. 이로써 난공사는 성공적으로 해결되어 간척지 사업이 완료될 수 있었다.

이번 세월호 침몰현장에도 ‘정주영공법’을 도입해볼 만하다. 현장에 있는 대형군함이나 선박을 동원하여 세월호를 둥글게 에워쌓는다면,일단 거센 물살과 높은 파고는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구조함인 청해진함(4300t)과 평택함(2600t)이 선체 수색 작업을 벌이면 될 것이다.

물론 이들 선박들이 상호 충돌하지 않도록 삼국지에 나오는 연환계를 써서 선박끼리 연결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적당한 간격을 지혜롭게 벌려 해류와 파도를 차단할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정부당국이 정주영공법을 검토하기로 한다면, 이후의 상세한 방법론은 현장에서, 바다를 잘아는 해경이나 해군,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찾아내면 되는 일이다.

다행히도 현지 사고해역에는 이미 대형 선박들이 즐비하다.

군에 따르면,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1만4000t)과 구축함인 대조영함(4500t), 호위함(1800t)인 서울함과 충남함, 상륙함인 향로봉함(2600t), 초계함인 대천함(1200t), 유도탄고속함(450t) 1척, 고속정(200t) 5개 편대의 10척, 항만지원정 2척 등 28척의 함정이 대거 급파돼 있다.

현지 구조관계자들은 천안함 피격 당시 백령도 해상보다 작업 환경이 더 나쁜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정주영이 생존해 있었다면 환경 탓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대통령도 사고현장에서 "1분 1초가 급하다"며 구조를 독려했다고 한다. 군을 비롯한 정부당국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자료=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