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은 '열정'이라고 말하는 최병수 회장. 그는 콩나물 대가리로 하는 노래가 아닌 자기 자산의 혼(魂)을 담아야 진정한 음악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2월11일 양재동에 위치한 그의 단골 라이브 바에서 이종배 서울팰리스 호텔 부사장 등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 회장이 색소폰 연주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리던 대한산업보건협회 최병수 회장. 그는 자신을 음악에 소질이 많은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끼’가 넘치는 청년이었다. 노래 잘 한다는 입소문으로 이 자리, 저 자리 불려 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군대 시절에는 기타부터 오르간까지 각종 악기를 연주하던 기억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 1964년 공직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그의 머리속에서는 어릴적 부터 그리던 꿈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가수로 음반을 발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2집 앨범 발표한 가수
8년 전 그는 이런 남자로서의 꿈을 이뤘다. ‘최병수’라는 이름이 새겨진 음반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년 뒤에는 2집 앨범을 내놨다.

가수협회에 등록된 정식 가수는 아니지만 멀리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 교민방송의 라디오 전파를 타기도 했다. 지금껏 지인들에게 돌린 음반 수가 1만장에 이른다.

지난 2월11일 서울 서초동 회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공연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살짝 떠 봤다. 하지만 그는 “즐기는 차원에서 했던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색소폰 연주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를 먹어서도 멋스럽게 즐길 수 있는 악기가 뭘까 고민하다가 번뜩 떠오른 악기가 바로 ‘색소폰’이란다.

그는 10년 전 처음 색소폰을 손에 쥐고 악기 학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조차 내기 쉽지 않았지만 특유의 음악적 끼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3개월 만에 백기를 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은근과 끈기로 불고 또 불었다. 연습장에 가지 못하면 인근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이왕 이면 남보다 더 맛깔스럽게 불어 보겠다는 그만의 열정이 있어서다. 이제는 어느 자리에서도 그는 색소폰을 들고 선다.

일면식 없던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이 작은 악기 덕분. 비즈니스를 하러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 갈 필요가 없다. 물론 지인들과도 분위기 넘치는 라이브 바에서 악보가 없어도 리듬감을 곁들여 분위기를 살린다.

백지영 ‘사랑 안해’에 직원 열광
그의 직장인 대한산업보건협회에서도 색소폰이 효자다. 최 회장의 지방출장마다 따라가는 색소폰이 직원들 인화단결과 사기를 높이는 데 바로 쓰이고 있기 때문.

전국 17개 지역 센터 직원들과 만나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에서 술 한잔과 함께 음악으로 어울린다.

흘러간 노래부터 최신 팝이나 가요까지 직원들 취향까지 맞춰준다. 최근에는 백지영 ‘사랑 안해’를 18번처럼 불고 있다.

매년 4월 열리는 직원 체육대회에서 전 직원 앞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는 것도 CEO 최병수의 일이다. CEO가 분위기를 이끌어서 일까.

대한산업보건협회 내부에는 잘 노는 끼 넘치는 직원들이 굉장히 많다. 같은 체육대회 자리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경연대회에서 한국무용부터 밸리 댄스까지 재주꾼들이 수두룩하다. 사회 보러 온 개그맨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그의 음악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급기야 오케스트라 이사장 자리까지 꿰차 앉았다. 지난 2008년부터 이사장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는 코리아 W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바로 그것이다. 주변 성화에 떠 맡겨졌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내심 싫지 않은 기색이다.

“‘경영’도 딱딱하게 하는 것 보다 감미롭게 하면 좋다. 감미롭다고 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부드러운 게 더 강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CEO)도 마찬가지이다. 감성을 아는 CEO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색소폰을 통해서 CEO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보건 관련 학술제 자리를 빌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색소폰 연주회를 깜짝 마련했다. 노래도 한 곡 부르고 그가 꼭 하고 싶었던 오케스트라 지휘도 선보였다.

가족들 면면을 봐도 그의 ‘음악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게 된다. 일단 큰 딸은 미국 맨해튼 음대를 졸업한 ‘피아니스트’다.

음악은 아니지만 둘째 딸도 예술을 전공했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예술 재원. 막내 아들은 예술 전공은 아니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 전부터 트럼펫을 가르쳤다. 음악을 제쳐 두고는 가족들 대화가 무미건조해 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 지휘봉 마저 ‘음악꾼’
노는 일(?)에만 열중 할까. 그가 걸어 온 길을 따라가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의 근무지인 대한산업보건협회의 역대수장들 이력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최 회장이 지휘봉을 잡기 이전 회장들은 모두 의사출신이었다. 비의사 출신으로는 최 회장(5대)이 40여년 만에 처음이다.

경영을 하는 곳이라 경영 CEO가 필요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지식이 뛰어난 것도 밑거름이 됐을 터.

실제로 그는 1970년대 경영학 석사를 비롯, 80년대 행정학 석사, 90년대 보건학 석사, 2000년대 보건학 박사까지 열의를 가지고 공부해 온 ‘학구파’다. 색소폰을 배우는 열정처럼 남들보다 더 열의를 갖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 각 기업들을 보건의료 등급으로 평가할 수 있는 툴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05년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부터 산업 보건 정보화 작업에 집중해 기반을 이미 다져 놓았다.

산업보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이 건강한 조직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조직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단다.

최 회장은 “최근의 문제가 된 도요타처럼 이익 극대화에만 열을 올리는 경영은 구시대적 방식”이라며 “기업별로 등급화 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세계 최초가 될 것이다. 내년이면 시범사업이 가능할 것이며 이는 해외로 수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