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이코노믹 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kr)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갔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습을 한번 더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늘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갔던 그곳. 그날은 달랐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조그마한 정성이라도 넣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에 옮겨봤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초라한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잇속을 채웠던 순간들이 많았던 탓에 쉽게 마음속의 찌꺼기가 제거될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이후 가방 속에 늘 꽃씨를 넣고 다니는 여행객에 대한 얘기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발이 닿는 여행지에는 어김없이 꽃씨가 뿌려졌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이 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곳에 왜 그렇게 꽃씨를 뿌립니까?”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나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봄은 다시 오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생각하는 봄을 기대하며 꽃씨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단 한 차례 자선냄비에 관심을 가졌던 저의 마음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엔도르핀이 나왔을 것입니다.

2009년. 1년이라는 세월이 무척 길 줄 알았습니다. 경제불황의 검은 터널에 갇혀있을 때였으니 더욱 길게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소처럼 열심히 일하며 위기국면을 헤쳐나가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계획도 세웠고, 의욕에 찬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눈 깜빡할 사이에 시간의 화살은 스쳐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경제불황의 문턱은 넘어설 수 있었지만 대립과 갈등이 심화됐고 이것이 또 다른 한국병으로 더욱 고착된 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남겨진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후회가 많았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을 마냥 ‘잃어버린 시간’으로 남겨둘 수만은 없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복원해야 합니다.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왜 잃어버린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권대우의 경제레터’가 600회를 넘겼습니다. 그동안 경제레터는 주어진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속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찾아내기 위해 매일 아침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여행가방 속에 꽃씨를 넣어 다니는 여행객처럼, 무관심했던 자선냄비 소리에서 못난 자신을 발견하듯 스스로를 깨우치며 생각을 공유하면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20여 일이 지나면 2009년은 역사속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오늘 하루라도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찌든 마음을 맑게 소독하는 시간, 모두의 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