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플 스마트폰 제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한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 표준특허 소송 남발에 대한 우려인지 보호무역주의로 선회인지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6월 ITC는중국에서 제조돼 미 통신사인 AT&T와 T모바일 등을 통해 미국에 유통된 아이폰4, 아이패드2(3G) 등 5종 제품이 삼성의 표준특허 1건(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수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기관인 미 무역대표부(USTR) 마이클 프로먼 대표는 3일(현지시간) 어빙 윌리엄슨 ITC 위원장에게 애플 제품에 대한 ITC의 수입금지 및 판매유통금지 명령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는 서한을 보냈다.

마이클 프로먼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보낸 서한에는 "표준특허 보유자는 프랜드(FRAND) 원칙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특정 산업에 필수적인 기술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러 기관과 심도 있는 협의를 거친 결과 수입금지 결정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대통령이 준사법 독립기관인 ITC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26년 만의 일이다.

이에 따라 애플은 아이폰4, 아이패드2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구형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품을 계속 미국으로 수입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는 ‘프랜드(FRAND) 원칙’을 핵심근거로 내세웠다. 프랜드 원칙은 공정(Fair), 합리적(Reasonable), 비차별적(Non-Discriminatory)'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특허 보유자가 무리한 요구로 다른 업체의 제품 생산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프랜드 원칙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애플이 표준특허를 사용할 수 있지만 반면 삼성전자가 원칙을 충분히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월 ITC는 아이폰 등의 수입금지 조처를 요청할 때 삼성이 특허 사용료를 과다하게 청구하지 않았고, 애플이 협상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애플 감싸기'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주요 외신들은 “자유무역을 강조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거부안으로 보호무역 쪽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편 미 행정부가 애플 제품의 수입금지 조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돼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치권과 기업들이 거부권 행사를 촉구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ㆍ공화 양당 소속 상원의원 4명은 최근 프로먼 대표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애플 제품의 수입 금지를 반대했다.

미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당장 9일로 예정된 국제무역위원회의 애플-삼성 간의 또다른 특허침해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ITC는 삼성이 애플 특허 4건을 침해했는지를 판정하는데 침해 사실이 인정될 경우 갤럭시S, 갤럭시S2, 갤럭시 넥서스, 갤럭시탭 등의 미국 수입은 전면 금지된다. 하지만 ITC가 삼성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향후 오바마 대통령이 애플과 마찬가지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ITC가 9일 최종판정을 한 뒤 60일 후에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