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가상통화 열풍으로 뜨거울 때 다른 한 쪽에선 또 다른 것이 주목을 받았다. 가상통화의 핵심이자 근간을 이루는 블록체인 기술 얘기다.

가상통화를 둘러싼 우려와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뜻이 모인다. 세계 각국과 글로벌 업체들은 블록체인 기술 적용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IBM과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90% 국가의 정부 기관들은 2018년까지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시작은 가상통화였을지라도 끝은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Blockchain)이란 말 그대로 각각의 블록이 체인 형태로 길게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중앙 서버에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현재의 ‘중앙집권형’에서 각각의 데이터 자체가 흩어진 채로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분산형’으로 바뀐 저장 형태다. 여기서 각각의 데이터는 하나의 블록을 이루고 이 블록이 분산형으로 흩어진 채 무형의 체인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블록체인의 우리말 해석은 분산 장부. 여기서 핵심은 ‘분산’에 있다.

데이터의 분산(Decentralization)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뭘까. 바로 데이터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중앙집권형 체제 하에서는 중앙 서버에는 특정 권한을 가진 이들만 접근할 수 있었다. 중앙 서버만을 관리하면 되기 때문에 중앙 제어가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중앙 서버가 해킹될 경우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조작될 확률도 높다는 단점이 있다.

블록체인의 분산형 구조는 기존 체제의 문제점을 모두 상쇄한다. 개별 데이터에 정보가 축적되는 만큼 제어가 복잡하고 거래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투명한 거래와 디도스 등 해킹 공격을 통한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중앙 서버를 마련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과 유지에 드는 비용도 저렴하다. 현재는 가상통화가 시장의 주목을 더 많이 받고 있지만, 가상통화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블록체인의 무한한 확장성

블록체인의 사업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금융권은 물론 전자상거래, 공공서비스, 부동산 거래, 국제무역, 사물인터넷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업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 자문회사인 가트너에 따르면 블록체인 시장은 2022년까지 약 100억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트너는 2017년과 2018년 주목해야 할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에 2년 연속 블록체인 기술을 포함하기도 했다.

금융권은 블록체인 기술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대표 분야 중 하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20개 대형은행과 미국 핀테크 기업 R3는 지난 2014년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에 특화한 R3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블록체인 표준 플랫폼 공동 개발에 들어갔고 2016년 오픈소스 블록체인 플랫폼인 ‘코다(Corda)’를 개발하기도 했다. 코다를 이용하면 은행과 중개기관 간 송금은 물론 은행 간 송금도 매우 간편해진다. 송금까지 수일이 걸리는 해외송금도 단 몇 분 만에 이뤄진다. 개별 은행이 블록체인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시스템 마련에 분주하다. 국민, 신한, 하나, 농협, 우리, 기업은행 등은 R3컨소시엄에 참여해 코다 플랫폼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시스템 시험을 시작하고 이를 기반으로 은행 간 송금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삼성SDS와 은행권 공동으로 블록체인 인증 시스템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조폐공사 역시 내부에 블록체인 전담 팀을 구성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상품권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10월 업계와 공동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 서비스인 ‘체인아이디(Chain ID)’를 개설했다. 26개 금융투자사가 참여해 만든 체인아이디는 온라인 주식거래와 자금이체 등을 위한 인증 서비스다. 체인아이디를 통해 들어온 개인 인증 정보는 블록체인으로 각 증권사의 네트워크에 분산돼 관리하게 된다. 한 번의 인증 절차만 거치면 별도의 인증 없이 바로 거래가 가능해져 투자자들에겐 안전한 서비스를, 증권사에겐 효율적인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 중앙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무역 금융 플랫폼을 연계하고 있다. 수조 달러 규모에 달하는 국제 무역 거래에서 각종 사기와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다. 홍콩의 중앙은행격인 금융관리국(HKMA)과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지난해 10월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간 블록체인 플랫폼 연계를 통해 앞으로 핀테크 차원에서 협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블록체인은 보험이나 부동산, 중고차 거래 등 불완전판매 위험이 있는 분야에 유용할 수 있다. 각각의 데이터에 모든 데이터 거래 내역이 보관되기 때문에 이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이전 내역을 고의로 숨겨 발생하는 보험 사기나 중고차, 부동산 거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역시 블록체인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분야다. 블록체인이 적용되면 거래 정산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의 최근 화두인 ‘간편결제’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알리페이를 통해 간편결제의 선두에 서 있는 중국의 알리바바는 지난해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알리페이에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해 결제 시간을 단축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분권화하고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미래는 이토록 다양하다. 가상통화를 넘어 블록체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