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 'Good Game'의 약자로 패배를 승복한다는 뜻의 게임 용어.

 

“게임 한류로 지면 10페이지를 채우겠다고요? 한국 게임산업이 왜 망하고 있나 조목조목 따져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취재원이 그랬다. 기획안을 보여줬다가 들은 이야기다. 계획은 별 게 아니었다. ‘국내 게임사들이 게임이라는 만국공통어로 세계의 유저들과 교감한 가슴 뜨거운 기억’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기획안 초안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취재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가장 반대가 심했던 한 취재원은 말했다. “사실 게임은 한류였던 적이 없었어요. 일부 회사만 우연히 잘 된 거지. 게임 한류에 미래가 있냐고요? 없어요!” 이렇게 단호할 수가. 기획안 ‘전면 수정’ 위기에 빠졌다.

게임사 직원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A 게임사 직원: 게임 한류는 실제로 있습니다.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 수출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을 보면 영향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죠.

B 게임사 직원: 한국은 해외에서 기술력이 높은 게임강국, e스포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나라라는 이미지로 통합니다. 게임 개발과 이용 모두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셈이죠.

C 게임사 직원: 해외에서는 한국을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 봅니다. 아직까지도 전 세계 게임업계 종사자가 보기에 온라인 게임을 가장 잘 만들고 잘 이해하는 나라는 한국일 겁니다.

통계자료도 게임 한류의 존재를 증명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수출액은 30억5000만달러(약 3조3000억원)다. 콘텐츠 산업 전체 수출액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수출액은 연평균 25%가량 증가하고 있다. 게임 수출액은 K팝의 11배, 영화의 132배에 달한다.

앞서 언급한 취재원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IMF 사태 이후 게임은 불황산업으로서 성장했습니다. 이제 그 약발이 떨어졌죠. 불황이 일상이 됐으니까요. 한국 게임산업의 과거 10년은 환상이었습니다.” 이어 “지금은 체급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상태입니다. 미래를 내다볼 게 아니라 지금 상태를 따져보고, 문제점을 고치는 일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끝이 아니다. “의사가 진단을 해보면 고칠 수 있는 병인지, 아닌 병인지 알 수 있잖아요? 제가 우리 게임산업을 진단해보면, 못 고칠 것 같아요.” 또 “보면 딱 알잖아요. 더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무엇이 그를 이토록 비관적인 쪽으로 이끌었는가. 그에 이끌려 과감히 핸들을 틀었다. 게임 한류가 위기인 것은 물론, 미래가 없다고 지적되는 원인을 찾아 나서 실태를 기록했다. 역시 10페이지로는 모자랐다. 취재원이 옳았다.

누가 게임 한류가 몰락했다고 말하나. 그들을 만나 낱낱이 캐물었다. 문제를 알아야 고치는 것도 가능하니까. 이 기사는 무너지고 있는 게임 한류의 민낯을 기록한 것이다. 문제점들은 각각 독자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결국엔 서로 연결된다. 이 일곱 가지 단상에 우리 게임 한류를 되살릴 실마리가 담겨있다.

노가다·과경쟁 한국 게임

2003년 게임 한류 최고 사례라 불리는 게임이 탄생했다. 엔씨소프트의 MMORPG ‘리니지2’가 그 주인공이다. 그 전에도 국내 게임의 해외 진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리니지2’만큼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게임은 없었다. 2년 뒤인 2005년 이 게임은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수출대상’을 받았다. 그 시점이 한국 온라인 게임이 잠시나마 세계를 석권한 때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후 여러 한국 게임이 세계 시장에 노크하며 나름의 역사를 만들었다. 한국 게임은 세계무대에서 고유의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다. 독자적인 정체성을 획득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 게임의 특징들은 세계 시장에서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된다. 우선 한국이 먼저 도입한 ‘부분 유료화’ 개념은 어떤가.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특정 콘텐츠만 유료로 이용하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한국 게임학회 이재홍 학회장은 이 시스템이 초기와 달리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게임사들이 이용자에게 돈을 빼먹으려고 유료 아이템을 대거 만들면서 밸런스를 무너트렸습니다.”

싱글플레이보다는 멀티플레이, 특히 대전모드가 잘 갖춰져 있는 것도 한국 게임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경쟁 중심 콘텐츠가 결코 강점이 아니라 말한다. 경쟁이 게임의 핵심 요소로 통하는 해외 시장은 일부에 불과해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단순 노가다’도 한국 게임의 분명한 특징이다. 그저 반복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해 아이템을 획득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깊이 있는 스토리라인은 별 생각 없이 즐기는 단순한 플레이로 대체된다. 모든 한국 게임이 이러한 특징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징으로 꼽히는 요소들이 부정적인 면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분석이다.

 

허울뿐인 현지화

게임빌·넷마블게임즈 등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국내 게임사들이 있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게임사 관계자 B 씨는 “토종 게임사 중 한류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업체는 소수”라며 “완벽한 언어 지원이나 현지 마케팅 등 현지화 작업을 완벽히 소화하는 업체가 아직까지는 많이 없다”고 지적했다.

해외 시장에 접근하는 기획과 전략의 부재가 문제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지화’란 작업이 해외 진출에 용이하도록 현지 언어를 지원하는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기획 단계부터 현지화를 고려하는 접근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까닭에 게임 한류는 우연히 발생한 적은 있어도 의도적으로 기획해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규제 쇠사슬에 묶였다

규제도 우리 게임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지고 게임업계에 대한 정부의 규제 기조가 이어졌다. 하필 그때 막 국내 게임사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이후 무수한 규제 법안이 발의됐고, 일부는 시행됐다.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웹보드 게임 이용시간 제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다양한 규제 법안이 탄생했다. 게임을 도박, 마약, 알코올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게임중독법도 등장했다. 규제는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 실시 이후 국내 게임 시장 규모가 1조1600억원가량 위축됐다.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게임 이펙트>의 저자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게임을 대한민국 문화콘텐츠의 중심이고 콘텐츠 수출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창의 산업이라고 말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게임이 청소년의 정신을 망치고 일상생활에서 정상 활동을 방해하는 사악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이를 ‘콘텐츠 조울증’이라고 규정했다. 규제 문제는 특히 청소년 문제와 결부됐다. 게임이 청소년에 악영향을 미치니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만으로 규제를 하는 것이 옳은가요? 연구를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게임업계는 규제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심점이 없다 보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재홍 학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규제 이슈가 터졌을 때 정부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업계도 책임이 있더라고요. 오타쿠 기질이 강하다고 할까? 정부 때문에 사업에 타격을 받는데도 바짝 엎드려 있기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