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 'Good Game'의 약자로 패배를 승복한다는 뜻의 게임 용어

 

‘모바일 퍼스트’ 시대가 달라졌다

업계는 2010년부터를 온라인 게임 시장 격변기로 본다. ‘리그오브레전드’, ‘피파온라인3’ 등 외산 게임이 국내 시장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이 안방을 내준 셈이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기회는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널리 보급되면서 모바일 게임 시장이 꿈틀거렸다. 온라인 게임 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국내 게임사들은 잠재력에 판돈을 걸었다. 지난 2008년 모바일 게임 시장은 3000억원 규모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8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에서 25.4%로 급증한다. 같은 기간 온라인 게임 비중은 48%에서 55.4%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친다.

시장이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그런데 모바일 게임 사업은 온라인과 비교해 다소 열등한 면이 있었다. 일단 게임이 대체로 오래 흥행하지 못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평균 지속 이용기간은 14.8주로 나타났다. 1년 이상 장기 흥행하는 게임도 있지만 극히 일부다. ARPU(유저당매출)도 급락했다. 온라인 시절 평균 1~2달러 수준을 유지했다면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오면서 0.01달러로 주저앉았다. 또한 유저 열에 아홉은 게임에 돈을 쓰지 않았다. 권택민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은 대한민국 게임포럼에서 강연을 통해 “모바일 게임은 휘발성이 강하며 성공한 온라인 게임에 비해 지속적인 수익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모바일 퍼스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퍼블리셔와 개발사의 갈등도 심화됐다. 일부 퍼블리셔는 소규모 개발사의 처지를 악용했다. 개발사는 게임 출시 전에는 수익이 제로일 수밖에 없다. 퍼블리셔는 이들이 제대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 그런데 약속한 지원금을 주지 않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나중에 가서 지원금 지급을 빌미로 지분을 요구하는 식으로 게임 출시에 따른 이익을 독점하려 한다. “N사가 주로 그럽니다. 그래서 N사와 계약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다닙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모바일 게임 유통 플랫폼도 보편화됐다. 다음카카오의 ‘카카오 게임하기’가 대표적이다. 2012년 문을 연 이 플랫폼은 지난해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섰다. 카카오톡 메신저 이용자와 신작 게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지만 개발사의 수익 구조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중간에 사업자가 끼어들었으니 수수료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구글 플레이와 같은 앱마켓 수수료는 보통 30%이다. 여기에 ‘with Kakao’를 달면 21% 수수료를 추가 지불한다. 남은 49%는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반반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바일 앱마켓이 처음 열렸을 때 개발사가 70%를 가져갔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탈(脫)카카오 현상’이 뚜렷해지는 추세다. 다음카카오에 수수료를 내느니 그 돈을 광고나 다른 비용으로 지출하겠다는 개발사가 늘었다. 또 하나의 분위기는 카카오를 벗어난 개발사들이 네이버와 협력한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대작 게임을 연속으로 퍼블리싱해 흥행 성공시켰지만 그 본질은 ’with Kakao‘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게임판 ‘쌍용차 사태’ 일어나나

그렇다면 우리는 모바일 게임 강국이 됐을까. 구글 플레이 매출 기준으로 세계 3위를 기록 중이다. 그런데 지난 1년 외산 모바일 게임의 안방 침탈이 본격화됐다.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핀란드 슈퍼셀의 ‘클래시오브클랜’은 지난해 8월부터 11주 연속 국내 구글 플레이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중국 가이아모바일의 ‘도탑전기’는 지난해 11월 출시해 국내 매출 톱 10에 진입했다. 알다시피 온라인 분야는 2011년 중국 텐센트홀딩스가 인수한 미국 게임사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가 2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임사 직원 A 씨는 말한다. “외산 게임에 하나둘씩 자리를 내주게 된 원인은 결국 국내 게임 콘텐츠 내실 약화에 있을 겁니다. 게임벤처 붐이 일고, 성공사례가 생기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고가 팽배해졌습니다. 매출만 신경 쓰면 결국 유저가 원하는 ‘재미’에 대한 고민은 부족할 수밖에요.”

한편 중국 자본이 국내 시장에 대규모 유입되면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고도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증언한다. “중국 자본이 한국 게임 시장에 투자되는 전체 금액의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중국 자본은 한국 펀드가 굴리는 돈에 ‘0’이 하나 더 붙는 규모입니다.”

▲ 출처=라이엇게임즈

이러한 상황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이재홍 학회장의 전망은 어둡다. ‘자본 종속’과 ‘기술력 유출’의 문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자본의 지배가 심화되면 국내 게임사는 하청업체가 되고 말 것”이라며 “지난 쌍용차 사태를 기억해야 한다. 알맹이만 빼가고 껍데기만 남기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이를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업체들도 나타났다. 중국을 게임 한류의 가능성 있는 시장으로 판단한 것이다.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4~5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정부는 게임을 전자마약이라 칭하며 규제했지만 대대적인 진흥책을 펼쳐 단시간 내 게임 강자로 거듭났다.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2013년 1조4000억원 규모였지만 지난해 3조3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올해도 40%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시장 포화 조짐이 보인다. 중국 모바일 광고업체 여우미에 따르면 흥행의 분기점인 월 매출 500만위안(약 8억4600만원) 이상을 기록한 게임은 1%에도 못 미친다.

광고 열풍이 양극화 부른다

“요즘 게임 광고 많이 하네.” TV를 보던 D 씨의 혼잣말이다. 국내 게임 광고 시장은 슈퍼셀이 열었다. 이 게임사는 ‘클래시오브클랜’ 광고비로 국내에서만 1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지난해 일이다. 2013년 게임업체 지상파 광고 집행 전체 규모가 17억원이었는데, 지난해 192억원까지 급증한 이유다. 국내 A급 게임사가 한 해 광고비를 10억원 남짓으로 책정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결국 ‘클래시오브클랜’이 큰 인기를 얻으며 TV광고 효과를 입증했고, 몇몇 국내 게임사도 광고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넷마블게임즈와 네이버가 손잡고 선보인 ‘레이븐’과 ‘크로노블레이드’에는 총 200억원이 넘는 광고비가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 광고 열풍의 배경이다. 이 현상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일단 게임 시장이 규모가 커졌으니 자연스럽게 게임사가 광고 시장 큰손으로 떠올랐다는 지적이 있다. 주변을 뒤덮은 게임광고가 게임 시장의 성장을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순진한 생각이다. 오가는 돈의 단위가 큰 만큼 아무 업체나 광고 경쟁에 참여할 수는 없다. 광고가 흥행보증수표라 하더라도 그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업체는 극소수다. 거액의 광고료를 지출할 수 있는 업체들은 광고를 통해 흥행작을 탄생시키고, 벌어들인 돈으로 또 다시 신작을 통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일 것이다. 돈이 돈을 낳는 것이다. 영세한 업체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도 홍보채널을 확보하지 못해 흥행에 실패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광고 열풍이 지속될수록 업계 양극화는 심해지는 셈이다. 이재홍 학회장은 말한다. “다 같이 잘 사는 구조가 아닌 거죠. 승자독식 구조는 점차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로 게임 오버?

제2의 게임 한류를 위해 어떤 노력이 가능할까. “정말 답이 없어요.” 김종득 대표의 한탄이다. 그에게 아케이드·게이미피케이션·가상현실(VR) 등에 미래가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VR? 사람들의 비주얼적인 기대치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거 다 돈입니다. 리얼한 비주얼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돈을 때려 박는 일이죠. 한국에서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게임사는 몇 개뿐입니다. VR이 게임산업의 미래다? 그럼 나머지 게임사는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독설은 끝나지 않았다. “아케이드 시장은 이미 끝났어요. 게이미피케이션? 이것은 ‘게임화’이지 게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예컨대 공부에 게임 요소를 가미한다면 그것을 게임이라 부를 수는 없죠. 게임회사는 게이미피케이션으로 돈을 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왜 게이미피케이션이 게임산업의 미래냐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