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명품 가방을 들거나 블링블링한 옷을 입으면 “럭셔리하다”고 찬사를 받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촌스럽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지금은 트렌드에 휘말리지 않는 뚜렷한 주관, 자신만의 스타일로 오랫동안 쌓아온 취향 등 언뜻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 사람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는 아우라에 찬사를 보내는 시대다.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는 트렌드 ‘놈코어(Normcore)’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패스트 패션의 시대는 지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양보다는 질적으로 ‘나’를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게 요즘 소비자의 트렌드다. ‘일상적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이 무엇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시대’라는 게 요즘 놈코어 족(族)의 얘기다.

최근에 놈코어가 화두로 떠오르자 편안하고 느긋한 삶을 지향하면서 가깝고 편한 관계의 사람을 뜻하는 ‘킨포크(Kinfolk)’도 함께 이슈다. 이에 먹거리와 운동 등에서도 편안하지만 우아하고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향이 점점 만연해지고 있다.

아울러 <건축학 개론>,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 <삼시세끼> 등 콘텐츠를 중심으로 유행한 1990년대 문화가 놈코어라는 키워드를 통해 평범함을 넘어 이제는 드라마나 음악을 중심으로 복고 무드가 전파되면서 ‘아날로그의 멋’에 호응하고 있다.

“나를 위해, 내 멋대로 하는 게 멋스럽다”고 말하는 놈코어. 어느 순간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우아함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이 시대에 안착했다.

*놈코어(Normcore) : 평범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철저함을 뜻하는 하드코어(Hardcore)가 결합한 신조어. ‘평범함과 힘을 뺀 자연스러움이 더 럭셔리(Luxury)하다’는 것을 뜻하며, 2013년 10월 미국 뉴욕의 트렌드 전망 기관인 ‘케이홀’이 처음 사용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 소비자들은 지속되는 영하권 날씨에 보온성이 뛰어나면서도 멋을 낼 수 있는 아웃도어 아이템을 활용한다. 특히 화려함 보다는 실용성에 기반을 둔 놈코어 아웃도어룩이 인기다. 사진=노연주 기자, 장소제공=마모트 논현점

# 회사원 최창길(35세·가명) 씨의 옷장은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옷들로만 가득 차 있다.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검정 또는 흰색의 기본 스타일만 고집해 왔다. 박 씨는 옷이나 여러 아이템의 질감과 피팅(Fitting, 조합) 차이가 미묘하게 있지만, 세련미 있게 소화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내공을 가졌다. 그가 소지한 티셔츠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100만원대 이상의 고가 제품도 적지 않다. 집 안에 있는 가구나 아이템 또한 튀지 않고 평범한 스타일 위주로 꾸며져 있지만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요즘에는 다양한 운동 방법이 있지만, 박 씨는 20년 가까이 오직 테니스와 탁구로 건강관리를 해 오고 있다. 먹거리 역시 유기농 야채와 과일만 고수한다.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평범함과 단순함으로 개인 특유의 개성과 고급스러움을 함께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몇 년 또는 몇십 년 이상 섬세하게 다듬어진 자신만의 취향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놈코어 족(族)’에 대한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우아하게’ 일상 속으로

요즘에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과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조어가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읽기 위해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들을 소화해내느라 버거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엇이든 남들 눈에 튈 만큼 과하고, 최고로 앞서 가는 사람들을 ‘트렌드세터(Trendsetter)’로 추앙하던 시대에 반란이 일어났다.

자신이 그동안 고수해 오던 스타일을 선호하고, 누구의 이목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평범한 부류는 아니다. 튀지않는 ‘나만의 전매특허식’ 분위기나 평범함 속에 내제된 우아함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놈코어’가 주목받는 시대다.

놈코어(Normcore)는 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로 평범하지만 그들만의 색깔이 있는 고급스러움을 말한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샤를로트 갱스부르, 카세 료, 제인 버킨이 놈코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최근에 놈코어는 패션뿐 아니라 콘텐츠, 외식, 운동까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특히, 평범함을 넘어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주의 경향까지 이어지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 20대는 즐거운 삶, 경제적인 부, 연인과의 사랑보다 '마음의 평안'을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출처=2013년 상반기 EnC 조사.

과거의 안티 패션, 현재는 트렌드로

애플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검정색 풀오버, 데님 팬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했던 고(故) 스티브 잡스 회장의 패션이 트렌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가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는 패션 아이콘처럼 화제가 되었다.

지난해 뉴욕매거진은 브랜드를 알 수 없는 진, 평범한 스포츠웨어, 짧은 흰 양말을 착용한 중년의 미국 여행객 같은 스타일을 일컫는 용어로 ‘놈코어’를 언급했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남들과 똑같은 것이 오히려 쿨하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스웨트 셔츠, 진, 운동화로 이루어진 놈코어 룩(Look)은 과거에는 ‘안티 패션’처럼 보여지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인기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수많은 패션잡지와 정보지들은 매일 놈코어 트렌드를 말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놈코어라는 키워드로 업데이트되는 스타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놈코어 트렌드의 영향으로 꾸미지 않은 듯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니트 스타일링이 인기를 끌면서, 불규칙한 니트보다 일정한 짜임과 두터운 텍스처가 살아있는 케이블 니트 조직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뉴욕패션위크에도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니트를 선보였다. 집 안에서 입는 편안한 니트뿐만 아니라 캘빈클라인 컬렉션의 우아한 모헤어 스커트와 탑, 로다테(Rodarte)의 손으로 짠 드레스까지 다양한 아이템이 나왔다. 따뜻함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니트는 다양한 컬러에 독특한 실루엣을 더해 모던 스타일링을 제시했다는 게 삼성패션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애플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검정색 풀오버, 데님 팬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했던 고(故) 스티브 잡스 회장의 패션이 트렌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가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는 패션 아이콘처럼 화제가 되었다.

지난해 뉴욕매거진은 브랜드를 알 수 없는 진, 평범한 스포츠웨어, 짧은 흰 양말을 착용한 중년의 미국 여행객 같은 스타일을 일컫는 용어로 ‘놈코어’를 언급했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남들과 똑같은 것이 오히려 쿨하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스웨트 셔츠, 진, 운동화로 이루어진 놈코어 룩(Look)은 과거에는 ‘안티 패션’처럼 보여지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인기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수많은 패션잡지와 정보지들은 매일 놈코어 트렌드를 말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놈코어라는 키워드로 업데이트되는 스타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놈코어 트렌드의 영향으로 꾸미지 않은 듯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니트 스타일링이 인기를 끌면서, 불규칙한 니트보다 일정한 짜임과 두터운 텍스처가 살아있는 케이블 니트 조직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뉴욕패션위크에도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니트를 선보였다. 집 안에서 입는 편안한 니트뿐만 아니라 캘빈클라인 컬렉션의 우아한 모헤어 스커트와 탑, 로다테(Rodarte)의 손으로 짠 드레스까지 다양한 아이템이 나왔다. 따뜻함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니트는 다양한 컬러에 독특한 실루엣을 더해 모던 스타일링을 제시했다는 게 삼성패션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오수민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놈코어 룩은 외환위기와 취업전쟁 등으로 치열했던 1990년대 감성이 저성장 기조의 지금 시대와 맞물리면서 청춘의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온 30~40대뿐 아니라 1980년대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Millennials) 세대에게도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역시 2015년 유행할 패션 트렌드로 놈코어를 꼽았다. 명품에 지친 사람들이 평범하고 편한 분위기를 찾으면서 유명 브랜드나 독특한 디자인의 옷보다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패션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고 센터 측은 예측했다.

패션업계에서는 놈코어를 겨냥한 의상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014서울패션위크와 해외 패션쇼에서는 많은 디자이너가 2015년 봄·여름(SS) 패션을 겨냥해 디자인을 최대한 배제한 넉넉한 치수의 겉옷이나 심플한 원피스 등을 선보였다.

아웃도어 업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속되는 영하권의 날씨로 소비자들이 코트보다는 보온성이 뛰어나면서도 멋을 낼 수 있는 아웃도어 아이템을 활용하는 경향이 이어지면서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에 기반을 둔 놈코어 아웃도어룩이 뜨고 있다.

우주원 마모트 마케팅본부 부장은 “아웃도어 의류는 기능만을 위한 옷이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최근 업계에서는 놈코어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 부장은 “놈코어 룩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소비자들의 기호를 반영해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웃도어 제품이 놈코어 룩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놈코어는 소품 시장에서도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브랜드 무지코리아에서 전개하는 무인양품의 경우, 한국 매출이 2011년 232억원에서 2013년 362억원으로 2년 새 156%나 늘었다. 이 브랜드는 특별한 무늬 없이 기본 디자인으로만 되어 있는 소품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도서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에서 무인양품의 최대 성공 요인은 ‘콘셉트’로 소개된 바 있다. 무지코리아에 따르면 무인양품은 단 하나의 상품을 파는데, 개성과 유행을 상품으로 삼지 않고 상표의 인기를 가격에 반영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놈코어족의 취향에 들어맞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