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이종윤 전무. [사진=이미화 기자]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 우수 퇴직인력을 활용하는 동시에 이들에게 일본의 경영혁신기법을 연수시켜 ‘제조혁신 인스트럭터(지도사)’로 양성, 우리 제조현장의 비효율 요소를 개선하는 전문가 그룹으로 적극 키우겠다.”

우수 퇴직인력의 재활용을 통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앞장 서고 있는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한일재단, 회장 김윤)의 이종윤(69) 전무이사는 최근 한·일 양국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일본과의 경제협력 강화가 한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서울 논현동 한일재단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이종윤 전무는 활달한 미소를 지으며 한·일 경제협력 증진이 우리나라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이 전무는 한일경제협회 부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한·일 경제협력 강화 차원에서 한일재단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한·일 두 나라는 1960년대 이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최근까지 일본은 자기네 비교열위 산업을 한국에 이전하는 대신 비교우위 산업을 고도화시키는 방향을 추구해 왔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앞선 기술과 자본을 이용해 줄곧 산업화에 매진했다. 말하자면 한·일 양국은 경제성장에 윈-윈(Win-Win)해 온 셈이다.

그러다 한국의 산업이 발전하면서 어느 결에 일본과 고도의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제3국에서 한·일 간 과당경쟁을 야기해 서로의 교역조건을 악화시키는 문제를 낳았다. 두 나라는 나란히 공업화를 추진하는 인접국가로서 불필요한 경쟁 대신 발전적이고 수평적인 분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고 한일재단은 그런 새로운 과제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일간 수평적 분업 시스템이 핵심인 것 같다. 수평적 분업을 좀더 설명해 달라

기본적으로 종전의 우호적인 경제협력을 기반 삼아 양국 산업간 필요한 상호공급 시스템을 확대, 강화하자는 것이다. 즉, 일본은 선진기법인 모노즈쿠리 경영을 한국에 전파하고, 한국은 모노즈쿠리 도입을 통해 제조현장의 혁신을 적극 창출한다.

한국은 모노즈쿠리 경영으로 중소기업 제조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일본은 한국 중소기업의 우수 부품들을 공급받음으로써 안정적 부품 확보 및 원가 절감을 도모할 수 있다. 양국 제조산업간 수평적 윈윈(win-win) 관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일간 제조업 분업 시스템이 확고해 지면 해외에서 서로 경쟁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제3국 공동진출도 적극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할 것이다.

갈수록 중국과의 교역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은 한국에게 ‘시장’이며, 중국 기술을 도입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의 선진 기술은 한국의 제조업 발전에 필요하고 실질적 도움을 준다. 즉, 한국과 일본은 상호간 서플라이(Supply:공급) 체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쌍방간 서플라이 체인 구조가 바로 한일간 분업 협력을 의미한다.

 

한·일 경제협력은 바람직하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에서 강조한 것 처럼 한국도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뤘기에 그 기반 위에 두 나라의 산업 간 분업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새로운 협력체제를 구축하는게 한일재단의 핵심 역할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협력체제 구현의 하나로 한일재단은 한국 퇴직 기술인력과 일본 제조혁신 경영기법인 ‘모노즈쿠리(モノジ’クリ)’를 접목시켜 진행하고 있다.

퇴직인력 활용은 국내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자)의 은퇴에 따른 ‘제조 단절’을 보완해 국내 기업의 제조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이고, 모노즈쿠리는 토요타 경영모델로 대표되는 혁신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해 원가절감의 합리적인 경영을 정착시키는 등 전반적인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한국기업의 제조 기반이 고도화되면, 가령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한국의 우수한 차량 부품을 많이 가져다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한·일 산업 간 분화이며, 새로운 협력체제다.

 

한국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일본보다 약해 불리하지 않은가.

▲ [사진=이미화 기자]

국내 중소기업 기술 수준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건 사실이다. 일정 정도의 기술 격차가 있다. 한일재단이 올해부터 심혈을 기울고 있는 ‘한국형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사업’은 바로 우리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한일재단은 제한된 예산으로 그동안 국내 기술인력 지원사업을 펼쳐 현재까지 60~70개의 기업이 참여했다. 그러나 국내 부품소재 기업이 수만 개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부족이다. 다행히 경영 고도화를 추구하는 모노즈쿠리 도입과 도입 부분은 이전부터 일본 도쿄대 모노즈쿠리경영지원센터와 협력관계를 맺고 국내 퇴직자를 일본연수 및 현지기업 견학을 꾸준히 실시해 오고 있다. 물론, 그마저도 기껏해야 280여개사 수준이다. 올해부터 한국형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에 나선 것도 국내 기업에 퇴직인력 재활용과 모노즈쿠리를 통한 경영 합리화를 도모하자는 취지에서다.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의 첫 성과와 향후 계획은.

올해 처음 실시해 1기 수료자 28명을 배출했다. 국내 대기업 퇴직인력을 중심으로 신청자를 모집, 일본 도쿄대에서 모노즈쿠리경영기법을 교육받고, 모노즈쿠리 우수 기업을 현지방문해 실무를 익힌다. 이어 국내 연수도 진행, 도쿄대 모노즈쿠리경영센터 연구원과 관련 전문가들을 초빙해 강화수업을 받으며, 국내 중소기업에 파견돼 제조현장의 비효율 요소를 개선시키고 경영혁신을 도출하는 실무교육을 거친다.

내년에는 인스트럭터 양성을 좀 더 체계화시킬 계획이다. 연수 프로그램 외에도 한일재단이 후원하고, 수료자들이 적극 참여하는 ‘모노즈쿠리 스쿨’을 설립하고, 또한 교육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인스트럭터 자문기구를 만들 예정이다. 모노즈쿠리경영 연구전문가와 중소기업 경영혁신 실무자 5~10명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인스트럭터 활동을 본격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모노즈쿠리 자문기구는 일본의 모노즈쿠리경영기법 자료를 충분히 연구하는 한편, 일본의 방식이 아닌 한국 기업의 현실에 맞게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일선에서 활동하는 인스트럭터나 지역에 기반을 둔 모노즈쿠리 스쿨에서 제기하는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한일재단과 협력해 최대한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인스트럭터 활용 대상은 중소기업인 반면에 수료자는 대기업 출신이 많다.

대기업 우수인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그들이 가진 종합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취지다. 즉, 대기업에 비해 인적, 물적 자원 및 가용 능력이 미흡한 중소기업에 대기업 우수인력을 파견해 제조현장 혁신을 유도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아시다시피 일본 모노즈쿠리경영 내용은 연구개발(R&D)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흐름이 어느 단계에서 중단되거나 정체되지 않고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비능률적,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전체 경영 과정에서 능률적, 생산적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일련의 흐름을 파악하고 문제 요소를 개선하는 데는 대기업 인력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서 1기 인스트럭터 연수에는 대기업 출신을 중심으로 참여시켰다.

참고로 연수생들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고, 수료 뒤 결속도도 높다. 연수 후 인스트럭터 직무에 대한 자부심과 가능성을 보고 1기 모임을 결성하고, 자체적으로 모노즈쿠리경영 교재개발분과와 현장지도 매뉴얼분과 등 2개의 소모임을 만들 정도로 대외활동이 활발하다. 한일재단은 인스트럭터 모임 활동도 적극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다.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수료 이후의 활동 및 지원 계획은.

▲ [사진=이미화 기자]

한일재단 입장에선 인스트럭터들은 국내 전체 중소기업에 파견해 경쟁력 향상을 지원하고 싶다. 수료자들을 제조현장에 파견하기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찾아가 인스트럭터 양성과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올해 시작단계라 국내 기업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일부 중견기업, 대기업에서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소문을 듣고 직원연수 신청이 오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가령 이달에는 경기도 시흥의 자동차부품 기업에서, 내년 1월에는 부산의 대기업 계열사에서 제조혁신경영 사내교육을 실시하는 데 제1기 인스트럭터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모노즈쿠리경영 기반의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니까 원조인 일본 측에서 ‘자칫 하면 우리가 만든 제조혁신기법을 한국이 먼저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을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게 있다면.

한일재단은 일본과 한국의 퇴직기술자 500여 명의 인력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 예산의 제약으로 실제 활용 비율은 일 년에 고작 60~70명밖에 안 돼 안타깝다. 비용 대비 중소기업에 주는 지원 효과는 20배가 넘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연간 200억~300억원가량의 예산만 확보된다면 인스트럭터 양성은 물론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현장 지원의 양과 질을 더욱 배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