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시가현 야스시의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양성교육에 참가한 교육생들의 기업현장 방문 모습. [사진=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일본은 지난 1990년대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엄청난 거품(자산가치 급등)이 꺼지면서 그 후유증으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을 겪었다. 2001~2006년 집권한 고이즈미 정부의 고강도 개혁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일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엄습으로 다시 경기부진에 허덕이며 ‘잃어버린 20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그나마 2012년 집권한 아베 정부의 강력한 재정확대에 기반한 경기부양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약발로 경제를 버텨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불안정한 일본경제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단카이(團塊)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 출생자)의 대량퇴직 사태를 맞아 ‘제조업 단절’이라는 새로운 고민거리에 직면하게 됐다.

1960~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베이비부머(단카이 세대)의 퇴직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 기반을 무너뜨리는 ‘기능 및 숙련기술자의 공백 또는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06년 당시 단카이 세대 제조업 은퇴자 규모는 155만명으로 전체 제조업 종사자의 13% 가량에 이르렀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고용연장·재고용 등의 대책을 내놓았고, 민간에서도 퇴직전문인력을 재활용하려는 지원 프로그램들을 실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 제조인력을 기업의 현장개선 인력으로 육성해 재활용하려는 일본의 민관협력 프로그램이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일본처럼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과 제조업 단절, 그리고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의 해결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 벤치마킹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도쿄(東京)대학은 지난 2005년부터 퇴직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 베이비부머 세대의 숙련 기술자(현역)들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제조현장의 작업개선을 지도할 수 있는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Instructor)’, 즉 제조현장 개선 멘토(지도사)를 양성하는 과정(스쿨 · School)을 실시해 오고 있다.

도쿄대는 모노즈쿠리경영연구센터(MMRC: Manufacturing Management Research Center)를 설립, 인스트럭터 양성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모노즈쿠리(モノズクリ)’란, 일본 농경시대부터 메이지(明治)유신으로 이어져 오면서 장인정신에 근거한 좋은 물건을 만드는 전통적인 제조법이나 생산기술을 지칭하는 용어인 ‘모노츠쿠리(もの(物)つくり)’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현대 기업의 전사적 경영 활동으로 확대·발전시킨 경영 개념이다. 즉, 오늘날 기업이 물건 제작을 기획하는 개발 단계부터 구매-생산-판매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부가가치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통합형·개방형 경영관리시스템이다.

 

도쿄대 MMRC는 1960년대 이후 일본 기업 성장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경영 사고를 전통적인 모노츠쿠리 제조 정신과 접목, 실증적 연구를 통해 이론화시킨 ‘모노즈쿠리 경영’을 일본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자국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에 보급·지원하고 있다.

도쿄대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스쿨은 지난 2007년까지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의 베테랑 기술자들을 산업 구분에 관계없이 특정기업의 생산에서부터 판매까지 이르는 현장 전반을 혁신할 수 있는 지도사로 양성하고 있다.

또한, 인스트럭터 스쿨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기업 스쿨’, ‘지역 스쿨’도 운영, 해당 스쿨의 책임자인 교장을 육성해 베이비부머 제조인력의 중소기업 지원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역 스쿨의 하나인 일본 군마현(群馬縣)의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스쿨은 2010년부터 도쿄대 MMRC로부터 교재와 강사진을 지원받아 해당 지역의 현역 및 퇴직 현장베테랑 기술자를 매년 양성, 지난해까지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69명을 배출했다.

인스트럭터 과정은 모노즈쿠리 기본개념을 비롯해 기업 경쟁력 제고, 품질관리, 원가와 생산성, 납기·공정·재고·설비 관리 관련 이론과 수법, 현장실습, 개선 제안서 작성법 등을 교육한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이하 한일재단) 인재양성팀 김도훈 팀장은 “인스트럭터의 경영개선 지도를 받은 군마현 A 기업의 경우, 생산현장의 환경과 정보를 정비해 작업시간을 약 20% 단축시켰고, B사는 생산계획을 수정해 재고 35% 감축, 작업순서 개선으로 공장가동률 6% 향상의 성과를 냈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지역 스쿨 운영과 인스트럭터 활동을 통해 자기 고향의 베이비부머 퇴직 전문인력의 숙련된 기능 및 노하우 등을 지역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아예 소속 공무원을 도쿄대 스쿨에 파견해 인스트럭터 과정을 거쳐 지역 스쿨의 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니가타(新潟)현 나가오카(長岡)시는 같은 지역의 철공소 출신 퇴직기술자를 재고용해 인스트럭터 스쿨을 이수시킨 뒤 지역스쿨 교장으로 임명해 지역 인스트럭터 양성과 중소기업 생산혁신을 이끌고 있다.

시가(滋賀)현 야스(野洲)시도 도쿄대와 연계한 모노즈쿠리경영교류센터를 통해 인스트럭터 지역 스쿨을 개설, 지역의 40세 이상 기술관리경험자를 교육시킨 뒤 3인 1조의 인스트럭터팀을 신청 기업에 파견해 현장 개선을 지도하고 있다.

일본의 은퇴 또는 퇴직예정 현역 베이비부머 기술자 중 도쿄대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스쿨을 통해 지난해까지 배출된 인스트럭터 인원은 총 88명에 이른다.

김 팀장은 “오히려 일본한테 배운 한국이 정부 지원으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기술자들을 적극 양성하고 있어 일본측이 긴장하는 눈치더라”고 전했다.

도쿄대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스쿨 외에도 기업 차원에서 단카이(베이비붐) 세대의 숙련된 기능과 노하우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가령, 모바일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세이코엡손은 정밀가공 기술을 보유한 단카이 세대가 사내 젊은 직원들을 지도·전수하는 ‘모노즈쿠리 도장’을 운영하면서 ‘기술 계승’을 잇고 있다. 냉동기 및 가스콤프레셔를 만드는 마에가와제작소도 자사 퇴직 예정 숙련기능자를 활용해 각 세대별 목표를 설정해 사내직업훈련(OJT)를 체계적으로 실시, 세대별 기술자간 숙련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도 한일재단이 일본의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양성과정을 도입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형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일재단은 지난 2009년 김도훈 팀장(박사)을 도쿄대 모노즈쿠리 경영연구센터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파견해 도쿄대학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2011년에는 한일재단 장윤종 박사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스쿨 정규과정을 수료했다.

김도훈 팀장은 "도쿄대가 외부기관의 모노즈쿠리 인재양성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모노즈쿠리 인스트럭터 양성 스쿨을 수료한 자가 교장 또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만으로 한정하고 있다"면서 "한일재단도 도쿄대 인스트럭터 스쿨 수료에 따른 해당 지원 규정에 의거해 협력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