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일본 언론들이 인용 보도한 2012년판 일본 경제산업성의 중소기업백서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됐다.

고령화와 1947~1949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이른바 ‘단카이(團塊:단괴)세대’의 본격적인 정년퇴직 영향으로 일본 창업시장에서 고령층의 창업이 크게 늘어난 반면, 청년층 창업은 줄어들었다는 보도였다.

일본 사회는 이를 두고 ‘노고약저(老高若低) 현상’이라 부르며 자국 경제의 ‘연로화(年老化)’를 걱정했다.

일본의 전체 창업자 가운데 60~64세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라는 사실을 중소기업백서는 밝히고 있다. 퇴직자에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일본정책금융공고(우리나라의 신용보증기금과 유사)에 따르면 2001년 3.9%에 머물렀던 60세 이상 창업자 비율이 2007년 4.3%, 2011년 6.6%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이 같은 일본 창업시장에서 두드러진 ‘노고약저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청이 지난 7월 말 발표한 ‘2014년 상반기 신설법인 동향’ 자료에서 올해 1~6월 창업이 활발했던 연령층은 40~60대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1955~1963년 출생자들에 해당하는 50~60대 장년 및 고령층이 창업 증가율에서 가장 앞섰다. 창업 절대수에선 40대가 가장 많았지만, 창업 증가율에서 50대 12.8%, 60대 13.3%로 30세 미만(-2.4%), 30대(5.2%)보다 2~5배나 높았다. 국내의 ‘노고약저 현상’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행렬이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정부와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일본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었고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안들을 고민하며 정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지금 베이비붐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 단카이세대 퇴직 우려점 무엇이었나

일본은 단카이(베이비붐)세대의 대량 퇴직이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됐다. 태평양전쟁의 패전 직후였던 1947~1949년 사이 출생한 일본인들이 당시 규정된 ‘60세 정년’을 맞아 본격적인 은퇴 썰물이 일어났던 것.

2006년 당시 단카이세대 규모는 683만명으로 일본 총인구의 5.3%를 차지했다. 이는 앞선 1944~1946년생보다 50%나 많은 수치였다.

‘덩어리’라는 용어 뜻대로 단카이(團塊)세대의 무더기 퇴직은 일본의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들썩이는 커다란 이슈였다. 가장 큰 걱정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에 따른 경제와 사회의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즉, 고령층의 실업 증가라는 사회복지 측면의 문제가 먼저 부각되었고, 이에 못지 않게 생산인력(일손)의 부족, 숙련 노동자의 기술·기능 전수 등도 경제산업적 시각에서 걱정을 낳았다.

노동력 인구의 급감과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단카이세대의 퇴직으로 2007년부터 4년간 일본 노동력인구가 180만명 감소하고, 그 경제적 손실도 2010년 기준으로 약 16조엔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단카이세대가 보유한 숙련 기술과 기능, 노하우 등이 계승되지 못하는 ‘제조산업의 단절’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단카이세대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같이 국가경제의 성장 주역으로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경제부흥기를 일으키며 ‘메이드 인 재팬’의 고품질과 고생산성을 견인한 숙련기술자 집단이었다.

이들의 산업현장 퇴장은 제조강국 일본의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인 제조기술 및 기능, 노하우의 원활한 승계 및 전수의 공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단카이세대 설문조사에서 ‘지식과 노하우 전수가 매우 필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절반이 넘는 52%에 이른 반면, 전수가 충분히 이뤄졌다는 비율은 2.7%에 그친 점에서 일본 사회의 우려가 그만큼 컸다.

그렇다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부정적인 후유증만 가중시킨다는 시각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은퇴자의 증가는 고령 및 노후 세대의 수요 증가를 의미하기에 그에 해당하는 소비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반응도 있었다.

2007년 당시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당시 단카이세대가 수령할 퇴직금 규모가 2007~2009년 3년간 누계 약 50조~80조엔에 이르렀다. 이 금액은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수치였다.

실제로 일본 소비시장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 이후 퇴직자들을 겨냥한 신사업(New Business)들이 생겨나고 활성화됐다.

그 단적인 예로 펀(Fun), 패밀리(Family), 퓨처(Future)로 불리는 3F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동시에 ‘아이는 적고 강아지는 많다’는 뜻의 쇼시다켄카(小子多犬化·소자다견화) 현상으로 상징되는 애견(반려)동물 산업도 인기를 끌었다.

3F시장은 Fun의 여행 레저 홈시어터 외식 패션, Family에 해당하는 재건축 전원주택 애완동물, Future에서 웰빙 재테크 평생교육 등의 신소비 시장들이다.

▲ [자료=사이버경희대 오태헌 교수(일본학과)]

일본은 어떻게 베이비붐 문제에 대처했나

이같은 베이비붐 세대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일본 사회의 대응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대량 퇴직의 일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단카이세대의 고용을 연장시키는 사전적 정책이었고, 두 번째는 퇴직인력을 재활용하는 사후적 정책이었다.

우선 사전적 정책으로는 이미 2004년 6월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기업들에게 △정년 65세 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제도 폐지 등 세 가지 제도 가운데 사업장의 경영과 노사 관행에 맞는 적정한 제도를 선택하도록 해 베이비붐 문제를 완충하려 했다.

물론 당시 일본 기업 다수가 정부의 일률적 정년연장에 회의적 견해를 보이며 미온적인 반응이었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년연장과 재고용이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기업이 토요타자동차와 후지전기. 토요타는 2006년부터 60세 정년 사원 전원을 재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했고, 후지전기는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65세 정년제를 실시했다.

사후적 정책은 베이비붐 출신 노동인력을 재활용하는 것으로 다시 △퇴직전문인력 기술지도사업 △매니지먼트 멘토 등록제도 △신현역(퇴직전문인력) 매칭지원사업으로 나뉘었다.

퇴직전문인력 기술지도는 1991년 발족한 ATAC라는 기업전직임원(OB)으로 구성된 중소기업 지원 기술컨설턴트 그룹이 주도하는 민간지원사업이다.

대기업 OB 숙련기술기능자를 일본 지방자치단체에 소재한 모노츠쿠리(우수제조) 중소기업들에 파견해 기능과 노하우 전수를 유도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술자 중심의 대기업 퇴직전문인력들이 비영리단체(NPO) 협동조합을 결성해 자신들의 축적된 기술기능 노하우를 유망 중소기업에 전수한다는 점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비영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사회 제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 멘토 등록제도도 퇴직전문인력을 일본 경제산업성에 등록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경영 애로점 해결을 문의해 오면 정부기관과 중소기업 지원기관(신용금고)가 손잡고 해결해 주는 지원 시스템이다.

구체적으로 지역 신용금고가 거래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매니지먼트 멘토가 교류회를 개최해 2013년 6월 말 기준으로 11개 신용금고에서 203개 중소기업과 1247명의 매니지먼트 멘토가 총 696회의 면담을 실시, 중소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신현역 매칭지원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한 제도이다. 대기업 은퇴 전문인력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연결시켜 기술개발, 생산제조뿐 아니라 경영전략·기획, 판매·마케팅 분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퇴직인력과 중소기업간 매칭은 어드바이저(Adviser)로 불리는 순회대응상담원을 활용하고 있다. 순회대응상담원은 중소기업지원에 대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군으로 구성되었다. 신현역 매칭지원은 중소기업의 호응을 받아 최근에는 해외진출이 늘어난 중소기업에 해외전문인력을 지원하는 업무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지원에 대해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의 특징은 정부 정책도 의미있지만 무엇보다 퇴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공헌이나 지역사회 봉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 숙련 기능과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이는 재취업, 직장 확보에 초점을 둔 우리나라 베이비붐 지원 양상과 크게 다르다”며 “일본과 한국의 사회보장제도 차이 등 다른 조건에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한테 일정 정도 시사점을 주는 내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