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5~1963년 기간에 태어난 이른바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의 은퇴자 수가 해마다 30만~40만명씩 진행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 베이비부머 인구 수는 729만명(2012년 7월 기준)에 이른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 초반, 길게는 1963년생이 60세가 되는 오는 2023년까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도미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들이 1960~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의 산업화, 근대화의 기반을 다졌다면, 베이비붐 세대는 1980~2000년대 고도화, 선진화를 이끈 산업주역들이다.

경공업이든 중화학공업이든 산업 전반의 업종에서 베이비부머들의 높은 근로 의욕과 경제활동 참여는 ‘한강의 기적’을 넘어 ‘IT강국’으로 도약하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경제 선진화의 주역, 베이비붐 세대 “더 일하고 싶다”

한국경제의 심장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의 퇴장은 자연적인 순리이지만, 여러 경제적 문제점을 배태하고 있어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수명연장에 따른 고령화는 베이비부머의 노후생활 유지에 대한 사회적 비용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노동생산의 세대교체를 이룰 청년층 경제활동인구의 상대적 감소와 제조업 기피 현상으로 베이비부머 노동자들이 집중돼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 노동력 감소와 기술 및 경력 단절에 따른 노동의 질 저하 문제가 산업계의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중장년층은 558만명이며, 이들 중 취업자는 548명으로 고용률 75.1%를 기록하고 있다.

중장년층의 실제 퇴직연령은 평균 54세로 나타난 반면, 본인들이 생각하는 적정 은퇴시기는 ‘65세 이상’으로 희망하고 있어 괴리를 보였다. 이에 따라 중장년층의 ‘근로 연장’ 의욕을 흡수하면서 20~30년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젊은 세대에 원활하게 전수, 계승시키는 정책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인력 재활용 정책이나 프로그램은 대부분 단순 일자리 제공, 창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은퇴 베이비부머에 대한 숙련된 기술 및 지식, 노하우 등을 재교육시켜 경력 단절을 막고, 제2의 인생 설계를 돕는 프로그램이 일천한 상태이다.

실제로 베이비부머 취업자의 산업별 분포에서 제조업이 95만명으로 가장 많아 베이비부머 전체 취업자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을 포함해 전통적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취업자 비중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대규모 퇴직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통적 산업에서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의 공백을 걱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조업 베이비부머 지원 빈약 ‘경력 단절’ 우려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를 따르면 2011~2019년까지 베이비부머 퇴직 규모(예정)는 약 107만명이며, 이 가운데 제조업이 42만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베이비붐 세대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국내 사업으로는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과 경제단체가 주도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있다. 총 25개가 운영 중이며 40대 이상 퇴직자 및 퇴직예정자에게 재취업과 창업, 생애설계 지원 등 전직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 2010년부터 고용노동부의 위탁을 받아 시행하고 있는 시니어직능클럽과 서울시가 운영하는 인생이모작지원센터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민간기업 차원에서는 삼성전자의 경력개발센터(CDC)와 경력컨설팅센터(CCC)를 꼽을 수 있다. 사내 임직원 출신 퇴직자를 대상으로 재무설계, 건강관리, 인간관리, 전직준비 등을 지원해 성공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들 대표적인 베이비부머 지원 프로그램은 주로 사무직, 서비스업 경력 중심의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향성을 띠고 있어 제조업 분야의 경력 단절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마나 제조업 관련 베이비부머 은퇴자를 다시 제조 현장의 생산성 향상에 재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산업통산자원부 산하의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한일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조혁신 인스트럭터 양성 사업’을 들 수 있다.

한일재단의 제조혁신 인재육성사업은 국내의 중견, 중소기업 현장 퇴직(예정)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제조 현장개선 프로그램인 모노즈쿠리(モノズクリ) 연수를 거쳐 제조혁신 지도자(인스트럭트)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일재단은 제조혁신 인스트럭트의 지도를 원하는 국내 중소 제조기업을 알선, 인력을 파견함으로써 해당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일본기업과 거래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 동향데이터분석센터장은 “제조업 중에서도 베이비부머 종사 직업은 생산직이 가장 많다”면서 “그럼에도 기업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기업들이 제조 숙련직은 베이비부머 직원의 정년을 연장하는 한편, 단순직은 외국인 근로자로 활용하고 있어 현장에선 당장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년연장을 하더라도 나이 70이 넘어가면 제조 생산직에서 체력과 숙련의 한계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 오 센터장은 “7~8년 전 제조업 베이비부머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 문제를 겪은 일본도 결국 기술자의 재취업, 정년연장이라는 해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소개했다.

 

일본 ‘단카이 세대 대책’ 타산지석 삼자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퇴직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대량퇴직이 본격화된 일본도 당시 단카이 세대 683만명(2006년 기준)의 경력 단절 문제를 겪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단카이 세대의 고용계속 정책과 재고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섰다. 2004년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 65세 연장’, ‘계속고용제 도입’, ‘정년제도 폐지’의 세 가지 대안을 기업들이 노사 관행에 맞춰 자율선택하도록 해 후유증 축소에 힘썼다.

이 같은 일본의 베이비부머 재고용 전략과 관련, 경력개발시스템 기업 일본맨파워의 가타야마 시게토시(片山繁載) 이사는 지난해 노사발전재단 주최 중장년전직지원 세미나에 참석해 “기업 입장에선 재고용으로 퇴직금 비용의 절감, 급여 절반에 높은 품질의 노동력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높은 생산성 등의 효과를 거뒀다”고 소개했다.

베이비부머 본인에게 신체가 건강할 동안 계속 일하는 성취감과 함께 경제적 수입을 늘린다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고, 국가도 국민연금 지급 시기를 늦춤으로써 재원 확충의 시간을 버는 동시에 중장년층의 임금소득에 대한 세수 확보 및 소비 부가효과로 국가경제에 선순환 기능을 하고 있음을 가타야마 이사는 강조한 바 있다.

오호영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지원의 문제점은 근로자들이 은퇴 뒤 실업자가 된 다음에야 사후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퇴직한 다음에 재취업, 창업 등을 준비하도록 사회적 지원 대책을 제공하는 것은 너무 늦다는 지적인 셈이다.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은퇴하기 전에 전직(재취업)에 필요한 업무 재배치, 직업교육, 취업 알선상담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오 센터장은 덧붙였다.

아울러 베이비부머 대량은퇴에 따른 산업현장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졸자의 취업을 늘리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고졸 취업자의 증가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졸업자가 아닌 대학진학에 뜻이 없는 인문계고 졸업자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오 센터장은 “인문계 고졸자의 일자리 질을 높이는 위탁직업교육의 강화, 대졸자의 생산직 취업 증가에 맞춰 적성 맞춤형 직업훈련 프로그램, 도제교육 시스템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