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미국 유통 시장에서는 '온라인=아마존', '오프라인=월마트'란 공식이 회자된다. 한때 아마존 공세에 밀려 시장의 우려를 모았던 미국의 세계 최대 소매유통 체인이자 유통 강자 월마트의 성공 비결은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었다.

유통 선진국 美의 진통, 지난해 51개 파산 신청

'리테일 아포칼립스'는 유통 선진국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의 경우 북미 최대 유통업체였던 시어스(Sears)는 설립 126년만인 2018년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장난감 유통 왕국으로 불리던 미국 토이저러스 역시 지난 2017년에 파산보호를 신청, 2018년 미국내 700여개 토이저러스 매장을 폐쇄했다. 지난해에는 의류전문 유통기업인 아세나리테일그룹이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앤테일러, 로프트, 레인브라이언트 등 산하 브랜드 매장 1100여개 폐점 계획도 발표했다.

S&P글로벌(S&P Global)에 따르면 미국 유통 기업 파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차 감소하다 2014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해 2017년 파산한 유통기업이 40곳에 달했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유통기업 파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파산보호를 신청한 유통기업수는 51개로, 금융위기 직후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미국에서도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이 위기에 직면한 배경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 영향이 컸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미국 온라인 소매판매액은 5980억 달러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15%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체 소매판매액 중 온라인 소매판매액 비중을 나타내는 온라인 침투율은 2019년 5.5%에서 2019년 14.2%로 두배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시대가 열리면서 오프라인 전통 유통기업들이 부진하는 와중에도 월마트는 승승장구했다. 비록 지난해 4분기 영국과 일본 투자에서의 사업 손실이 크게 반영되면서 20억 90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2분기만해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전분기 대비 모두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1분기에는 아마존마저도 순이익이 29% 줄어들었던 반면 월마트 순이익은 4% 성장했고, 3분기에는 온라인 매출이 전년 대비 79% 증가했다. 이에 월마트는 지난달 미국주식 시가총액 1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35년만에 연매출 '뒷걸음질'...월마트, '옴니채널'로 재건하다

1962년 문을 연 월마트는 2001년부터 매출액 기준 세계 1위 기업이었다. 21세기 들어서 전세계 기업중 연매출 1위 타이틀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온라인 공습에 밀려 2009년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10위 밖으로 밀려나고 2016년에는 연매출이 35년만에 처음으로 뒷걸음질친다.

월마트가 바뀐 것은 2016년이었다. 더그 맥밀런(Doug McMillon) CEO가 2014년 취임한 후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선보였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커머스 기반 플랫폼 기업을 잇달아 품에 안은 것이다. 월마트는 2016년 9월 '제트닷컴(Jet.com)'을 33억 달러(3조8000억원)에 인수했고, 이듬해에는 슈바이, 무스조 등 온라인 패션몰을, 2017년과 2018년에는 온라인 맞춤 남성복 스타트업 '보노보스'와 인도 전자상거래 플립카트 지분 77%를 사들였다.

월마트는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면서 오프라인 매장과 연결하는 '옴니채널' 전략을 추진했다. 온라인 유통 기업들과 동일한 서비스 방식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매장에서의 '더 긍정적인 고객 경험'을 차별적 가치 핵심으로 여기로 2015년부터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이 차별적 경험을 하도록 준비해 왔다.

 

아마존 공습 물리친 월마트, 변화로 위기 넘기다

월마트는 먼저 의료, 미용, 송금 등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 거점과 같은 '슈퍼센터(Supercenter)' 매장을 확대, 개편했다. 이를 위해 약 11억 달러를 투자해 5000여개 매장을 리모델링했고, 고객이 쉽게 제품을 찾도록 매장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개선했다. GPS 기술로 고객이 도움을 요청하면 직원이 바로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이외에도 인터랙티브 대시보드를 설치해 부피가 크거나 매장에 없는 제품들을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찾고 주문하는 엔드리스 아일(Endless Aisle) 시스템도 마련했다.

특히 식료품에 강점이 있다고 판단한 월마트는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후 매장에서 직접 픽업할 수 있는 '클릭 앤 콜렉트(click & collect)'와 선별된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들이 고객의 온라인 주문 물품을 직접 고른 후 매장 직원들이 고객 차까지 주문 물품을 실어주는 '드라이브 스루' 등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현재 식료품은 월마트의 미국 내 매출 56%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기존 직원들의 변화된 역할 육성에도 집중했다. 매장 청소, 재고 파악, 단순 계산원 역할 등은 자동화로 인해 줄어들거나 없애면서 가치 있는 일에 구성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월마트의 업스킬링(Upskilling: 현재 수행하고 있는 직무를 위해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것)·리스킬링(Reskilling: 새로운 직무에 필요한 스킬을 배우는 것) 위기를 뛰어넘다' 보고서를 통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역량과 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디 러닝(De-learning)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미래 사업에 필요한 핵심 역량에 기반해 내부 구성원들의 스킬이나 역량 향상을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 업스킬링과 리스킬링 활동을 지속한 것이 위기를 넘은 비결"이라고 진단했다.

 초저가·고객경험·온오프 융합으로 생존

월마트 외 초저가스토어들은 오프라인 유통업계 고전에도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독일계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ALDI)는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마트'를 콘셉으로 승부하고 있다. 상품의 90%를 PB(Private Brand)로 취급하면서 유통마진을 제거했고, 최소화한 형태의 매장을 운영하면서 운영 비용을 줄였다. 낮은 가격(Low price)와 유토피아(Utopia)를 결합한 일본 중소 슈퍼마켓 로피아(Lopia)도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지역 정육점에서 시작해 슈퍼마켓으로 발전한 로피아는 낮은 가격을 강점하고 있다. 특히 정육부분 품질 대비 우수한 가격으로 대부분 매출이 신선식품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객경험을 핵심자산으로 리테일 아포칼립스 위기에서 살아남은 곳도 있다. 베스트바이(Best Buy)는 제품 체험은 베스트바이에서 하고 구매는 아마존에서 하는 소비자를 겨냥해 오프라인 매장을 '쇼룸화'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오프라인 매장 공간을 애플, 삼성, 다이슨 등 주요 전자제품 제조사에서 전시 공간으로 임대하고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방식으로 바꿨다. 동시에 제품 가격을 온라인 최저가에 맞춰 베스트바이 판매 제품 가격이 비쌀 경우 차액을 보상하는 '프라이스 매치' 가격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베스트바이는 2013년부터 지속되던 실적 하락을 2017년 반등시키는데 성공했고,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성장세에 있다.

프랑스 명품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가 소유한 화장품 유통사 세포라는 온오프 융합으로 체질 개선을 실시해 소비자들이 이커머스를 통한 화장품 구매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유통 대전환의 시작' 보고서를 통해 "리테일 아포칼립스에서 생존한 유통기업들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를 공략한 초저가스토어, 전방위적 디지털 전략으로 온·오프라인 결합,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차별적 경험 제공으로 고객 만족도를 향상해 살아남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