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CES 2024'에 전시한 메모리 반도체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CES 2024'에 전시한 메모리 반도체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연합뉴스

메모리 반도체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인공지능(AI)향 ‘맞춤형’ 메모리 반도체의 대두로 인해 “메모리 사이클의 진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면서, 향후 맞춤형 반도체가 사이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업계에서 화두는 단연 AI다. 빅테크 업체들뿐만 아니라 어도비, 세일즈포스, 워크데이 등 소프트웨어 기업까지 생성형 AI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출시하면서 AI 개발에 특화된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서버는 기존 서버보다 월등히 많은 데이터양을 병렬 방식으로 연산해야 하는데, 이때 H100과 같은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맞춤형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HBM의 특징은 D램이 범용성 제품이었다면, HBM은 GPU를 지원하기 위한 메모리로 각 GPU에 ‘맞춤형’으로 생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특성이 메모리 사이클에 영향을 준다.

사이클은 왜 발생하는가

메모리 반도체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가 범용성을 띄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와 다르게 표준화된 제품으로 대량 생산된다. 시스템 반도체는 우리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서 기업과 제품에 따라 필요로 하는 사양이 매우 다양해 CPU, GPU, AP 등 수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따라서 시스템 반도체는 제조만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 업체에서 각 기업 요구에 맞게 다품종 소량으로 생산된다. 

그에 반해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한 가지 기능만을 담당하기 때문에 양산성과 원가 측면에서 유리한 D램과 낸드플래시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대량생산으로 인한 비용 효율화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D램 기준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주기적으로 대규모 시설 증설에 나선다. 문제는 공급이 계단식으로 뛰어오르는 것에 반해 수요는 경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이 증가하는 시기와 수요가 감소하는 시기가 겹치면 재고가 쌓이게 되고, 이는 곧 가격을 폭락시킨다. 

반면에 HBM은 이전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각 기업과 GPU에 맞게 생산된다. 맞춤형 제작이다 보니, 기존에 D램처럼 대량으로 미리 생산해 놓고 파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환되면서 재고가 쌓일 가능성이 낮아지고, 재고가 쌓여 가격이 폭락할 일이 없으니 사이클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D램은 범용 제품이지만, HBM은 AI 가속기 서버에만 사용되는 특수목적 반도체다”라면서 “HBM은 기업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하는 선주문 방식을 따른다”라고 설명했다.   

또 김우현 SK하이닉스 CFO는 23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AI로 인해 특성이 다변화되면서 메모리 산업이 본질적으로 변화했다. 이로 인해 메모리 산업의 예측력이 높아지고, 나아가 메모리 사이클의 진폭이 줄어들 것이다”리고 말했다. 

고객 니즈에 맞춰야

HBM 등 맞춤형 반도체의 등장으로 사이클 진폭이 감소하는 것은 메모리 업체에게 긍정적인 요소이나, 고객의 니즈에 따라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것은 메모리 업체로서 새로운 도전이다. 그동안은 D램과 낸드플래시처럼 범용성 제품이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플랫폼을 개발한다. 

먼저 삼성전자는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작년 12월 ‘메모리 상품기획실’을 신설했다. 메모리 상품기획실은 제품 기획부터 사업화 단계까지 전 영역을 담당하며 고객 기술 대응 부서를 하나로 통합해 만든 조직이다. 그동안 분산되어 있던 동향 분석, 상품 기획, 표준화, 사업화, 기술 지원 등 모든 기능이 상품기획실로 흡수됐으며, ‘개별화된 고객 요구’에 대한 적극 대응을 통해 메모리 시장에서의 기술 리더십을 확고히 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이사는 연초 “AI 시스템 속도가 빨라지면서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고객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SK하이닉스만의 고객 맞춤형 메모리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메모리 기능과 기술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에 용량, 전력 효율, 대역폭, 정보처리 기능 등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넣겠다는 것이다. 곽 대표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빠르게 대용량을 처리하고 전력 소비는 적은 메모리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맞춤형 메모리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선보이고, 각 고객에게 특화된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HBM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만큼, 사이클 진폭이 당장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건 무리”라면서도 “향후 HBM의 비중이 커지면 일정 수준 진폭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